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고 살아가는 분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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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지 않고 살아가는 분별법
[서론]
100세가 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김형석 교수가 있습니다.
그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는 본질에 충실하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본질에서 벗어나면 그 어떤 것보다 더 추해질수 있습니다”
요즘 이 말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고통당한 친구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단, 사이비에 빠졌던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교회를 다닌것 뿐인데 목사가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같은 성경이라고 해서 똑같은 것을 가르치고 똑같은 것을 배우는게 아닙니다.
어떤 교회의 가르침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계속 받을 경우 성도들의 일상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깜빡 속을수 있습니다.
집이랑 가깝다고 아무 교회나 다녀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디모데전서 6장에는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한 자들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누구인지 밝히며 그들의 가면을 벗겨버리려 합니다.
과연 그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을 분별할수 있을까요?
[본론]
첫째, 우리는 다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별할수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특별한 영적 법칙, 비밀 공식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독특한 해석을 내세웁니다.
거짓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의 비밀을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에게만 알려준다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드러내십니다.
또한 예수님 잘 믿고 교회에 헌신하면 만사형통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돈도 잘벌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잘하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마법은 아닙니다.
예를들어, 성경많이 읽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병도 안 걸리고 건강할까요?
예수님 잘 믿어도 유전병이 있거나 생활습관이 나쁘면 병에 걸립니다.
신앙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그리고 성경많이 읽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까요?
세상에서의 성공은 신앙만으로 이룰수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하나님을 단지 내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여기는 것은 결국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또다른 잘못된 가르침은 모든 삶의 문제의 원인을 죄로 돌립니다.
물론 죄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일들 모두가 죄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가난, 실패, 사건사고는 죄 이외에도 여러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들로 인해 발생할수 있습니다.
이런 단순화시킨 해석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죄책감만 줄 뿐입니다.
모두 거짓 가르침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가르침은 겉으로는 합리적이거나 매력적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은 우리의 신앙을 왜곡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누구든지 성공하는 법칙, 공식이 있다면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삶의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은 결국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가르침들을 잘 분별해야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6장 3,4절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도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구원의 비밀이 예수님께 있지 않고, 신화나 족보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극단적 금욕주의와 율법주의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통제합니다.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경건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따르게 되면 결국 교만해집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결국 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니 교회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쓸데없는 의심과 논쟁으로 서로 싸우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깨진 것입니다.
복음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포용하며, 평화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복음을 왜곡한 가르침은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칼을 예로 들어 말할수 있습니다.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사용하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생명을 주지만 그것을 왜곡하면 큰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그럼 그들은 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것일까요?
둘째, 우리는 신앙을 이득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십시오.
종교를 상업화하려는 사람들의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종교만큼 장사가 잘되는 종목이 없습니다.
어느날 PD수첩에 본적이 있습니다.
허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경영의 거짓말을 믿고 속는 것입니다.
그의 얼굴 스티커를 붙인 불로유’라고 불리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알고보니 그냥 썩은 우유였습니다.
이단, 사이비 모두 돈이 목적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돈을 뜯어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립니다.
겉으로는 검소한척하지만 엄청난 재산을 축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이단, 사이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신앙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잘못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면 하나님이 성공과 축복을 보장해준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헌금은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이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어내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십일조 안하면 돈이 술술 센다고 말합니다.
또한 십일조 안하면 사건, 사고 터져서 더 많은 돈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십일조는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이지, 액땜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교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하지만 축복을 얻는 수단이 아닙니다.
헌금을 이렇게 어떤 조건을 붙여 말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도들의 탐심을 부추겨, 참된 경건과 신앙의 본질을 왜곡합니다.
이것 뿐이겠습니까?
열심히 기도를 쌓으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마일리지 쌓다가 일정 점수이상이 되면 뭔가 보상이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집을 얻으려고 청약을 넣듯 기도도 그런 식으로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더 기도를 열심히 할지도 모르지만 옳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교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통로입니다.
또한 예배당건축을 위해 헌금을 축복의 통로라고 말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큰 예배당을 짓기 위해 성도들에게 헌금을 끌어내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을 받는다는 말로 성도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빚을 내서 헌금하기도 하다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가르침은 성도들에게 고통을 줄 뿐입니다.
6장 5절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을 경고합니다.
그들은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착취합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성도들 영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성도들을 통해 자신들 배를 불리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려는 성도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유혹합니다.
경건생활을 열심히하면 큰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성도들이 이런 가르침을 듣고 솔깃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욕망에 기인한 것입니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거짓 가르침이 통하는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모두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은 경건생활을 통해 자족을 배우라고 가르칩니다.
자족이란, 많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족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우리는 태어날때 어차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욕심부려봤자 이 땅을 떠날때에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 없습니다.
인생을 긴 관점에서 보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4장 12,13절에서 한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자족이란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든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기반한 삶입니다.
물질주의와 탐욕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자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나의 모든 것되신 주님 찬양해.
이 고백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경은 돈의 위험성을 언급합니다.
9절입니다.
부자가 되려고하면 유혹과 올무와 악한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돈을 향한 마음을 틈타 죄가 유혹하는 것입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합니다.
올무처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돈은 우리를 사로잡아 놔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쇼펜하워는 금이 바닷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과 견줄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상대는 돈 밖에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충성심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지고 맙니다.
돈때문에 일어나는 범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간의 전쟁조차 결국 돈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돈 자체가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돈 자체는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돈을 우상으로 삼다가 믿음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돈때문에 근심과 걱정에 포위되어 고통받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돈의 신 ‘맘몬’을 동시에 섬길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보니 어떤 사람이 돈가방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집이 불에 타서 쓰러지는데 돈가방을 놓지 않습니다.
그 가방을 놓아야 자기가 사는데 그 돈가방과 함께 불에 타 죽는 것입니다.
돈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된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 얼마나 성도들의 영혼과 삶에 큰 해를 끼칠수 있는가 입니다.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가르침은 우리의 마음을 왜곡시킵니다.
우리를 진정한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면, 우리는 이와 같은 가르침을 분별해야 합니다.
신앙을 돈과 세속적 성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물질적 부가 아닌, 예수님 안에서의 참된 만족과 자족을 가르칩니다.
자족은 단순히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의 고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중심이며,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물질과 세상의 유혹이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헌금을 드리거나 기도할 때, 그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와 믿음의 표현이 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가장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만족할 때, 세상 무엇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이제는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자족하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일상에서 자족과 믿음을 실천해 보십시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십시오.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참된 자유와 평안을 경험할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라는 고백이 우리의 매일의 삶에 새겨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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