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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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2024 주일예배
*제목 : 승리와 성장
*본문 : 출 17:8-16
(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출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스라엘은 식량과 물의 부족을 극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민족과의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은 근원적인 욕망에 대한 불안정과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의식주에 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안전에 대한 위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처음으로 전쟁을 겪게 됩니다.
피터 엔스라는 학자는 본문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방된 백성들을 이끌고 가시는 궁그적인 목표, 즉 가나안 정복을 예고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민수기 13-14장에서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을 품게하는 원인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자 할 때 아말렉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아말렉이 없어진다고 해서, 애굽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 외부에 있는 적들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는 항상 교회와 성도들을 헤하려고 하고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무장해야 합니다.
적들은 외부로부터, 내부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사탄 마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질투, 미움, 인색함, 강팍함, 부정함, 교만함 이런 것들은 다 우리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어떠한 사람이였을까요?
이들은 사막에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말렉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14:7장입니다.
(창 14: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창세기 36:12절에서는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라고 언급합니다.
(창 36: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에서는 이삭의 첫째 아들이고, 야곱의 형입니다. 야곱은 형-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습니다. 에서는 용맹하고 사냥을 잘하는 성격이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야곱보다 용맹스러운 에서를 더 사랑하고 인정했습니다. 반면,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형으로 변장하여 형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형은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야곱은 형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결혼하여 12명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아말렉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에 에서의 후손들 즉 용맹스러운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출 17: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사람들은 땅에 정착하여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지에 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산, 바다, 정글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말렉처럼 사막에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어떤 외부의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은 일입니다. 외부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루의 맞추픽추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잉카제국과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잉카 제국은 1438년부터 1533년까지 100년 간 남아메리카를 다스리 대제국입니다. 그런데 이 제국이 순십간에 망하게 됩니다.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는 유럽에서 건너온 스페인 군대가 들어오면서 그들이 천연두라는 전염병을 옳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불과 몇해전에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살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총, 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 바이러스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아멜렉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적인 셈입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기에서 여호수아는 출애굽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앞으로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끄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 특히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이끌게 될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전쟁은 그 처음 전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말렉에게 질병을 내리시거나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해서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서 침묵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전쟁에 나갈 사람을 선택했고, 자신은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서고자 합니다.
9절에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내일이라는 단어입니다.
모세는 ”내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언덕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지금인데, 왜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일까요?
출애굽기에서 ‘내일’은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출8:23, 29; 9:5, 18; 10:4)
(출 8: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출 8:29) 모세가 가로되 내가 왕을 떠나 가서 여호와께 기도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치 마소서 하고
(출 9:5)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출 9:18) 내일 이맘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있지 않던 것이리라
(출 10: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출 16: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내일은 하나님이 행동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내일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둘째,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자주 사용하십니다.
홍해를 가를 때, 므리바 반석에서 물을 낼 때 지팡이를 사용하셨습니다. 지팡이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계십니다.
셋째, 산꼭대기 – 언덕입니다.
언덕은 앞으로 내다보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곧 시내산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백성됨의 언약의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지침과 원리를 담은 율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그는 용감하게 아말렉과 싸웁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훌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대상 2:19)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 들었더니 에브랏이 그로 말미암아 훌을 낳았고
(대상 2:20) 훌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브사렐을 낳았더라
훌은 갈렙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갈렙의 아들 훌도 믿음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훌의 손자는 브살렐입니다. 출애굽기 31장에 등장합니다.
(출 31: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브살렐은 성전에 들어가는 성물을 제작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입니다. 3대가 쓰임 받은 가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에 모세는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어 올립니다. 그가 손을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이깁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가 손을 드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알고 있는 중보기도에 대한 해석이 가장 적합한 해석이지만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을 드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기도나 찬양를 드릴 때입니다. 누군가를 환영하거나 부를 때에도 손을 듭니다. 항복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9장에서 손을 듭니다.
(출 9: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드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릴 때에는 지고 있다는 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꼭 손을 들어야만 이기는 것일까요? 손을 내리고 기도하면 지는 것입니까?
미국의 하레이 베이디슨이라는 오토바이는 손을 들고 타는 오토바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이기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행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본문은 전투 자체보다 전투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곳은 전쟁터가 아니였습니다. 아마도 전쟁은 들판에처 치러졌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곳은 바로 언덕입니다. 뒤에서, 언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곳이 바로 승리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드는 행위는 여러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박(9:22)을 내릴 때에, 메뚜기(10:12) 재앙을 일으킬 때에, 홍해 바다가 갈라질 때입니다(14:16).
모세가 지팡이를 들거나, 손을 드는 행위는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개입하시는 것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모세는 하루 종일 손을 들고 있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함께 영적인 도전을 해쳐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세 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도와 영적인 싸움에 동참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할수록 전능자와 같은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우리를 이 어려움에서 건져낼 슈퍼맨과 같은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그러한 리더십이였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애굽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모세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싸워야 했습니다.
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훌이 함께 기도해야 했습니다.
