241101 새벽기도회: 요한복음 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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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이 새벽기도회 자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덕분임을 기억합니다. 저희에게 다양한 것들을 허락하시고 저희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날마다 감사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19-2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11월의 첫 날인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힘차게 시작하는 이 새벽기도회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으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인데요. 그는 미리 예고된 대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빨리 태어나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례 요한을 통해 어떻게 예비하셨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뒤에 이를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19절에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보냅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는 이유는 요한의 정체, 정확하게는 요한이 주는 세례에 대한 권세에 대한 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산헤드린은 대체로 대제사장 가문에 의해서 주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보낸 사절단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이 대제사장 가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과 이들이 보낸 사절단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곧 제사장이 행하는 직무인 정결 의식에 관심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요한에게 사람을 보낸 것은 세례라는 정결 의식을 행하고 있는 요한이 자신들이 봤을 때는 정통하지도 않고 권세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권세로 행하는지 추궁하기 위해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에게는 마땅한 권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제사장의 직무를 적극적으로 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은 없지만, 그가 제사장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그가 정결 의식을 베풀 수 있는 권세는 충분히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무튼지 간에 요한의 권세에 대해 추궁을 하기 위해 산헤드린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너가 누구냐”라며 그의 정체를 밝힐 것을 말합니다. 그러자 요한은 거짓 없이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야를 뜻합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메시야에 대한 대망이 한껏 무르익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윗 가운인 유다 지파의 메시야를 대망하였고, 어떤 이들은 ‘선지자의 도래’를 대망하였고, 어떤 이들은 제사장적인 메시야의 도래를 대망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기름부음 받는 직분들인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대망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바라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요한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한 말은 곧 참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에 대한 적극적인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신앙고백에 이제 다시 산헤드린이 보낸 자들이 질문합니다. 21절입니다. “그러면 너는 누구냐. 엘리야냐”라고 묻고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러자 또 “그 선지자냐?”라고 묻자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문답이 오고갔습니다. 이들이 요한에게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라고 물은 것은 구약 말씀에 따른 질문입니다.
먼저 엘리야라는 질문은 사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겠다.”라고 약속하셨기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종종 엘리야의 복장을 흉내내기도 했다는 것을 스가랴 말씀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낙타털 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메어 엘리야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요한이 엘리야를 참칭한 사람이거나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엘리야라는 표시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찾아온 자들은 요한에게 “엘리야냐?”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 질문에 요한은 단호하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들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엘리야였다고 말씀하지만, 요한 자신은 자신을 그렇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부정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그가 엘리야였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을 예수님에 비하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메시야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이들은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너가 그 선지자냐?”라고 질문합니다. 여기서 선지자라는 말 앞에 정관사 “그”가 붙었습니다. 선지자 앞에 “그”라는 말이 붙으면 백이면 백 모세를 의미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실 것을 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 같은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믿었습니다. 특별히 실제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선지자를 약속된 메시야와 동일시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지자를 세례 요한으로 인식하고 있었더라도 이 약속에 대한 말씀이 요한에게서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요한은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이 부정당하자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된 사절단들은 자신들이 “나는 아니다.”라는 대답보다는 좀 더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돌아가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그러면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너에 대하여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요한은 23절에서 어떤 특정한 인물이 자신임을 말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요한은 메시야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소리”, 바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원래 이사야 문맥에서는 포로로 잡혀간 언약 백성들이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작은 산들과 골짜기들을 평탄하게 하고 굽은 길들을 곧게 하는 등 동쪽으로 가는 광야 길을 바르게 하라고 비유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문맥과 마찬가지로 요한은 죄에 사로잡혀 포로생활하고 있는 모든 자들을 주님에게로 가게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 길을 곧게 만드는 임무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가 이 땅 가운데서 받은 임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구속사의 절정인 예수님으로 향하게 만드는 과정 중에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할 자로 요한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요한의 질문에 이들은 이제 요한이 행하는 세례에 대해 추궁합니다. 25절입니다. “또 물어 이르되 너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이들이 처음부터 요한의 세례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그가 어떤 권세로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지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요한에게는 세례를 베풀만한 권세가 없어보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질문에 요한은 모두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 권세, 권한이 있는 것은 그가 제사장 집안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의 세례는 더 완벽한 세례를 주실 분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의 세례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바로 사람들 가운데서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분이 지닌 권세에 비하면 요한이 지닌 권세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요한의 세례를 보증해 주는 권세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성경에서 약속된 종말론적인 인물들 중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사실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다. 내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사실이고,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증언하는 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요한은 철저히 참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위해 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에게 맡겨진 사명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영광받기 위해 메시야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그니라”라고 말하면서 참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으로서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에 따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순종함으로 자신이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관점에서 요한의 모습은 별 볼일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드러내니 말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가장 정상에 있는 사람을 우러러보고 그 사람이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예비하심으로써 그리스도라는 구속의 절정이 드러났습니다. 세례 요한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더욱 밝히 드러나 우리에게 구속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이 구속의 은혜를 받았기에 세례 요한과 같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에게 맡겨진 본분에 충실함으로 그리스도가 더욱 밝히 드러났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각 삶에서 그리스도를 더욱 밝히 드러냅시다. 우리가 영광받고 우리에게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더욱 빛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며 그리스도를 더욱 밝히 드러내는 우리 모든 새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그리스도께서는 빛으로부터의 빛이십니다. 그 빛이신 그리스도를 저희를 통하여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희는 연약하오니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그리스도를 저희 삶에서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