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함 (2)
데살로니가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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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9절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로부터 복음을 받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믿는 자들은 스스로 바울과 바울의 일행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했는가 그 첫번째 내용이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지칭하는 ‘우리가’ 어떻게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에 들었갔는가에 대해서라고 했습니다. 9절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즉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들어갔는지’, 곧 복음을 전해서 복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인의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됐는지, 다시 말해서 누구에 의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는지, 그렇게 듣게 된 말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 내용이 복음이었고,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그 과정을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믿는 자들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만나서는 자신이 받은 복음은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받은 것이었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은 복음은 ‘우리’라고 하는 바울과 바울의 일행에 의해서 였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까지 복음을 받게 되었는지 우리에 대해서 그들이 스스로 말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일행으로부터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좋았으면, 기뻤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다녔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으로 나가서 자신들이 전해받은 복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서 복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 자들이 자기들도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킨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신약성경도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복음을 전해준 자들에게 보고 배워서 나중에 믿게 된 자들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사람들도 제대로 전했다는 것이고,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들도 복음의 의미를 잘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주었던 사람들을 본 받아, 본인들도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이죠. 9절에서 ‘말하기를’이라고 나온 단어는 현재형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니까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이 스스로 한두번 또는 과거에는 했었다가 아니라 복음을 계속 전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작금의 교회는 성경의 교회를 본받아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데도 괜찮아한다면 가장 중요한 복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교회일 것입니다. 복음이 정말 나에게 좋은 소식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인의 교회가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로부터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같이 전했것은 자신들이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를 말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라고 할 때 돌아온다는 말이 죄에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인생의 방향을 전부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이 뜻을 간략하게 한 단어에 담아서 이야기 해본다면 이것이 회심한다라는 뜻입니다.
죄에서 돌이켜서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았던 내 인생의 방향을 전부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회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로 내 인생의 방향을 전부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 중심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는 하지만, 내가 순종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순종합니다. 내가 할 수 없다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쏙 빼고 순종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의 인생 전부를 돌이키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회심은 잘 시작되어서 온전해져야만 하는데, 온전하지 못한 회심을 하면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됩니다. 회심은 다시 말해서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던 핵심이 바로 회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좇아살고 있었지만, 다시 말해서 세상의 풍습을 좇아 살고 있었지만, 그 죄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우리의 인생의 방향 전부를 돌이켰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들도 그렇게 죄에 있었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회심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한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0절의 말씀의 핵심은 그들이 그리스가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냐고 하는 것을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혈통, 하나뿐인 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직계존속의 이런 의미가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의 모든 권한과 능력을 위임받은 왕의 아들, 곧 아버지 왕을 대신한 왕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대신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왕이 오실 것을 믿는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기다린다고 하는 단어도 현재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소망하며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모든 통치권을 행사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왕이 오셔서 온전한 통치를 하시고, 온 세상은 왕의 온전한 통치를 받는 날을 소망하는 것이죠. 그래서 장차 오실 왕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그 소망을 듣는이로 하여금 그들도 같은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잘 전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먼저 소망하며 살고 있듯이,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도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 것, 그 그리스도가 왕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라는 것, 그래서 주님의 완전한 통치받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망이 나에게 있듯이, 그들도 같은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소망을, 교회인 우리의 소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대신한 왕으로 오시는 예수가 어떤 분이시냐면, 오고있는 진노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계신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서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전지시는 예수시니라’ 이 부분인데요, 먼저 장래의 노하심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오고 있는 진노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노들이 나중에 오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도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진노의 현재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구하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하나님의 진노가 미래에 올 것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이미 임하는 진노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포함한 피조물 전체를 지으시고, 그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법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로를 인간만이 아니라 땅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보면 땅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이 세대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다치는 과학적 원칙을 어기고 높은데서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습니다. 후천적 면역결핍증이라는 에이즈는 동성간의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일어나고 있죠. 그리고 코비드와 같이 동물에게 있는 질병은 종이 다른 사람에게는 옮겨오지 않는데, 실제로 동물의 질병들이 사람에게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발달은 곧 탄소의 걷잡을 수 없는 배출로 이어지게 되었고, 탄소의 배출로 인해 지구는 뜨거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해지고 있는지 다 아실 것입니다. 인간은 열심히 연구해서 무기를 만들고, 그 무기로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망가뜨리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가난과 결핍은 없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로 인해 시작이 되었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인간이 만들어내 내는 죄의 결과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는 현재진행중입니다.
10절에서 예수가 우리를 건지신다고 할 때 건지신다도 헬라어 성경에서는 현재진형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오게 될 하나님의 진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실 뿐만이 아니라 현재 오고 있는, 현재 진행중인 하나님의 진노들에서도 예수님이 현재 우리를 구하고 계시는 중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원도 미래의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원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로부터 돌이켜서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는 것을 회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회심은 시작했지만 회심이 온전하지 않을 경우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의 풍습을 따라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온전한 회심이 없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에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온전히 회심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도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인간의 죄로부터 아직 하나님의 진노중에 있습니다. 이 땅은 여전히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세대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는 현재진행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세상에는 고통과 눈물과 슬픔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현재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진노에서 우리를 계속 구해주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엉겅퀴에서 벗어나도록 예수님께서 우리를 현재에도 구원해주고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미래에 있을 구원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구원의 필요성이 있고,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주고 계시는 중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이미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이 완전한 구원을 가지고 오실 그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에 의해서 현재에 구원을 받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주고 있으십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왕에 의해서 현재 구원을 받아가고 있는데, 그 왕이 실제로 오시면 완전한 구원을 주실 것인데 어찌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소망함이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겠냐는 것이죠.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은 이렇게 현재에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 구해주시고 있는 예수가 장차 왕으로 오실 때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통치가 있을 것을 소망했다는 것이고, 이런 소망을 듣는자들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내가 전해받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소식이 나에게도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되었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줘야 하지 않겠냐 생각해서 스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라는 새로운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복음을 전해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하시는 교회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