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정체성
데살로니가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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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views1. 하나님께 인정받음 2. 하나님이 복음을 맡기심 3.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복음을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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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36장
찬송가 436장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에 있는 데살로니가는 친로마적인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제국 숭배나 황제 숭배가 아주 흥왕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헬라에서 부유했던 데살로니가나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는 떠돌이 스토아 철학자들과 냉소주의 철학자들(Cynics)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이런 부유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지혜와 지식을 나누어 준다고 주장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지혜와 지식이란 주로 성공하는 삶, 구원, 영생,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을 위한 지혜와 지식이었고, 그들은 이런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고 사람들한테 돈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도시를 어지럽힌다, 시민들을 충동질한다고 고발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또 하나의 왕이다, 주(Κύριος)다, 메시아다’ 라고 전하고 다녔는데, 유대교에서 볼 때 이것은 복음이 유대교에 속할 수 없고 이단의 강력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로마황제를 주로 여겼는데, 예수를 주라고 전하고 다니니,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반역 행위를 하는 자들인 것이였죠.
그리고 당시 유대교는 로마법에 따라 상당한 특권을 받았고, 때로는 보호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로마 통치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으로는 로마의 제국 숭배 혹은 황제 숭배를 면제해 주었으며, 입대도 면제해 주었고, 우상 숭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세금도 면제해 주는 등의 특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 주면 유대인이 시끄럽게 굴거나 저항하지 않으며 로마의 통치에 잘 순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혜택을 많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 즉 기독교가 유대교의 아류, 또는 유대교의 일부로 인식이 되면 기독교도 로마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유대교 입장에서는 이단이 합법적으로 포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되니 바울과 교회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을 보면, 바울의 일행은 간사한 사람들이다, 부정한 사람들이고, 속이는 사람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돈이나 받고, 영생의 길이나 성공적인 삶에 대한 무슨 지식 조각 혹은 지혜 조각을 전달한다고 돌아다니던 떠돌이 스토아 냉소주의 철학자들(Stoic-Cynic preachers) 가운데 하나로 매도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소리들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을 했던 것이죠.
사람들이 잘못된 평가를 그대로 놔두면 복음을 전하는데도 어렵고, 로마의 속국의 도시였던 곳에서 더이상 체류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핍박들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짧게 체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동료들이 이단과 삼류 철학자라는 오명에 대해 해명을 하면서도, 단순히 해명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했습니다. 4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라는 주어가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일행들이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옳게 여기심을 받다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는 조사하다, 면밀히 밝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조사를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면밀히 밝혀짐을 받게 되었다면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때 비로소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셨듯이, 바울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정해주셨다는 자기 인식이 분명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나 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구나’하는 자기 인식이 분명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확신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신뢰하는 나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께로부터 ‘나도 너를 신뢰한다’는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부터 신뢰함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과 사랑이 아무 응답없이 한쪽방향에서만 울리는 짝사랑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의 믿음을 보았노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안다’라고 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함을 받는,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인격적인 관계로 발전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옳게 여겨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자기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맡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의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종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맡기신 이유는 종들이 주인의 소유를 늘리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받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을 주인은 꾸짖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하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맡기실까요? 복음은 전해야 하는 내가 하는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맡겨진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신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그제서야 맡기시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음을 맡기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받은 것과 같이 하나님께 복음을 위탁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복음을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테스트에서, 나에게 믿음이 있나 없나를 보실 때,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는가를 보실 때, 거기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그런데 그렇게 인정을 받고 나니 하나님께서 소중이 여기시는 것을 비로소 맡겨주셨다는 것이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복음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에도 좋은 소식이 되는 복음을 전하라고 맡겨주신거라고 바울은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러면 이런 일을 해야한다는 일의 관계로 복음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례 관계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드디어 맡겨주신 감사한 은혜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거나,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려고 하는 불순한 동기가 섞여서 복음을 전하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맡겨주셨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당면할 때도 바울은 묵묵히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에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고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속에 처하더라도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것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도 복음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뭔가를 맡겨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늘리려고 합니다. 모든 세대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다른 일 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경외해서 하나님의 테스트에 우리 모두가 다 통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복음을 바울에게 맡기신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하나님께서 복음을 맡겨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함께 살아가고, 영적인 기쁨을 되찾고, 영적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동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바울과 바울의 일행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인 복음을 맡기시는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복음을 전할 때,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시고, 그 기쁨을 지금부터 누릴 수 있도록 해주셔서,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선물을 저희 또한 세상에 전해주기를 소원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듣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이들이 죄로부터 돌아올 수 있도록 저희들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