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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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장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종말의 징조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심판과 징조들은 단순히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준비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날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의 전반부 내용이 끝나고 이제 중반부 내용으로 넘어간다. 계시록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요한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 7인과 7나팔, 7대접 내용이 중심을 차지한다. 중간에 배경설명, 부연설명, 연관 설명, 세부설명과 같은 장들이 추가되지만, 중심흐름은 7인, 7나팔, 7대접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뉜다.
이 7인, 7나팔, 7대접은 각각 독립된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인 심판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흐름입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5장에 나온다.
5:1 보좌에 앉으신 이, 하나님이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가지고 계신다.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이 책은 너무 중요한 책이다. 하나님이 친히 오른손에 들고 계시는 책이니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인봉을 했는데 얼마나 철저하게 인봉을 했는지 7개의 인으로 인봉했다.
2절: 천사가 누가 두루마리를 펴고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라고 하는데
3절: 사도 요한이 보니 하늘 위에, 땅 위에, 땅 아래에 누구도 이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다. 천사도, 어떤 사람도, 어떤 믿음의 선진도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 과연 이 두루마리는 어떤 책이길래 그런가? 이 두루마리에는 무엇이 적혀 있길래 그런가?
겔 2:9-10
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두루마리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두루마리 안에는 애가와 애곡, 재앙의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두루마리를 보여주십니다. 이번에는 인류 전체를 향한 심판이 담긴 두루마리입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께서 기다려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심판이 임박했음을 보여 주십니다.
이 두루마리를 감당할 수 있는 분은 단 한분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온 몸으로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고 펼치실 수 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 있다.
5절: 24장로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서 심판을 이기셨기에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신다고 외친다. 그리고 7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신다. 이 두루마리는 7인으로 봉해져 있다. 이제 예수님이 그 봉인을 하나씩 떼신다. 봉인이 다 떼어지면 두루마리는 펼쳐지고 그 안에 하나님의 진노, 즉 심판은 이 땅에 행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7인, 7나팔, 7대접을 해석해야 한다.
6장부터 나오는 7인을 하나씩 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기록했다. 1절에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때에.’ 7인을 하나씩 떼시는데, 그때마다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심판 전에 있을 징조이다.
7인을 다 떼고 7나팔을 부는데, 이 나팔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기 직전에 부는 나팔로, 구약에서 부는 나팔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출애굽기에 보면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했었다. 전쟁 시작하기 전에 나팔을 불기도 했다. 이제 심판이 완전히 눈앞에 왔으니 모두 모이라는 소집 명령과 같은 것이다. 재림 전 있을 성도의 마지막 전쟁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일곱 번째 나팔은 신약 다른 곳에서 큰 나팔로, 마지막 나팔로 언급하는데 예수님 재림 직전에 있을 사건과 연관하여 말한다.
16장에서 7대접을 땅에 쏟는데, 7대접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부른다. 그동안 시행되지 않고 미루었던 하나님의 진노가 땅에 부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
두루마리에 하나님의 진노, 심판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의 중간 내용은 이런 구조 안에 다양한 내용이 삽입되어 있는 구조이다. 계시록 후반부의 내용에는 여러 논쟁이 많은 천년 왕국과 백보좌 심판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 6장에서 어린 양께서 두루마리에 인 쳐진 봉인을 하나씩 떼신다. 그때마다 흰 말과 탄 사람, 붉은 말과 탄 사람, 검은 말과 탄 사람, 청황색 말과 그 탄 사람이 나온다. 이기고 또 이기고,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게 하고, 기근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다섯째 인을 뗄 때는 순교자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신원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여섯째 인을 뗄 때는 하늘에 무서운 징조가 나타난다. 8장에 일곱째 인을 뗄 때는 특별한 현상 없이 반시 동안 고요해진다. 인을 뗄 때 나타나는 현상을 하나씩 설명하지는 않겠다. 해석에 논란이 있기에 차근히 증명하며 설명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지금을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큰 틀에서 설명해보겠다.
복음서에 종말장이라고 부르는 마24장, 막13장, 눅21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말세에 있을 징조를 물어볼 때 대답해주신 내용이 있다. 그 순서가 조금 차이가 있고, 어떤 곳에 있는 것이 다른 곳에 없기도 하지만 대략 계시록의 내용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말세의 징조인 6장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계시록의 내용을 기준하는 이유는 계시록이 밝혀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말세의 징조를 사람의 미혹, 난리와 난리의 소문, 기근과 지진의 순으로 말씀하신다. 마가복음은 사람의 미혹, 난리와 난리의 소문, 지진과 기근 순이다. 누가복음은 미혹, 난리와 소요의 소문,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 순이다.
계시록 6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조 역할을 한다. 우리는 빛의 아들로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지 못한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징조를 알 수 있도록 하셨다. 그렇다고 첫 번째 인은 어느 사건, 네 번째 인은 어느 사건 이렇게 대입할 수는 없다. 많은 성경학자, 훌륭한 목사님들이 그렇게 대입하여 해석하다가 시간이 지나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6장의 징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관점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의 기준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서 딤후3장에서 말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하셨다.
딤후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나 이런 일은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현대에 올수록 예전보다 더욱 강해지는 경향을 나타난다. 계시록 6장의 인을 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그렇게 보아야 한다. 물론 역사의 어떤 시기와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 시기만을 의미하지 않고 계속 증가하고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징조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우리 시대가 예수님 재림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에 얼마나 가까웠는가? 수많은 미혹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고, 곳곳에 기근, 지진이 있고, 사망, 전염병이 있고, 순교가 있고, 하늘에 징조가 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무엇이 종말을 준비하는 삶인가? 땅에서 무엇을 얻고, 누리고, 성취하고, 높아지고, 지위를 얻고, 돈을 벌고. 이런 삶은 종말에 합당한 성도의 삶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디에 속한 자인지,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지, 우리가 사모하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해야 할 시간이다. 시한부 종말론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로 신실하게 오늘을 살되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속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나간 신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었다. 나의 삶에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멸망으로 향해 속도를 높여 달려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오늘의 현실에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