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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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묵도 하시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540장, 통일찬송가 219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찬양하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하 3장 17~26절 말씀입니다.
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18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20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새 아침을 허락하시고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 우리의 작은 정성을 담아
드리는 예물이 있으니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드리오니
소원하는 기도의 제목들을 응답하여 주시고,
하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기도하는 분들 계십니다.
치유하여 주시고, 절망과 낙심, 외로움과 고독, 중독과 악습관,
상처와 아픔, 영적으로 메마르고 지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삶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매주 금요일 새벽예배 때 사무엘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설교 강단을 허락하신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리며,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은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후 있었던 사건입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첩이었던 리브가와 동침하다가
이스보셋에게 그 사실이 들켜 질책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보셋에게 있어서 사울의 첩이면 계모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군대장관이 계모와 동침을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런데 되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나무라면서 화를 냅니다.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운 것을 잊었느냐?
네가 다윗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너를 구해주었고,
다윗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을 내가 알았음에도
너를 왕으로 세워 사울의 나라를 이어가게 했는데,
고작 이깟 일로 나를 책망하느냐?”
이 말에 이스보셋은 아브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립니다.
그런데 아브넬은 지적 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더이상 이스보셋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 사람들을 만나
다윗 왕을 모시자고 설득합니다.
그리고 나서 헤브론에 가서 다윗을 만나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나온 역사를 되짚어 보면, 항상 전쟁은 퇴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위장술’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위장술의 역사는 오히려 전쟁사와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세계 대전에서 위장술을 주로 하는 화가들이
강제 징집된 것은 고증된 사실입니다.
늘 전쟁 속에는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이 난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아브넬과 요압의 거짓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야말로 위장술의 대가들처럼 보입니다.
아브넬의 계산
18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아브넬은 이제 때가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이 이전에 요구했던 바를 실천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한 성경구절이 사무엘상 9장 16절에 등장합니다.
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셨던 약속입니다.
아마도 아브넬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던 일을 기억하면서
사울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게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다윗에게 이어졌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넬은 정확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변호합니다.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아브넬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18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이고,
19절은 베냐민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을 이스라엘과 구분하여 언급하는 이유는
베냐민 지파가 사울의 지파였기 때문에
사울 왕국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각별히 신경을 써서 설득하는 것입니다.
19절에 “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강조 어구 “감”입니다.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에게 말하고.
또, 즉 히브리어 강조 어구 “감”을 사용함으로
아브넬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특별히 더 신경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기 위해
각 지파의 장로들과 베냐민 지파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파의 장로들은 이전부터
다윗을 왕으로 세우자고 제안했었습니다.
그말인 즉,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신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이제는 자신이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합니다.
마지 자신이 왕이고,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아브넬은 다윗을 추대하는 것이
사울 가문에 대한 변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충절이라고 설득합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반역을 신학적으로 정당화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단지 자신의 야망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거사는 뜻하지 않는 피살로 물거품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 없는 오만의 내리막길은 가파랐습니다.
2. 다윗의 계산
20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아브넬이 부하 20명과 함께 헤브론을 방문합니다.
여기서 부하는 히브리어 ‘아나쉼’으로 ‘무기를 든 사람들’입니다.
즉 아브넬의 친위부대를 데리고 방문한 것입니다.
만약 지파의 장로들과 이야기가 잘 되었다면
장로들과 함께 방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하를 데려왔다는 것은 자칫 공격을 받으면
자신의 몸을 피해 도망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21절에서도 아브넬의 이름이 계속 언급됩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다윗에게 자신이 다윗을 위해 할 수 있는
3가지 일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연장 어미 히브리어 “아”를 붙여 언급합니다.
연장 어미 “아”를 붙이게 되면 강조의 의미가 되어서
주어가 그 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줄 때 사용합니다.
내가 일어나서. 아쿠 마!
내가 가서. 엘레 카!
내가 모으겠습니다. 에크버 차!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이 적극적으로 힘써서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아브넬은 이미 다윗을 “내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보셋의 왕국에 참여한 지역과 지파들의 목록을 본다면,
아브넬이 전체를 모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지파의 장로들과도 협의가 다 안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스보셋과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장로들이 안다면
아브넬의 말을 온전히 신뢰할지는 의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호언 장담하며 자신이 다 모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브넬은 또 어떤 꼼수를 써서 다윗의 눈을 가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넬의 의도를 다윗이 알고 있음에도
그를 평안히 떠나 보냈습니다.
