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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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본문: 요한복음 4:10-15 찬송: 491장

중동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정오, 한 여인이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홀로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침 저녁 서늘할 때 마을 여인들이 함께 모여 물을 길어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이 여인처럼 홀로 걸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어서, 혹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픔이 있어서, 우리는 남들과 다른 시간,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마치 사막을 걷는 나그네처럼, 우리는 메마른 영혼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우물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그날, 그 우물가에는 한 낯선 나그네가 앉아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여인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이는 단순한 육신의 갈증 해소가 아닌,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초청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이 말씀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담겨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선물을 주실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셨을 때도 그랬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을 때도 그랬으며, 가나안 땅을 주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먼저는 세상적 가치관에 막혀있는 우리의 시선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평생 물을 길어야 했던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를 단지 '흐르는 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상의 무게와 현실의 고민들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아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 갇혀있는 우리의 생각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주었고..."라며 과거의 전통과 경험에 매여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라는 새로운 선물 앞에서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종종 과거의 경험과 편견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당시 사람들은 정작 그들 앞에 계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수년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깊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12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알았더라면..." 이 말씀은 지금도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적 가치관의 안경을 벗고, 과거의 경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바로 보고, 깊이 누리며, 감사함으로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귀한 선물을 받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세상의 우물들입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사마리아 여인의 이 말에는 우물물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야곱의 우물을 통해 세상이 주는 것들의 한계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야곱의 우물이 주는 교훈을 보겠습니다. 이 우물은 이스라엘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나이다"라는 여인의 말에서 우리는 그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물이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의 신앙 유산이자,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상징하는 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우물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매일 물을 길어야 했고, 마실 때마다 다시 목이 말랐습니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만나를 거두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시지만, 동시에 이것은 세상 것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우물들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성공, 재물, 건강, 명예... 이것들이 우리 시대의 야곱의 우물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얻기 위해 매일 힘겹게 물을 길어 올립니다. 때로는 이것들이 우리의 자부심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자녀가 성공해도 그 다음을 걱정하게 되고, 재물이 있어도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되며, 건강했다가도 언젠가는 늙고 쇠약해지며, 명예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우물물의 특징입니다. 일시적 만족을 줄 뿐 영원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여기서 '터진 웅덩이'는 바로 세상의 우물들을 상징합니다.
아무리 좋은 우물도 결국은 마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도 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막히고 다시 파야 했습니다. 그들은 평생 우물을 찾아 다녀야 했고, 찾은 우물마다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우물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불완전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일시적이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이 세상의 우물을 더 깊이 파며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수를 구할 것인가. 우리가 평생 파는 우물은 결국 우리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 우물은 우리의 영혼의 깊은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갈증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세상의 우물이 아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의 근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 4:13b-14a)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을 선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생수의 특별한 능력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생명수는 우리 영혼의 깊은 갈망을 완전히 채워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채워주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공허함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채우실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만족이 아닌, 우리 존재의 근원적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생명수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끊임없이 생명의 능력을 공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메마른 땅에서 생명의 원천이 터져 나와 그 주변을 생명으로 채우는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전인격을 새롭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명수의 강가로 나를 인도하되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 22:1). 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얼마나 순수하고 거룩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생명수로 인한 영적 변화는 실로 놀랍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전에는 재물, 명예, 권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른 영혼들에게도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수의 본질적 특성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의 임재입니다. 세상의 우물이 시간이 지나면 마르고 막히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는 영원히 마르지 않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그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이 생명수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공급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세상의 우물을 파며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거룩한 생명수를 마시며 살 것인가.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초청에 응답하여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다른 영혼들에게도 생명수가 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초청이 있습니다. "목마른 자들아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은혜로운 초청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수를 깊이 마시며, 그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도 흘려보내는 복된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며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전히 이 세상의 우물을 파느라 땅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요 4:10)
사마리아 여인은 그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갔습니다. 이는 그녀가 더 이상 물을 길을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메시아를 만났고, 영원한 생수를 발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세상의 우물이 아무리 깊어도, 아무리 좋아도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수를 주실 수 있습니다.
이 생수는 우리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세상 것에 목마르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도 생수가 흘러가게 한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는 주님의 초청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초청에 응답하여 영원한 생수를 마시는 복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수많은 우물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 영혼의 깊은 갈증을 채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약속을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그 생수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의지했던 세상의 우물들, 매일 길어 올려야 하는 것들, 일시적인 만족만 주는 것들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때로는 우리의 시선이 세상적인 가치관과 과거의 경험에 가려져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이 세상의 것들에 목말라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선물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우물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며 영원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우리 안에 넘치는 생명수가 되어 주변의 메마른 영혼들에게도 흘러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되고,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따라가며, 하늘의 생수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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