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 마리아 (눅 10:38-42)
하나님 나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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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시리즈 (4)
마르다와 마리아
누가복음 10:38-42 / 2024. 11. 8 (금)
Exegetical Point: 예수님께서는 여러가지 일로 인해 불안해하며 염려하는 마르다에게 마리아가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말씀하신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모셨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는 못한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마르다의 섬김은 마리아의 배움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마르다의 마음의 상태와 그녀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마르다는 염려하고 있으며 불안해하고 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누리고 있는 예수님과의 교제를 당장 멈춰달라고 요청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일이 중요하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보다는 먹을것, 마실것으로 인한 염려가 그녀의 마음을 나뉘게 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는 여러가지 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는 섬김 보다 예수님과의 ‘교제’가 우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바라보시며 안타까워 하신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예수님은 마르다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읽으셨다. 마르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안, 기쁨, 만족 대신 염려, 불안, 불만족이 자리하고 있다. 마르다는 자신의 선택을 바꿔야 한다. 마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불안과 염려의 원인을 잘 분별해야 한다. 마르다는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 분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Homiletical Point: 가장 좋은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가 없는 설교를 하지 말고, 진심을 담지 않은 설교를 하지 말라!”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하듯 전하며 기도로 마무리 하라!”
“설교는 길이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복음의 질로 평가된다.
쓸데 없는 말로 가득찬 설교문을 쓰지 말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진리를 전하자!” 찰스 스펄젼
누가복음 9장 51절부터 19장 27장까지의 단락은 Travel Narrative 또는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으로 불리는 단락이에요. 이 단락 안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합당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70인 제자에 관한 에피소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기도에 대한 가르침 등 다양한 가르침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는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누가만 기록한 사건이에요.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교회 안에는 마르다, 마리아가 언제나 공존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마르다는 어느 누구 보다도 열심히 많은 여인이죠. 그녀는 자신의 집에 머무는 예수님을 기꺼이 대접하고 섬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언제나 활발하게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금요 기도회에 와서 케이터링을 준비하고, 주일에는 순원들을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주는 순장일 수도 있어요. 애플 픽킹을 가는 날 차안에서 먹을 과일을 준비해오는 지체도 마르다과에 속한 사람일 수 있죠. 반면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리아 라는 여인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어요. 그녀는 다른 그 무엇보다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이지만, 두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만약 마르다와 마리아의 행동이 비슷했다면 오늘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는 두 자매의 행동이 너무나 달랐기에 누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선택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죠.
마르다의 집이 있는 베다니 라는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3킬로 미터 떨어진 지역이에요. 감람산에서 남동쪽으로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마르다 남매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했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오가면서 종종 베다니를 지나쳤으며,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그의 동생 나사로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어요. 예수님과 이 삼매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요. 예수님은 이 세 사람을 모두 너무나 사랑하셨죠.
하루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마르다에 집에 머물게 되었어요. 아마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오갈 때마다 베다니의 마르다의 집에 종종 머물렀을 거에요. 항상 이런 상황이 그려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마르다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듣고 있어요. 반면, 마르다는 여러가지 준비로 인해서 마음이 분주한 상태였어요.
38-40절이에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마을에 이르시니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주의 발 앞에 앉아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매에요. 그런데, 두 자매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차분하게 말씀을 듣는 반면, 마르다는 여러가지 준비하는 일로 인해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요. 사랑하는 선생님 예수님이 오셨는데 마르다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가요? 그녀가 할일이 너무 많다는거에요. 지금 마르다의 집에 몇명의 손님이 들이닥쳤는지는 알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혼자 방문하셨는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두 이끌고 오셨는지 말이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너무나 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마르다는 예수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거에요.
이 짧은 에피소드만 가지고 마르다가 이런 사람이고 마리아가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단정짓기는 조심스러워요. 아무리 누가가 두 자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였다고 해도 이 장면만 가지고 마르다를 판단하는 것이 조심스럽죠.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두 자매는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또 다른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이 굉장히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요.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마르다가 어쩌면 ‘일’ 중심의 사람일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요한복음 12장이에요.
