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주는 갈등-사도행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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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주는 갈등3
복음이 주는 갈등3
오늘날 교회가 한국사회안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이 됩니까.
교회는 원래부터 환영받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늘 어떤 사회속에서든지 골칫덩이리였습니다.
제가 어릴때 살던 시골마을에 젊은 전도사님가정이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하루에 버스가 5대만 다니던 산골시골에 서울말을 하는 젊은 부부가 이사를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도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낡아서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버려진 집을 얻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교회 활동을 하기 시작한것입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전도를 하고 주일날 아이들을 불러모아서 선물을 주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온 마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동네사람들은 교회를 하지 못하도록 몇번을 쫓아내기도 하고 못살게 했습니다.
심지어 동네에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자 교회 건너편에서 굿을 하면서 교회를 쫓아내야 된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회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그 마을에 아무런 피해를 입힌 것이 없었는데 왜 교회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을까요?
예수님이 이미 당신 자신을 통해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34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사도행전안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내내 갈등가운데 있음을 발견하게 돈다.
오늘 3장과 4장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시작된 배경이 3장에 등장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여전히 유대교의 관습에 따라 기도하러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을 한 걸인이 붙잡으면서 구걸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갈등의 원인이 등장합니다.
이 걸인을 향해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가 가진 것으로 네게 주겠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선포합니다. 그러자 이 걸인이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뛰어다닙니다.
이 일로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됩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생기지 않습니까? 걸인이 돈을 달라고 했는데 왜 병을 고친 이야기로 바뀌지요?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종교적 전통으로 있던 것이 병이 걸리거나, 죄를 용서받아야 되거나 등 삶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모습은 심심치 않게 발견합니다.
성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교회와서 기도해야 된다고 하거나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줄을 세우거나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좀 괜찮습니다. 성전을 통해야 된다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다 생각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으려면, 문제를 해결하려면 헌금으로 바쳐야 될 돈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만난 걸인은 걸인이기 전에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성전을 향해 왔는데 돈이 없으니까 구걸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돈이 없음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에 참석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걸인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제 성전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더이상 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도들을 만나면 됩니다.
종교지도자들, 성전관리자들 입장에서는 심각한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기 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돈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어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지도자들에게 심각한 손상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갈등의 단초가 됩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 되는 것이 있는데
복음은 종교가 가지고 있던 차별과 불공평을 엎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훈련을 시킬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0:8
8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사도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의해서 권한을 받고 안받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병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받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이 일을 대할 때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예수님의 원칙에 순종합니다.
세상가운데 별로 주목받을 것 없는 삶을 살던 제자들, 어떤이는 천대받는 사람이었고, 욕바가지로 살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제자들을 환대하며 아무 조건없이 은혜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에게 거저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거저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거저 베푸는 은혜의 삶, 환대의 삶을 사는 것이 이들에게는 당연합니다.
며칠전 다녀온 전주 액트나우 대회에서 나눔 중에 한 권사님이 교회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장로, 권사 등 직분을 받으려면 직분자들이 받아야 되는 교육이 있는데 이 교육에 참가하려며 매 학기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셨다고 하는 직분을 받는데 수천만원을 내야 합니다. 이 일을 가르치는 목사도 당연히 이 일을 하라고 교회에 사역하는 것인데 별도의 큰돈을 또 요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한 일은 종교지도자들을 참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된 것입니다.
병든자들이 성전에 와서 돈을 내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돈이 없어도 성전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삶이 변했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4:10 “10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한 것이라고.
복음은 예수이름앞에서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은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거저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거저 받은 자들이 거저 주어도 동일한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2. 새로운 성전이 오고 있음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은 이 종교적 관습에 찌들어 있는 성전주의자들을 향해 요한복음 2:19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은 도대체 사흘만에 성전을 어떻게 세우신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전에는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곳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성전문앞에서 만난 걸인은 이제 성전안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만 붙들고 살면 됩니다.
