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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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합시다
사랑을 선택합시다
말씀: 어디까지 나의 이웃인가?
말씀: 어디까지 나의 이웃인가?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계명을 알려 주십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 대해서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이웃이 누구일까요?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어디까지가 나의 이웃인가 하는 말씀이지요.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습니다. 호의적인 감정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를 뛰어넘습니다. 잘 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나한테 잘 못해 주는 사람, 심지어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루카 복음을 볼까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율법교사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너무 잘 알려진 비유라 말할 필요도 없지요. 맨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율법교사가 답합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율법교사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어디까지가 나의 이웃인지, 어디까지 내가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묻지요.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냐?”라고 되물으십니다. 다시 말해 ‘딱 정해서 여기까지 나의 이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베푸는 만큼 나의 이웃!’이라는 사고 방식의 전환입니다.
오늘날 이웃 사랑의 어려움: 무관심
오늘날 이웃 사랑의 어려움: 무관심
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 내가 사랑해야 하는가.. 나의 가족들? 나의 친척들? 나의 동네 이웃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라. 우리 민족,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노숙인들, 장애인들, 다른 나라 민족들, 이주민들, 난민들, 심지어 내가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저 멀리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까지도 이웃으로 여기며 사랑해라.
그러나 우리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먼 나라 사람들은 뉴스를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이주민/난민들은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있는 곳을, 더 도시 밖으로, 또는 더 구석탱이로 밀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즉,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다. 오늘날 이웃 사랑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이런 무관심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곳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추상적인 게 아니라 진짜 내가 사는 동네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어울려서 사는 게 아니지요. 대부분의 경우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삽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내 눈 밖의 지역으로 나가 있습니다.
이웃 사랑을 선택
이웃 사랑을 선택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물론 감정의 영역도 걸쳐 있지만)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항상 의지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선택입니다. 내가 하는 만큼이 나의 사랑입니다. 내가 우리 가족만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만큼이 나의 사랑입니다. 내가 저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도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만큼 나의 사랑이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간직하면서 우리 안에 갇혀있기보다 더 밖으로 나아가서 사랑하기를 선택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