“유월절이 시작되기 6일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날랐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있었습니다 (Martha was serving, but Lazarus was one of those reclining at the table with Him).”
이 장면에서도 마르다와 나사로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어요. 역시나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 마르다가 손님들을 섬기는 장면에서 사용된 헬라어 시제가 ‘imperfect’ 에요. 미완료 라고 하는 이 시제는 한 동작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습관적인 행동’ (=늘 하는)을 보여줄 때 사용되는 거에요. 마르다가 쉬지 않고 손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녀의 일상을 보여주는 거에요. 어쩌면 오늘날 일반 교회의 권사님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내에게 마르다, 마리아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저희 집에도 최근에 청년들이 종종 놀러오고 있거든요. 언제나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아내는 마르다의 입장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는 거에요. 손님이 오면 음식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집도 정리해야 하고 할일이 정말 많아요. “여보, 누군가는 음식을 준비해야죠. 마리아처럼 손님이 왔는데 저렇게 눈치가 없으면 같이 살기 힘들어요.” 사실, 마르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덕을 보고 있나요? 예수님을 접대하고 공동체를 섬기는 일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제가 웨스트민스터 기숙사에 살 때, 큰 주방에서 종종 식사를 같이 경우가 많았어요. 각자 요리를 해서 삼삼 오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요. 이때,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사람에게 설거지를 몰아주기도 하고, 가끔은 몇몇 목사님들이 자원해서 설거지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한 학기를 지내다보니 제 눈에 이런 장면이 자주 목격되는 거에요. 늘 봉사하는 사람만 설거지를 하는 거에요. 유독 손에 물 한방물 묻히지 않는 한 전도사님이 보이는 거에요. 너무 죄송하지만, 저는 그 분을 볼 때마다 너무 얄미웠어요. 마르다의 입장에서 마리아가 충분히 얄미운 장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마르다의 과다한 섬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다음 장면에서 잘 보여줍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이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면 ‘마리아’에게 직접 말을 하면 안되는 걸까요?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자기 편을 들어주실 거라는 기대로 마리아를 고발하고 있어요. “예수님, 도대체 왜 가만히 계시죠?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지 안 보이세요? 나는 지금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구요. 예수님은 지금 우리 집안 꼴이 돌아가는 모습을 못 읽으세요? 남자가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어떡해요? 예수님, 당신은 정말 집안일이라고는 1도 모르시네요. 어서 마리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저를 도우라고 해주세요.”
저는 마르다의 이 말이 마음에 걸려요.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예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어요. 마르다는 자신의 여러가지 일을 완수를 위해서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마리아에게 그만 두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마르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시나요? 마르다가 이렇게 말할 수 는 없었을까요? “예수님, 저도 지금은 말씀을 듣고 이따가 마리아랑 같이 음식을 준비할게요.” “예수님, 저도 사실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지금 할일이 너무 많네요. 어떻게 하죠? 지혜를 좀 주세요.” 그렇지 않아요. 마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많은 일에 사로잡혀 이제는 마리아와 예수님과의 교제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어요. 이건 저의 상상인데, 이 날 예수님이 떠나시고 나서 마리아가 언니에게 왕창 깨졌을 것 같아요. “넌 왜 그리 눈치가 없니?”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 반전이 어디에 있나요?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각에 동의를 해주실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이름을 두번이나 부르셨어요. 성경에서 이름을 두번 불린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어요.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 베드로, 사울… 예수님은 정말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마르다를 부르시는 거에요.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인해서 염려하고 있고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여기 ‘염려하다’라는 말이 이런 뜻이에요. “너의 마음이 나뉘어져 있구나.” 너가 지금 많은 일을 하려다보니 굉장히 당황했구나.. 그런데, 나는 너가 이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 “One thing is needed.”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란다. 너가 나의 사랑스러운 딸이기에, 너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한단다. 그게 뭐냐면,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거야. 마리아는 좋은 부분을 선택했어.” 마르다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동생 마리아가 더 나은 선택을 했다는 거에요.
