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떠난 결과(사무엘상 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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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제가 다니던 교회 앞에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그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자주 훔쳤는데 저보고도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카라멜 조그마한 것을 몰래 하나 훔쳐서 나왔는데 그 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다시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고 그 한번으로 저의 도둑질이 끝났을까요? 문제는 들키지 않았다는 거에요. 처음이 두렵지 이제는 노하우까지 생겨서 조금씩 부피가 큰 것들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악 하나를 허용하니 그 악이 평범해져서 이제는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도둑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자를 몰래 훔쳐서 나오려고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딱 잡는 거에요. 알고보니 그동안 주인 아주머니가 다 알면서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때 호되게 혼이 나면서 부모님께 연락하겠다고 집 전화번호를 적고 가라고 해서 정신없이 전화번호를 적고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집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제가 벌벌 떠는 거에요. 전화를 받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만 심각해져도 이제 나는 죽었구나 생각을 하고, 그러다가 별 일 없이 전화를 끊으시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있는대로 먼저 제가 사실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당연히 혼이 났겠지만 오히려 그 두려움의 시간이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참 회개가 안되고 회개를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슈퍼 주인 아주머니가 저희 집에 전화를 하시지는 않으셨어요. 그래도 그 때 그 두려움의 시간이 너무나도 강렬해서인지 저의 도둑질은 그때 끊어졌습니다.
오늘도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엘리 제사장입니다. 앞서 우리가 묵상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의 문제를 여러 사람을 보내 지적하셨었죠. 그럼에도 돌이키지 못했던 엘리와 그 가문의 비참한 마지막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라고 알려주세요.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심판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행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묵상해왔던대로 엘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심판을 경고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심판의 말씀이 두려웠겠지만 그 말씀을 듣고도 당장 내 인생에서 힘든 일이 찾아오지 않으니 그 두려운 마음마저 무뎌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 의해서 언약궤가 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 함부로 지정한 장소에서 벗어나면 안되었어요. 백성들과 장로들이 나서서 그것을 옮기자고 했을 때 엘리는 대제사장으로써 그것을 말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둔감하고 무능해진 엘리는 그것을 묵인하고 방조했어요. 그것이 얼마나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며 회개해야 할 일인지를 엘리가 깨닫지 못하니 이름도 없는 어떤 베냐민 한 사람이 전장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러 달려옵니다.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그런데 엘리의 모습을 보니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이맘아 떨릴 즈음이라고 하지요. 엘리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께 말씀에서도 엘리 가문이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아는 죄 때문이라고 했지요. 엘리는 자신의 죄를 이미 알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떨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드디어 이제 심판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엘리가 수많은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회개가 안 되니까 두려워만 하고 결국 그 두려움이 현실로 찾아오게 된 것이지요. 들키지 않아서, 사건이 찾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말씀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말씀에 대한 신뢰도 없고 아무 일이 없으면 다행이고 있으면 큰 일이라고 여기니, 절로 기복을 구하며 거룩이 아닌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늘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인생을 통해서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저도 늘 두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참 두려웠었고, 커가면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늘 내 자신보다, 말씀보다는 사람들의 기대치에 저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보니 저를 숨기고 감추며 포장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고, 그것을 인정하면 참 쉬웠을텐데 그게 참 안되더라구요. 그런 수준 이하의 모습이 안팎으로 드러날 때마다 더 숨기기 바쁘고 더 포장하기 바쁘니 모든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저 자신에게 맞추려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사역을 하면서도, 가정을 꾸려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이런 저의 아는 죄를 직면하지 못하니 날마다 두려울 일만 생기고 이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속에 파묻혀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최고의 상급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제 삶은 세상의 상급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사역에 대한 보상도 스스로 부여하면서 빚을 지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사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겉으로는 고상하게 사역을 열심히 하는 사역자로 포장하면서 살았지만 온전히 회개하지 못하고 그 악을 키워가면서, 다 드러나면 어떻게 하지, 늘 걱정하고 두려워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대제사장으로 두 아들의 더러운 죄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 같고, 언약궤 앞에서도 하나님보다 백성들과 장로들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이 아닌 내 힘으로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엘리의 마지막 모습이 두려워 떨고 있는 모습인 것을 보면서 바로 저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치리를 받으면서도 저는 저 스스로 저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간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아내에게 들키고, 교회에 들켜서 치리를 받고 그 치리를 통해 겨우겨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엘리를 묵상하다가 저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 그렇게 들키게 하신 것이 복이고 그것을 또 고백할 수밖에 없게 하신 이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저에게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예수님을 믿고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 있다면 무조건 회개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라고 하셨고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불안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도 하지 않고 적용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목사니까, 내가 목자니까 해결이 되겠지하는 것이 바로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것을 막아서시고 두려운 사건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일을 겪게 하시는 것은 돌이켜 살아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운 사건 앞에 여전히 요행을 바라고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인 무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전장에서 돌아온 베냐민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하고, 살육당하고, 엘리의 두 아들이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니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엘리가 이 언약궤에 대해 얼마나 부담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적용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15절에,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의 모습과 연결이 됩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졌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모세는 120세에 죽을 때에도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고 했지요. 