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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6 NKRV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초대교회의 모습들이 성경에는 나타나있는데요, 초대교회들의 모습들을 잘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을 무렵의 교회의 모습들을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는지를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일행을 포함해서 바울과 예수님을 본 받았던 교회였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2차 선교여행을 바울은 실라와 함께 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해서 터키지역에 있는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한 후에 마케도냐지역으로 건너와서 데살로니가에 도착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밑으로 아가야 지역의 고린도까지 내려갔는데, 행18:5절을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냐로부터 고린도로 내려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이 편지를 쓸때 문안인사에 이름을 올린 것뿐만 아니라 함께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서 ‘우리는’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리’라고 하는 복음을 전했던 자들의 본이 되었다, 복음을 전했던 자들을 그대로 따랐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복음을 전했던 자들은 교회에 본을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교회는 그들을 보고 그들을 따라 행동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최소 3주간을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던 자들은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고전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으면서 남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진정성이 그 사람에게서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바울과 일행들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본을 보여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을 보였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들이 보여준 본을 따라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다는 것이죠. 최소 3주간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는데,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도 없는 상태에서 교회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있던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봤더니, 복음을 전한 자들을 따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본이 되었다는 것이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있었습니다. 유교의 학문인 유학에는 생활백서와 같은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유학을 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하는 몸가짐에 대해서 글을 써놓은 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깨끗할 것, 발은 사뿐사뿐하게 걸을 것, 말 조심을 할 것 등 유학을 배우는 자들이 갖춰야 하는 외향적인 모습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유학을 배우러 사람들이 오면 유학을 가르치는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스승이 자신의 이런 좋은 모습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동가짐, 말가짐 등을 배우고 싶고, 따라하고 싶어 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유학을 하면 이렇게 사람이 곧아지는 구나, 아름다워지는구나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하는 것이었습니다. 흠모할 만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까지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치는 방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말로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복음을 전했어도,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라는 부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과 그 일행을 따랐듯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선명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17:2-3절 말씀을 보면 일방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으로 열띤 토론을 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전했다는 것입니다. 새번역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회당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해석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리고 바울은 가르치고 말로만 전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따르는 본을 사람들에게도 보였다는 겁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인의 교회가 바울과 그들의 일행의 본을 보며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1.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만 먹고,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본을 서로 보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실제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 바울과 그 일행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믿고 있는 바대로 실제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그래서 목회자가 없어서 지속적으로 양육을 받거나, 영적인 공급이 약한 상황에서도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진리를 배움이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본을 보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3.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따르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에는 큰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상황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을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은 ‘많은 환난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14.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데리고 바울과 일행을 잡으러 왔던 일들과, 바울 일행을 데리고 있었던 야손을 대신 잡아서 데살로니가 도시의 읍장에게 데리고 간 일, 그래서 바울 일행을 야반도주 시키듯 그 도시를 떠나게 한 일 등 환난 속에서도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환난이라는 단어는 고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고통이 동반된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15.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던지, 방해받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복음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여러 신들을 믿던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한두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쫓아오고, 소동을 피우고, 도시의 행정 및 사법권을 가진 읍장이라는 지금의 검사 정도 되는 사람에게 끌려가게 되면 차라리 복음이라는 소식을 안 받아들이면 모든 복잡한 상황이 정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안 받아들이면 모든 상황이 쉽게 정상적으로 돌아갈텐데,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내하면서까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16. 오늘 본문은 환난속에서도 데살로니가인의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내면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환난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들에게는 성령의 기쁨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기쁨은 구체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7. 로마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롬15:13”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셨고, 그 기쁨은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기쁨이겠죠. 18. 예수님이 70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라고 하셨는데, 제자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자기들에게 복종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안에서 기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과는 다른 기쁨입니다. 19. 여러 사람들이 방해하고, 핍박하는 가운데서 복음을 받아들였던 그들 가운에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정말로 기쁩니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른 기쁨입니다.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때,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했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영적인 체험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한 확신을 더하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20. 교회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했고, 경험하는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리스도를 따라살며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는 본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지를 배우고 익혀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도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처럼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먼저 그리스도를 따라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본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본을 보며 다같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교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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