존 칼빈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자신의 권위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출애굽기의 본문이 교회의 구조와 운영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 18장에서, 모세가 장로들을 세우는 본문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서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모세 혼자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세를 돕고, 모세와 함께 영적인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는 팔을 계속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론과 훌은 돌 하나를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합니다. 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오른손과 왼손을 붙들어 올리게 됩니다.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출 17: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수아는 칼날로 아말렉을 쳐서 진멸합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하게 됩니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라.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게 하라. 하나님이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14절은 오늘 승리에 대해 특히 여호수아에게 그것을 외워서 들리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여호수가는 자신이 싸우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들은 진멸될 것입니다. 이들은 사울의 때(삼상15:23), 그리고 다윗의 때에(역대상4:42-43) 그리고 에스더 때에(에스더 9:5-10) 진멸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결국 진멸될 것입니다.
(출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는 그곳에서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정합니다.
제단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 승리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이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이뤄진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강해적 원리
하나님의 교회는 결국,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존재들, 그리고 이런 존재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말렉이 그러한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말렉에게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겪게될 수많은 전쟁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작고 힘이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세계사 가운데 중심을 차지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솔로몬과 다윗의 왕조 때에 영토를 통일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강대국들이 다른 문제들 때문에 잠시 잠잠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진멸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앗수르, 바벨론, 그리고 페르시아에 의해서 그들의 나라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존하셨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악한 영들, 사탄, 마귀입니다. 또한, 마귀는 사람들을 미혹해서 자신의 세력에 넣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희생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예수님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것을 막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라면 사탄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Ⅰ.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세상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절에는 타락한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거스르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의 뜻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갔습니다.
2. 마귀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는 생각을 공격합니다. 미혹케 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품게 하고 그것을 실행하게 합니다.
마귀는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딤전 3: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이 먼저입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마귀가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하면 반드시 마귀는 떠나게 될 것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는 죄, 상처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잘못된 생각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마귀가 사람에게 자리 잡으면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마귀가 그 사람에게 붙어 숙주처럼 살아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은 마귀가 자신을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마귀의 일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얻는 것이고 그것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어떤 사람이 마귀의 일을 하는지 아닌지는 그것이 파괴하는 것인지, 아니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인지를 보면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 외에도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3. 죄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합니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죄란 윤리적, 도덕적인 것뿐만 아니니다.
나의 의, 자아를 내세우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부정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4.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서로 물고 뜯으면 다 멸망한다고 합니다. 비난, 원망은 결국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난과 원망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비난과 원망이 들어옵니다. 감사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겼습니다. 여호와 닛시. 깃발의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선다면 반드시 이기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십시오.
2. 함께 세워져 가는 성도가 되십시오.
모세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입니다. 모세는 애굽에 재앙을 일으키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냈던 리더였습니다. 엘리야도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입니다. 엘리야는 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워서 이깁니다.
이러한 리더십은 한국에 조용기 목사님, 윤석전 목사님과 같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기도와 사역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부흥사들도 카리스마적인 목회자입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카리스마적인 사역들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을 통해서 제자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집중되어 있던 리더십이 점점 분산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제자들이 바울의 사역을 이어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창기의 사역은 카리스마적인 모델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사역의 후반부에는 제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모든 공동체는 카리스마적인 모델에서 수평적인 모델로 성장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시작은 카리스마적인 모델로 시작해야 합니다. 리더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맴버들이 영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거나, 아직 영적 훈련되어 있지 않는 상태입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단계에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따르는 사람들은 리더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성도들이 치유되고 변화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맴버들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맴버들이 리더가 추구하는 방향과 사역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점점 리더십을 나누어야 합니다. 결국, 성도들이 스스로 작은 목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교회를 추구한 것이 바로 사랑의 교회의 옥한흠 목사이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평신도를 제자로 삼자는 것이 그분의 목회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교회는 성도들의 상황과 환경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지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순복음교회는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로부터 시작한 교회입니다. 반면, 사랑의교회는 부유하고 학식 있는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리더십의 모델도 교회의 방향도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지고, 손을 올리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좌우편에 서서 함께 손을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홀로 이 영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론과 훌처럼 그를 돕는 사람들이 좌우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있은 후에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웁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은 우리의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곳입니다.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고 각자의 짐을 지라고 합니다.
(갈 6: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내가 해야 하는 영적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해주겠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수동적인 상태에 계속 머물지 말라는 것이니다. 은혜 받고 성장할 수록 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서로의 짐을 함께 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저 혼자서 영적인 돌파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영적인, 정서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왼쪽, 오른쪽 팔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나가는 말
오늘 설교의 주제를 승리와 성장이라고 지었습니다.
승리는 전쟁에서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겪었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싸울 때 모세는 언덕에서 기도했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는 오직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반드시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점점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모세의 리더십에서 이제는 아론과 훌 그리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과 같은 사람들이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이런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영적인 문제에 승리가 있길 소망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편에 서야 승리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승리합니다.
승리함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자라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스스로 작은 목회자처럼 누군가를 섬기고 사랑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들이 다 제거되길 소망합니다.
하늘로부터, 우리의 심령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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