사명이 다할 때까지 영적으로 쇠하지 않았던 모세입니다. 그런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이 엘리입니다. 영적으로 둔감하고 무감각하며 무능했던 엘리는 두려워 떨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엘리도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말씀을 부르짖고 그 말씀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태평성대의 때가 계속 이어지고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래 있으니 점점 그 마음이 희미해져갔을 것입니다. 엘리가 40년 사역을 감당했는데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로 그가 사역했던 기간동안 블레셋이 쳐들어왔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편한 세월 속에서 육체의 눈과 함께 영적인 눈도 어두워졌어요. 깨어있지 못하게 하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부르셔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었어도 회개하지 못합니다.
지난 여름, 주일설교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로부터 이런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이 정지훈 목사님 설교는 재미있고 잘 들리고 다 좋은데, 요즘엔 회개가 별로 없으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처음에는 내가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제가 또 포장하는 게 전문이잖아요. 본문에 따라 설교하다보니 회개에 대한 부분이 좀 약하게 나왔나보다, 선교국 헌신예배였기 때문에 좀더 목적에 맞는 말씀을 전하려다보니 그러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는 생각입니다. 왜 회개가 별로 없는 설교라고 들으셨을까 고민을 하다보니 그 안에 교묘하게 숨어있었던 저의 본심이, 이제 저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좀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제 안된다는 얘기 좀 그만하고 나도 좀 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의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했던 저의 죄와 악한 마음이었음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이 날마다 말씀을 들으시고 그 말씀대로 치열하시게 사시는 분들이시기에 저 스스로는 속이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에 속지 않으시고 단번에 그런 피드백을 해주셨다는 생각이 드니 참 부끄럽더라구요. 여전히 저는 돈 문제와 중독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회개보다는 회피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기에 그런 저의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가 설교에도 그대로 묻어나왔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사역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고 생활에서도 별로 어려움이 없는 나름의 태평성대의 때를 살다보니 치열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죄를 보는 것에 무감각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공황장애로 아팠을 때는 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말씀을 붙들고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증상도 많이 없어졌다보니 절로 교만한 환경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가르친대로 살아내는 본을 보여야 하는 자였음에도 눈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고 회개도 못했던 것처럼 저 역시 그런 목사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선지자와 같은 우리 성도님들이 소리를 질러주신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엘리가 비대했다고 하잖아요. 살도 여전히 잘 못 빼고 있는, 적용이 참 안되는 것도 닮았습니다. 목사님께 양육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 중에 정 목사는 아이디어도 있고 열심도 있는데 끝이 좋지 않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납니다. 엘리도 40년 동안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 끝이 좋지 않은 대표적인 지도자로 남았는데 이것마저도 엘리와 닮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악한 엘리의 모습이 죽어지고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무엘이 제 인생에도 등극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치열하게 보고 회개할 것을 찾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회개보다 회피를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시아버지 엘리도 죽고 남편 비느하스도 죽었는데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래도 집안의 대가 끊기진 않겠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비느하스의 아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관념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고 영적인 자녀가 끊어졌는데 육적인 아들을 낳은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의 집안에서 떠나게 된 것은 마지막까지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차례 경고하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기회를 주셨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은 절대로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돌이켜 살아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손에 움켜진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놓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심판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가져도 영원한 구원을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가봇이 태어나서보니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어가고,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태어난 것이 저주로 느껴질만큼 비참한 삶이 아니었을까요? 성경에서 그 이후로 이가봇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래도 몰락한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 평생을 겸손한 환경에서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저주와 같은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며 떠나간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희 집에도 아들이 하나 태어났거든요. 이제 6개월 된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어떤 환경을 물려주며 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겉으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도 속으로는 늘 두렵고 떠는 모습이 아니라 부족해도, 늘 안되는 것만 보여주더라도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비가 되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냐라고 묻는 다진이라는 이름인데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이 저에게 진실함을 물어보신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살아가야할 것 같습니다.
