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양육
데살로니가전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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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96장
찬송가 496장
데살로니가전서 2:7–8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먼저 바울에게 본을 받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일행들이 보여준 본을 보고 배울 수 있었고, 그 본을 따라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7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뒤 초기에 생긴 교회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보니 누군가에게 본을 보이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로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죄를 지어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신 분이셨습니다. 배고픈 자들에게 빵을 나눠주시고, 아픈자를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내어 주시면서 자신의 삶이 가르친바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도 3주에서 길게는 3개월정도 데살로니가에 머무르면서 말로만 가르친게 아니라 직접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이 보여준 본을 보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머리로만 받아들인게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이 보여준 본을 보며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교회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을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내에 이뤄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흠모할 만한 본을 찾아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말 본이 될 만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본이 될 만한 행동들을 먼저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본이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본을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몇시간, 며칠 있었던 것이 아니라, 3주에서 길게는 3개월정도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고 본을 보여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본을 보였는지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절을 보면 바울은 사람들에게 자기 젖을 먹이면서 자기 아기를 길러내는 유모와 같이 사람들을 길렀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마치 유모가 자기 아기를 기르듯 사람들을 양육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제대로 성경을 배웠고, 많이 배웠다는 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에 걸맞는 대접 받기를 요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젖을 먹이면서 자기 아기를 키우는 유모처럼 사람들을 양육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배워야 하는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각자 알아서 신앙생활은 개인적으로 하는 거지, 남까지 내가 어떻게 하나? 남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그자의 몫인거지, 이런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신의 본을 보여주고, 자신을 본을 보며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유모가 하는 것처럼 헌신하며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모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양육했습니다. 자기 아이들 먹일 젖도 부족한데 남의 아이까지 젖을 먹인다는 것은 희생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모로 번역된 단어는 여러 많은 영어성경에서 nursing mother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람들을 길러냈다고 하는 것이지요. 가르칠 때 거기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다거나, 가르치기만 했다면, 결코 유모가 되었다, 사람들을 길러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마치 유모가 된 것처럼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며 가르쳤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돌보고, 양육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과 바울의 일행이 유모처럼 사람들을 양육했던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아까 읽었던 1장 6절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본받고, 그리고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첫 출발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다양하게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을 보여주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본을 보이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마치 유모가 된 것처럼 자기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으로, 인내로, 사람들을 양육하는데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은 목회자만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과 바울의 일행을 통해 보고 배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복음을 전하면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살전1:7 에서는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 본은 어떤 본이였을까요? 당연히 보고 배운데로 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길게는 3개월 정도밖에 데살로니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생겼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목회자의 지속적인 가르침과 양육이 없이 스스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1년에서 1년 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 어린 교회였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음부터 하고 있었던 것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동시에 본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 배운 것은 유일하게 바울과 그 일행이 자기들에게 보여준 유모와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8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과 그 일행들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어주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길러냈고, 자기 목숨까지도 주는 것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까지 주는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 그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도 남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헌신을 하며 유모를 자처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길러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한 바울은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본을 따라 배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믿는 자들에게 그대로 본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유모가 되어 주어서 그들이 잘 커나갈 수 있도록 돌보며,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깊이 사랑하며 헌신으로 사람들을 양육해가는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돌보며 길렀기 때문에, 길어야 1년 반정도 되는 어린 나이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본을 보여 줄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는 영적인 부모로 모두 성장해 가야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을 보여주며 영적으로 어린 자들이 잘 성장해갈 수 있도록, 영적인 돌봄과 양육을 해주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사랑을 하면서 영적으로 보살폈던 바울에게 참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부족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을 보이며 사랑안에서 영적으로 잘 보살펴주어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해가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때 영적으로 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영적인 부모가 되어 준 것처럼, 저희도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영적인 부모로 자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옵소서. 진정한 사랑으로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품게 하시고, 자신의 생명까지 나눠줄 수 있는 사랑으로 양육할 때, 양육을 받은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