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쓴물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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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출 15:22-27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도입(본문 설명)
도입(본문 설명)
오늘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출애굽하여, 홍해를 막 건넌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애굽의 10가지 재앙이 내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10가지의 심판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신봉하는 애굽의 신들을 하나하나 심판하신 사건이였죠. 애굽이 심판 당하는 것을 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진짜 강한 신이구나!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말이나 소문을 들은 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부로 느꼈습니다. 또 그들은 출애굽 할 때는 모든 은금, 패물을 가지고 떠나게 될 정도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추격해올 때에 갈라지는 홍해를 보았고 애굽 병거가 홍해에 수장되는 것까지 경험했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엄청난 기적들을 연달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른지 얼마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를 매우 당혹하게 합니다 홍해 사건이 지나고 불과 3일 만에 이스라엘 자손은 물이 없어서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일까요? 3일 만에 그 은혜로운 찬양은 원망의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의문 제기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왜 이런 일을 행하신 것일까요? 이스라엘을 안보내주겠다고 하는 바로의 거부에도 멈추지 않고, 애굽을 한 차례 한차례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걸까요? 불평 불만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굳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하나님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던 걸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출애굽기 7: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출애굽기 12: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출애굽기 12: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이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군대로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노예로 산 자들을 보고 군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평생 칼을 쥔 사람들이 아니라 곡괭이 지는 인생들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군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로 불린다는 것은 그들이 단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공동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나타냅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애굽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는 단순한 해방 이상의 의미를 가지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룰 백성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의 목적을 위해 부르신 군대임을 드러냅니다.
출 19:6에 보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 온 열방에 복이 퍼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들은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물리치는 물리적인 군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흑암에 갇힌 자들을 자유케하는 영적 군사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관점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과 우리의 삶을 보기 원합니다.
2. 마라의 쓴 물 경험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획
2. 마라의 쓴 물 경험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획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대장의 말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군인이며 대장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함께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복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뤄야하는 분명한 목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들에게는 연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광야를 지나가게 하십니다. 22절에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실제적으론 하나님이 이들을 인도하시고 광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지중해 대해쪽으로 가면 빠르고 쉽고 편할텐데..굳이 이쪽으로 이끄시는 것엔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대장장이가 강한 칼을 만들기 위해서 쇠를 두드리고, 차가운 물에 넣었다가 뜨거운 풀부물에 넣었다가를 반복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살면서 알게 모르게 붙어있었던 세상의 습관과 노예 근성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노예가 아닌 군사로 부름 받았는데, 그 정체성에 걸맞도록 훈련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시험이 바로, “물”에 관한 시험이였습니다.
물은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며, 광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물”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너희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철저히 가르치십니다.
홍해를 건너 3일을 지났지만 마실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광야에 수도꼭지가, 정수기가 있을리 없지 않습니까?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찾은 물이라곤 마시기엔 너무나 쓴 물이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였습니다. 백성이 원망하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달려가 부르짖습니다(25절) 하나님이 한 나무를 가르키자, 모세는 그것을 물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물 맛이 달게되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구원을 막 얻고, 기쁨이 충만해요. 이제 꽃길만 걷겠구나! 생각하지만, 인생에 펼쳐지는 것은 마라의 쓴물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때 사람은 실망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면 행복할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더 큰 산이 보일 때, 취업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을 때, 인생의 행복을 찾아 결혼했지만 행복은 커녕 갈등만 있을 때, 우리는 살면서 마라와 같은 곳을 만납니다. 멀리서 보았을 땐 그럴싸해 보이고, 나의 갈증 나는 마음을 해갈시켜줄 줄 알았는데..물은 물이지만, 마실 수 없는 물이라니. 그림의 떡과 같은 이 상황! 이 때에 나무 하나가 주어집니다. 여기서 모세가 쓴 물에 던졌던 나무! 이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 쓴 인생이여서 마실 수 없고, 누리는 게 아닌 매여있던 삶에 십자가라는 나무가 던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닌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는 것, 그 십자가로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 구원 얻었다고 나를 잊지 말아라! 너에게 생명을 준 자는 바로 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마음판에 새기고 계시며,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고 계십니다.
200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붙들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나의 말에 순종하거라. 광야의 목마름 속에서 나만 붙들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치료하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이 훈련장에, 광야에 초대하십니다.
3.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3.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광야는 지도로 통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시시때때로 지형이 바뀌는 게 광야 아닙니까? 그 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침반입니다. 나침반의 원리는 북극을 향해 언제나 방향을 가르킨다는 것입니다. 북극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간다고 북극이 남극 쪽으로 가는 일은 없습니다. 광야를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선 나침반을 가져야 합니다. 곧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26절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마라를 지나 며칠 뒤에는 또 어려움을 만나고 불평 불만하게 될 것을 하나님이 아셨을까요? 우리의 인생은 그러합니다. 이제 끝났나? 싶은데 계속 펼쳐지는 어려움과 또 다른 마라..그 때마다 쓴 물 같은 인생에 던져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4:4)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새겨지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시작하는 광야 여정을 통해 우리 속에 숨겨진 완악함과 교만을 말씀으로 다루십니다. 그리고 27절의 엘림을 선사하십니다. 엘림은 마라의 완성입니다. 엘림은 물 샘 열둘과 종려 70그루가 있는 휴식처였습니다. 엘림은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순종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주시는 만족을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마라를 만나지만, 마라가 종착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마라’는 중간 지점이며, ‘엘림’은 최종목적지이자, 도착지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중간 지점에서 유리하거나 방황하거나 원망하여 죽는 인생이 아니라 끝까지 통과하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군대로 보고 계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군대에서,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대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군대로서 복종하며 승리를 맛보는 인생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