이 걸인에게 성전은 어디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이 생겼습니다. 이제 종교지도자들, 성전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온갓 정치적 권위적 경제적 잇권을 누리고 있던 성전이 망하게 생겼습니다.
성전에 와야만 죄와 병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 이제 다 엎어졌습니다.
11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입니다.
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전을 지어야 한다며 얼마나 불필요하게 거대한 건축사업을 일으키는 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성도들이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목회자의 욕망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제는 한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큰 고민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30-40명밖에 안되는 개척교회인데, 두개층을 얻어서 월세를 500만원 가까이 내면서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당된다는 것도 대단하긴 한데 고민은 그것이 아니라 주중에 매일 비워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공간이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주중에 비어 있는 이 공간에서 이웃들을 위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이런 고민을 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 많은 교회들이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에 속하는데도 속한 마을공동체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어떤 일들을 겪었습니까.
구약에서 끊임없이 망하는 일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제 이런 성전은 허물어져 없어져야 한다며 말씀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고합니다.
교회 위기가 찾아오니까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교인들을 선동해서 지금 나라가 교회를 탄압한다고 하고, 무슨 법때문에 교회가 망하게 생겼다고 선동을 합니다.
그것때문에 교회가 망하게 생겼습니까? 아니요 그 일은 구약시대때, 로마시대때는 더 심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망하지 않고 더 왕성하게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새로운 성전, 하나님이 주인되는 성전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가
16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우리가 성전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새로운 성전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예전에 교회 다녔지만 다시 교회가는 것에 대해 별로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교회답지 않은 것에 대해 사람들이 등을 돌립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제판합니다.
15 그래서 그들은 그 두 사람에게 명령하여 의회에서 나가게 한 뒤에, 서로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열심히 의논한 결과, 사람들이 다 알만한 표적들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타협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만 말아라.
18 그런 다음에, 그들은 그 두 사람을 불러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다.
제자들이 아주 중요한 것을 대답합니다.
19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예수께 끌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 끌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끌려가길 원하는데 지금 망하게 생겼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목회자인 저에게 끌려다니면 안됩니다.
교회가 요구하는데로 끌려다니면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요구하는데로 끌려다녀야 합니다.
다만 말씀이 요구하는 것의 대해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결론입니다.
갈등의 판결은 예수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표적을 보고 4장 20절 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고 또 다른 표적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도가 이뤄집니다.
23 베드로와 요한은 풀려나는 길로 동료들에게로 가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낱낱이 일렀다.
24 동료들은 이 말을 듣고서, 다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
25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이 날뛰며,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꾀하였는가?
26 세상 임금들이 들고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과 그의 메시아에게 대적하였다.’
27 사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이 성에 모여서,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여,
28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하여 두신 일들을 모두 행하였습니다.
29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30 그리고 주님께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의 주인이십니다. 교회의 주인이시고 머리십니다.
교회가 성전이라고 일컫는 곳에서 오히려 하니님을 대적합니다.
날마다 성전에서 못된 일들을 지어 짜냅니다.
종교인들이 세상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성전이라는 곳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만 꾀합니다.
알고보니 세상정치인이나 심지어 통치자나 종교지도자들이나 지도자들을 따르는 교인들 마저 다 한 통속이 되어서
성전이라 부르는 곳에 모여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에 힘입어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들을
행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는 그 위협들로 부터 보호하여 주셔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더욱 주님의 권능의 손으로 차별없이 공평하게 주님의 능력이 필요한 자들에게
기꺼이 거저 주님의 능력을 베풀게 해 주십시오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성전이 되어져 갔고, 조금씩 조금씩 유대교 회당중심에서 일상의 예배로 교회로 분리되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중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요구에 이끌려 가는가? 아니면 사람의 요구에 이끌려 가는가 입니다.
말씀의 요구에 이끌려 간다면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요구에 이끌려 간다면 허물어져야 될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한주간 우리 삶이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시는 성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주간 성전이 되어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