다윗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아브넬의 제안을 수용합니다.
물론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쟁 없이 통일을 이루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사울의 뒤를 이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니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넬의 간교함을 알고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다윗의 교만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다윗은 의심해었야 합니다.
현재 왕인 이스보셋의 의향도 물어보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게 물었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윗은 한번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혹시 나의 인생에서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
스스로 제동을 걸고 멈추어 서서 하나님께 물었습니까?
순탄함이 항상 축복은 아닙니다.
그늘이 없고, 그림자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다윗의 성대한 환대에 아브넬이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의 충성에 화답하여
다윗은 서둘러 아브넬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들이 나눈 밀담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단합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야합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보여도,
하나님의 방법을 묻지 않은 하나님의 뜻은
절대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3. 요압의 계산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아브넬이 헤브론을 방문하는 동안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은 여러 지역을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요압이 “적군을 치고” 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거두드”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뜻은 “습격부대가 되어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정복한 적군의 땅에 가서 약탈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적군의 공격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전쟁을 하고
돌아온 상황이라고 한다면, 다윗이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지역을 약탈하러 갔다는 것은
다윗이 미리 그 시간과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다윗이 아브넬을 불렀다는 것은
이미 다윗이 요압과 아브넬의 적대적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마주치지 않게 하여,
아브넬과의 협상을 순조롭게 끝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실이 요압에게 알려졌습니다.
22절과 23절에 “평안히”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평안히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브넬의 평안한 귀환이 요압에게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분노한 요압은 다윗에게 가서 왜 그렇게 평안히 보냈냐고
다윗에게 따지면서, 다윗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요압은 아브넬이 다윗의 행동을 정탐하기 위해
헤브론에 왔다고 거짓 고발을 합니다.
지금 아브넬이 다윗을 속이고 있다고 거짓말을 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요압입니다.
요압은 자신의 복수에 눈이 멀어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스럽게 다윗에게 고발합니다.
25절 하반절에서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여기서 한글 성경에는 “왕”으로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아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당신”이라는 뜻의 2인칭 단수 대명사입니다.
요압은 너무 화가나서 흥분한 나머지
나중에는 다윗을 왕이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자가 왜 왔는지 아시오?”
“당신이 뭐하는지 알아내려고 온 첩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말만 외치고,
다윗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25절 하반절부터 26절 상반절까지 이어서 보면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요압이 화가 나니깐 이제 다윗도 왕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넬도, 요압도 자신이 섬기는 주군보다
자신의 이익, 자신의 복수가 먼저였던 것입니다.
결국 요압은 다윗에게 항의한 후 돌아서서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 맙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에
원한을 품을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아브넬은 지금 한 나라의 사신의 신분으로 왔습니다.
사신의 신분 보장은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사적인 앙심을 해결하지 못해
자신과 나라에 파국을 부를 수 있는 어리석을 짓을 하고 맙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마저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과 아브넬의 은밀한 화합은
결국 요압의 은밀한 보복으로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이 방문하여 거짓 음모론을 고발했지만,
정작 요압의 관심은 다윗 왕의 안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의 나라를 위한 것도, 하나님의 뜻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사적인 복수 뿐이었습니다.
결국 과거와 보복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세워가는 큰 뜻에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결론
전쟁에서 위장술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서 위장은 패전의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숨은 동기를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겉과 속이 다른 거짓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위장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습을 감추는 화장을 지우고, 위장을 걷어내야 합니다.
거짓과 계략, 야합과 허세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아브넬처럼 하나님의 뜻을 나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다윗이 순조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마지막 요압처러 개인적인 감정과 이익에 사로잡혀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어리섞음에 빠지지 않도록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아닌, 정직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크고 작은 모든 결정 앞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옵소서.
11월 한달동안 2024년 한해를 잘 마무리하여 내년을 잘 준비하는 각 기관과 부서들이 되어지도록
수능이 6일 남았습니다. 수험생들에게 지혜와 체력을 주시고,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승리할 수 있도록
환우들이 육적인 질병, 내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시도록
각자의 기도제목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