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가라
Notes
Transcript
에베소서 5:8–14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성경은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 볼 때 세상이 세상을 보고있는 평가와는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원래의 계획들을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세상을 창조시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세상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상을 인간의 죄로 망가뜨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셨던 세상에서 살지 못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셨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하셨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성령을 대신 자기 자신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성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셨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서로 경계하며, 이웃에게 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제한적인 사랑을 하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이 아름다운 이 세상을 잘 경작하기를 바라셨지만, 죄로 인해 인간은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사용하며 망가뜨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계획과 뜻으로 움직이는 하나님 나라를 지으셨지만, 인간은 그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만든 세상을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인 땅도 같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다시 원래의 계획으로 돌이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망가진 인간을 회복시키려고 하시고, 저주를 받은 물질세계도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려고 하십니다.
죄로 인해 깨진 세상에 사는 인간은 이 세상이 하나님이 원래 만드신 계획에서 깨지고 망가졌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다른 관점을 시간의 개념이나 이미지의 개념으로 구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전과 이제라는 시간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어둠과 빛이라는 이미지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 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바울은 지금의 터기에 있는 에베소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다.’ 전에는 너희가 어둠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깨진 세상에서 살았던 그 때는, ‘전에는’ 어둠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는 자신의 삶에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기 전과 후의 삶의 변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더 퇴행해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결과들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기 전의 자기 상태에 대한 자기 인식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그 때에 자기의 모습에 대한 자기 성찰이 부족한 것이지요. 한번도 자기가 어둠이었다는 것을 모르면 전이 없기 때문에 후도 없습니다. 변할 필요가 아예 없는 것이죠. 전에 살았던 자기의 상태가 별로 변해야 할 상태였다는 것을 모르면, 변화가 스스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자들을 심하게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 맞아 죽을 때 돌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맡으면서 그 투석형을 리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던 자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을 했고, 그 후로 정반대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목회 말기 즈음에 씌여진 데모데전서를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글을 쓰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나누는 내용이 나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디모데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회심하고 거의 20년이 지난 상황에서, 목회도 거의 후반부에 있을 무렵 바울은 자기의 정체성이 죄인 중에 괴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괴수니라 하고 할 때 동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쓰여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하면 괴수라고 하는 자기인식을 현재진행형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죄인중에 괴수였지가 아니라, 회심을 하고도 목회를 하면서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여전히 죄인 중에서도 가장 나쁘고 죄질이 좋지 않은 괴수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의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깊이 성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둠이었던 자기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이었는지를 잊지 않고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인식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깨진 세상의 일부가 되어 살아갔던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겁고 추했는가를 바울은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고 난 이후의 삶은 그 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 후의 삶은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어떻게 이런 고난의 삶을 피하지 않고 살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을까요? 바울은 자기가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의 삶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삶의 별다른 변화가 없다거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더 퇴행해가고 있다면 과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기 전의 죄인이었고, 어둠 그 자체였던 나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끔찍했고, 죄인 중의 괴수로 나를 정말로 발견했는가, 깊이 성찰해보았는가를 질문해봐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발견하지 못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으로 동의만 하기 쉽습니다. 죄인이라고 지적으로 동의하는데 그치면, 자신이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이었는지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1달란트는 6000일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16년치 품삯입니다. 하루에 100불 번다고 한다면, 1달란트는 60만불의 금액입니다. 그러면 1만 달란트는 6 빌리언, 6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도저히 개인적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하기 이전에, 내 죄의 값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정도의 크기였구나, 내가 그렇게 심각한 죄인이었다는 것을 먼저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는 자신을 깊이 발견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전에 자신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깊이 성찰해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는 이후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의 전에 모습에 대해서 정작 내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들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괴수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더 나쁜 죄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깊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죄인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심각했었는지를 깊이 성찰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깊이 발견했던 바울은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기 전과 후의 삶이 아주 반대였습니다. 이전의 삶에 큰 변화가 바울에게 찾아왔습니다.
8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행동은 늘 생각의 변화부터 시작됩니다.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동하기에 앞서 자신이 주안에서 빛이 되었다는 생각이 명확하지 않으면 행동은 그대로 어둠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빛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명확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전에는 내가 어둠이었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전환이라는 것입니다.