오늘 비느하스의 아내의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영원한 것인데, 영적인 것을 다 빼앗긴 마당에 육적인 아들이 무슨 기쁨이 되겠냐’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이 엘리 집안의 마지막 믿음이었다고 목사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무너지기 전에, 심판을 당하기 전에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심판 가운데서도 내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고 고백하며 회개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상급이 최고의 상급임을 깨닫게 되면 다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마무리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두려워만 하다가 사라질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잘될 것이라고 믿으며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태함과 불순종이 될 뿐입니다. 엘리처럼 영적으로 무능하고 눈이 어두워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함으로 비참하게 죽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내가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오늘 하루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엘리의 삶의 마지막을 보면서 저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엘리처럼 비참한 삶을 살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오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길보다 회피의 길을 찾으며 여전히 두려워만 하고 있는 저희들의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제는 말씀 앞에서 순종하고 적용할 것을 찾으며 우리 인생의 주인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우리의 무지함과 나태함과 죄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심판의 사건이 찾아왔다면 그 때라도 주님 앞에 엎드리는 저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일 수 있게 도와주시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서 떠나지 않도록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시간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겨서 영광이 떠난 것만 같은 우리의 힘든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혼 위기와 별거, 자녀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와 질병의 문제 등 이가봇이라고 외쳐야만 할 것 같은 우리들의 가정이 있다면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곳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제라도 돌이켜 살아나는 구원의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 주님 이름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계속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땅의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비롯한 이 땅의 목회자들이 엘리와 같이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무능한 지도자가 되지 않게 도와주시고 날마다 말씀 앞에 나의 무지를 고백하며 모세처럼 눈이 흐리지 않는, 하나님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참된 종으로 설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담임목사님 지금 베트남에서 목회세미나를 인도하고 계신데 영육간에 강건함을 허락해 주시고 모든 사역 위에 기름부어주셔서 가시는 곳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THINK 목회세미나 이후 시작된 목회자 양육을 통해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한 가정, 한 교회를 세워주시고 우리들교회 모든 부서와 양육 위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생명을 낳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에 쓰임받게 해달라고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남북과 좌우로 분열되어 있는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라가 있어야 예배도 드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로만 입으로만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수고와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섬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심판의 말씀 앞에서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않는 이 나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특별히 인구절벽의 절체절명의 현실 앞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는 이 나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낙태법과 차별금지법,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수많은 악법을 막아주시고 이 땅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성령의 통치를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주님 이름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중독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이 생겨야 중독이 끊어진다고 하셨는데 더 좋은 우리 주님을 만나서 우리 안에 우상의 산당이 제거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불치병과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지체들이 있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주님 피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시고 고쳐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회복시켜주시옵소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엘리의 마지막이 저희의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속에 악한 엘리가 죽어지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무엘이 등장하길 원합니다. 특별히 이 시간 모든 것이 끊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만 같은 사건과 질병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내 사모하는 주님을 만나기에 소망의 문이 되지만 또 저희가 너무 연약합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쳐주시고 살려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피묻은 손으로 안수하여 주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나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질병으로 또한 고통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 가운데 악한 생각으로 틈을 타려는 사탄 마귀를 꺾어주시고 구원의 생각, 생명의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낼 수 있도록, 악신이 아니라 성령에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심판받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은 결과 구원받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계속해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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