오늘 이 이야기는 섬김이 중요하지 않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지 않아요. 누가복음의 흐름대로라면 지금 이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교훈하고 있죠. 바로 앞선 단락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오고, 바로 이어지는 11장에는 누가복음 버젼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이에요. 마르다, 마리아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의 삶 속에서 갖춰야 하는 중요한 태도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에요. 만약, 마리아가 동생 나사로랑 수다를 떠느라 마르다를 돕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마르다 편을 들어주셨을 거에요. 마리아가 말 그대로 눈치 없는 동생이라서 언니를 돕지 않는다면, 마리아도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지금 보여주는 행동은 1세기 당시 랍비들의 제자들의 모습이에요. 스승의 발치에 앉아 있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 분의 가르침을 받는 것에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거에요.
오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나요? 여러가지 일 가운데에 가장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거에요.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게 사는 것보다,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나의 일들을 처리하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머무는 거에요. serving이 먼저가 아니라 learning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가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나의 섬김은 나의 ‘자랑’ ‘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비난의 수단이 될 뿐이에요.
의외로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마르다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지 않고, 자기의 열심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죠. 교회의 모든 사역에 동참하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나서 아무런 섬김도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고발하는 거죠. 나는 이렇게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오늘 마르다의 마음의 상태가 그녀의 섬김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마르다의 모습 속에서 절대로 발견되지 않는 감정이 무엇인가요? “기쁨”이에요. 마르다는 열심히 섬길수록 불만만 쌓일뿐이에요.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 참된 기쁨, 평안, 감사가 자리하고 있나요? 누군가를 섬기면서, 공동체를 섬기면서 여러가지 염려로 인해서 마음이 나뉘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거에요.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분이 주시는 은혜를 맘껏 누리는 거에요.
예수님은 이 시대의 마르다들을 향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예수님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셨는데, 우리가 접대를 하느라 예수님과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여러분은 마르다 인가요? 마리아인가요? 여러분은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여러분 삶의 여러가지 일로 언제나 예수님과의 교제는 뒷전인가요?
저는 목회자로서 마르다, 마리아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와닿고 도전이 되어요. 왜냐하면,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보면 여러가지로 일로 인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을 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예배를 준비하면서,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사역을 감당하면서 다른 일에 집중을 하면 할수록 제가 소홀해지는 영역이 있어요. 말씀 연구와 기도 생활이에요. 제가 여러분에게 제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 서비스는 말씀으로 여러분을 먹이고 여러분과 교제하는 것이겠지요. Brandon Crowe 라는 복음서 학자가 쓴 Every Day Matters 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에서 저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돌보고 그들을 섬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이 말씀을 20대 청춘들은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나라에는 언제나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 둘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신앙은 serving 앞에 listening 이 있어야 합니다. active한 신앙 생활은 예수님 앞에 머물줄 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연스러운 열매인 것이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 분을 따르고 싶다면, 다른 그 어떤 세상의 일보다 예수님 앞에 머무는 일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셔야 합니다. “묵상하는 삶이 섬기는 삶보다 낫다”가 아니라 예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그 분과 교제를 나눌수록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섬기고 싶어 지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시드 여러분!
일 중독,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마음을 빼앗긴 이 시대의 마르다가 여러분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손으로 잘 작성해보세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마음을 나뉘게 하는 이 세상의 염려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라는 부름을 받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여러분의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 보다 교회 생활이 중요하다는 메세지가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는 언제나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에 들이닥칠 거에요. 결혼하면 더 많은 taks 들이 여러분의 삶을 짓누를 거에요. 여러분들의 직장에서 직책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될거에요. 이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선택지를 1순위에 둘 수 있어야 하는 거에요. 오늘 이 시대의 수 많은 마르다를 향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마르다야, 마르다야! 한 가지면 충분하단다. 내 안에 와서 내가 주는 쉼을 누리거라!”
기도제목:
주님, 마르다처럼 여러가지 일로 염려하고 불안한 내 인생 가운데 오셔서 내 삶의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기 원합니다. 마르다처럼 일 중심의 삶이 아니라 관계 중심의 삶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치열한 내 삶의 자리에서 일로 인해서 주님과의 교제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시간 관리의 지혜를 배우게 하시고,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여 공동체와 세상을 넉넉한 마음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