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모르면, 거기서 나온 지금의 모습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전에는 어둠이었고, 심각한 죄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지금은 주안에 다른 삶을 요구하는 그 요청에 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빛이 되었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이 되어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구체적으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고 난 이후의 나의 삶에서, 나는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들을 맺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8절 말씀을 다시 보면, 전에는 이랬지만 지금은 이렇게 새롭게 되었으니,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행하라라는 단어는 현재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계속 행하라라는 의미입니다. 한 두 번 해라라는 뜻이 아니라 계속 행하고 있어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빛의 열매를 계속 내지 못하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 열매를 내기 버거워한다면, 열매가 맺히는 게 중단이 되거나, 또는 빛의 열매를 내 본적이 없다고 한다면, 내가 누구였었는지를 다시 기억해내야 합니다. 어둠일때는 빛의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고 주안으로 옮겨져 왔는데, 그래서 빛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둠에 머물고 있다면 빛의 열매를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 것입니다. 빛의 열매가 잘 나지 않거나, 과거에는 빛의 열매를 냈었지만 지금은 중단되어 있거나, 처음부터 빛의 열매를 낸 적이 없었다면 내가 다시 어둠에 영향아래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주 안에서 빛이 되었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이 맺는 열매 안을 들여다 보니 어떤 특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9절 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처럼 빛의 열매도 단수로 씌여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이라는 열매, 기쁨이라는 열매, 오래 참음이라는 열매들이 있는게 아니라 성령의 열매 안을 들여다 봤더니 그 안에 사랑과 기쁨과 오래참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도 그 안을 들여다 봤더니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가득차있더라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행동할 때 열매를 내게 되는데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착함도 보이고, 의로움도 보이고, 진실함도 보인다라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착한 행동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고, 진실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빛이 되었으면 이제는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갈 때 빛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착함은 선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열매를 먹었는데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맛이 난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특이한 맛을 내는 열매를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모세가 율법의 두돌판을 받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는데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화가난 모세가 두 돌판을 그 위에 던져서 깨뜨려버렸습니다. 하나님도 그것때문에 백성들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있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을 가지고 다시 산에 오르라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자신을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선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선하시고 진실하신 분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빛의 열매가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다보니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속성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망가져버렸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 되어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는 죄로부터 망가져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둠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빛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회복되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선함과 죄가 없는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으신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이죠.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처음 지음받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회복되어 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 빛의 열매를 내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깨지고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다시는 어둠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다시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진채로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참여하지 말라, 책망하라 라는 단어도 8절의 행하라, 살아가라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빛의 열매가 없는 다시 말해서 깨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그렇게 잘못 살아가는 것을 책망하며 지속적으로 거기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온 세상의 회복됨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죄로 인해서 인간안에 망가져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인간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있고, 회복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라,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춰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 세상을 회복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시는 이유는, 빛의 자리에서 우리가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세상에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비추시고 계십니다.
14절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을 통해서 이 세상을 회복시키실 메시아가 곧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을 살려내실 것이라 약속을 했는데, 바울은 그 약속이 지금부터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깨어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빛의 자녀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전에는 어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둠의 관성이 있어서 어둠의 자리에서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빛을 나에게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십시오. 빛이 있을 때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둠속에서는 어둠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에베소서 5:11–13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갈 수 있습니다.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 빛의 열매를 맺어가시를 바랍니다. 선하고 진리가 많으시고, 죄가 없어 의로우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을 회복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비취움을 받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원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깨지고 망가져 버렸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고, 성령을 따르기 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게 되었고,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세상을 잘 다스리며 살기보다는 거의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닮을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을 회복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빛이 오늘 다시 내안에 깊숙히 비춰서 어둠이 드러나도록, 어둠이 책망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 땅에 불의와 전쟁이 사라질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이 세상은 돈과 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과 힘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불의와 전쟁이 필요악으로 수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불의와 전쟁과 슬픔으로 상하고 망가져 있는 이 땅이 정의와 평화로 기뻐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세네갈에 나가있는 선교팀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가지 고통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어려움 속에 있는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들의 소리를 먼저 듣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들을 먼저 도울 수 있도록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돕는 손길들을 통해 고통중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잘 회복되어 어려운 시간들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개인의 기도제목으로 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희 안에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이 지어져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셨는데, 죄로 인해 어둠이 되었고,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주님, 다시 주님의 빛을 비춰주시고,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서 이 세상을 지금도 회복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이 세상을 회복하시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리는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