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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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12장(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참 좋으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새벽을 깨워 이자리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이 귀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새롭게 되고, 더 나아가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하루도 세상속에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저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여러가지 제목으로 주님께 예물드립니다. 주님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예물드린 손길들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20:19–26 (NKRV)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하는지 따지며 물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인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포도원 소출을 주인에게 바치지 않아 진멸당하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단번에 악한 포도원 농부가 자신들을 빗대어 한 말임을 눈치 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장이라도 예수님을 체포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어찌하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방법을 구하며 곁에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에 종교지도자들이 직접 나사지 않고 예수님을 칭찬하면서 의로워 보이는 척 하는 첩자를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21절 입니다.
Luke 20:21 NKRV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이들의 말만 보면 어디에 내다 놓아도 손색 없는 훌륭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기에 앞뒤 상황을 빼고 이 말만 들으면 누군가 예수님을 찬양하는 기도로 착각 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말도 그 중심을 알기 전에는 바르고 아름다운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행동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고백은 귀합니다. 하지만 그 고백이 단순히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이어질 때, 바로 그때 주님을 향한 고백이 진정한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새벽에 우리가 주님앞에 기도하는 모든 고백이 단순히 외치는 메아리로, 외치는 소리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런 말 후에 본색을 드러내듯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Luke 20:22 NKRV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당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당시 상황에서 그 누구도 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로마에 세금을 내는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하는 선동자로 몰아 고소 할 것이고, 반대로 로마에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하면 예수님을 당시 세리와도 같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 몰아 백성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에 세금을 내는게 맞는지, 내지 않는것이 맞는지 묻는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해도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의 질문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아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옳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속셈을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서 예수님께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의 화페인 데나리온에는 당시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이 티베리우스를 신격화 하는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데나리온을 가져오게 하신 예수님은 대답대신 데나리온에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청중들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답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절 입니다.
Luke 20:25 NKRV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 말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것도 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놀라다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경이와 놀람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답변이 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치 기적을 경험한 것과 같은 충격을 주는 답 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놀라운 예수님의 답을 통해 우리는 2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권위에 대해 순종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금과 같은 세상적 책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국민으로 또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당시 이스라엘과 같이 식민지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정복하고 있는 나라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이와같이 말 하였습니다.
Romans 13:7 NKRV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 Peter 2:13 NKRV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바울과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가이사가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제도나 국가의 처벌이 무서워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정부를 포함한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왔음을 선포합니다. 그러기에 정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Romans 13:1–2 NKRV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그러기에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라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2 (NKRV)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무조건 정부에 따를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다시말해 정부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잘 수행 하여 자국민이 평안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정부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한다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도행전 5:29 입니다.
Acts 5:29 NKRV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고 이 개념을 조금더 확장한다면, 이 땅에 살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금과 같은 국가적 책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부모이면 부모의 책임을 다 해야 하고, 자녀이면 자녀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직장인이면 그 직장에서 직원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사장이면 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면 학생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찬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기꺼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동전을 보여주시며 그 위에 있는 가이사의 형상을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1 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임을 기억하며 우리는 우리의 것을 기꺼이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잠언 23:26 입니다.
Proverbs 23:26 NKRV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주님께로 가있길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옳다하고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그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면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는 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서 주어진 책임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인정받는 복된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하루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과 세상에서 주어진 책임을 모두다 성실하게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주님을 의지하게 하셔서. 때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그 능력으로 오늘하루도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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