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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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14–24 NKRV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서론
청개구리 이야기를 모두 아실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반대로만 행동하던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개구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청개구리가 하도 반대로만 행동해서 자신의 무덤을 산이 아니라 강가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청개구리가 하필 유언은 잘 들어서 강가에 묻고 비가 올 때마다 무덤이 쓸려 내려갈까봐 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교훈이 있지만 그것 중에 하나는 청개구리가 어머니의 본래 의도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말 그 자체에 매몰되어서 어머니의 의도와 반대되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경우가 있죠.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행동과 말에 매몰되어서 진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그런지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형제들이 예루살렘으로 간 후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은 저번 설교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이 한창이던 예루살렘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요?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보여주신 놀라운 사건들과 가르침으로 인해 소위 핫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이 이러한 관심을 통해 인기와 명예를 얻기 위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였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나쁜 사람이고 사람들을 속인다.”였습니다. 그러나 둘다 모두 높은 사람들에게 찍힐까봐 예수님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명절이 한참 진행되던 중, 은밀히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뜰 한곳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지 사람들은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출신과 이력을 듣고는 더욱 놀랐습니다.
“아니.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천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났고 선생님 밑에서 배운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유명한 율법 선생님들보다 뛰어났습니다. 이것은 지금 비유를 해보자면 초등학교 정도 겨우 나오고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이 서울대 교수님들보다 더 잘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놀랍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런 사람이 있다면 방송국과 유튜버들이 다 모여서 비결을 물어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결에 대해 명쾌하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께 배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사람의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라 말씀하십니다. 그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진짜라는 것임을 알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 즉 팩트 체크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어 제가 만약 요리를 가르쳐 주면서 “백종원에게 배운 거야.”라고 말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 제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백종원에게 직접 물어본다거나, 백종원 가게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지 본다거나, 제가 가르치는 요리 방식이 백종원이 가르친 방식하고 같은지 비교하거나 이런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배웠다는 것은 어떻게 팩트 체크를 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방법 모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께 배워서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설명을 덧붙이십니다. 요한복음 7:18
요한복음 7:18 NKRV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 배운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영광을 구했을 것이라 말하십니다. 즉, 형제들의 말처럼 인기와 명예.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하지 않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배운대로 말하고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이 영광 받기만을 구하시기 때문에 불의하신, 나쁜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 처음에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떠했다고 했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람을 속이는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말했습니다. 그 말씀과 지금 17절의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말씀하셨죠?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과 예수님을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시면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사람을 고발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언변술이 놀랍죠? 예수님은 이처럼 지혜로우셨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들을 고발하기 시작하십니다. 19절입니다. 요 7:19
요한복음 7:19 NKRV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예수님이 오셨을 때가지 하나님의 뜻이 잘 드러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의 우리에겐 성경책이겠지만 이 때에는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 지 기록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것임을 모르고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에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에 들려 피해망상에 시달린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님을 죽이려 하냐며 어이 없어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읽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피해망상으로 미쳤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것을 모두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황당해 한 것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불과 150년전 하나님을 섬기면 죽이는 셀레우코스 왕국을 상대로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고, 모든 로마 식민지에서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데 그것에 격렬하게 저항해서 로마가 양보하게 한 이들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목숨을 걸어가며 율법을 지키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니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바로 유대인들은 할례를 위해 안식일을 어기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안식일을 어긴 자신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말하십니다. 할례란 무엇이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할례를 통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 완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몸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어떻습니까? 구약을 보면 알지만 당시 장애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주 받고 무가치했으며 하나님께 드려질 수조차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병자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그를 축복되고 가치있으며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체 하나를 제거해 몸을 완전하게 만드는 할례가 안식일보다 중요하다면 몸 전체를 완전하게 하는 치유는 안식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렇기에 그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자신들 마음대로 기준과 규칙으로 사용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그분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외모로 판단하고 공의롭게 판단하지 않는 자들. 즉, 눈에 보이는 모습에만 집착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것에 무관심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만 집착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것에 무관심한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규칙은 잘 지키지만 실상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는 말씀을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수많은 규칙을 우리에게 지키도록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규칙은 이를 위해서 주어졌고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사라지고 규칙만 남았습니다. 내 죄를 합리화하고 서로를 미워하기 위해 규칙을 활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마음의 안정제로 사용합니다. 눈에 보이는 규칙만 지키는 것으로 내 욕심과 뜻대로 사는 내 모습이 깨끗하다 합리화합니다. 규칙의 빈틈을 찾아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규칙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입니다.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규칙을 사용합니다. 규칙으로 상대를 정죄하고 공격하여서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품으로 사용합니다. 하기 어렵고 귀찮은 규칙들을 지켜내며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거룩하고 우월하다 생각합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잘 알고 잘 지키는 자들이지만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연약한 모습과 죄로 넘어지는 모습을 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오늘 이러한 상황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이의 연약한 모습, 죄로 넘어지는 모습을 보았다면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죄로부터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도하면서 말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죄인을 향해 어떤 마음이신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방법을 깨닫을 때까지 기도와 말씀을 보기를 멈추지 말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충만해졌다면 이제는 담당 사역자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담당 사역자에게 죄에 대한 교회의 질서와 방법을 묻고 그 지도에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그 사람의 죄가 오히려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기회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참 어렵고 힘든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를 위해 이처럼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쉽고 가볍고 경솔하게 죄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과 희생으로 그 사람의 죄를 다루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결론
오늘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규칙에만 집착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고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대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 유대인의 모습이 오늘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규칙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위해 순종하신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살리시기 원하시는 한 영혼을 위해 애쓰신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에서 온전히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고 우리를 통해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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