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2:27-47 성벽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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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2장 27-47절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재건자로서 땀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하고 성벽 봉헌식을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날 봉헌식은 독특하다.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무리는 성벽 남쪽에서 북문으로 갔다가 동쪽 성벽의 성문과 수문으로 행진했다. 그리고 총독 느헤미야가 또 한 무리를 이끌고 옛 문과 에브라임 문과 어문과 양문과 감옥 문을 지났다. 그리고 이 두 무리가 동쪽 성전 앞에서 만나 하나님께 기쁨의 제물을 바치면서 봉헌식은 절정에 이른다.
한번 상상해 보라. 무리들이 기뻐하고 감사드리면서 대열을 이루고 찬양하며, 한 무리씩 성벽을 돌고 성전 앞에서 절정의 팡파레를 울리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나 에스라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독특한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게 하셨을까? 성전 앞에서만 예배하고 돌아가게 하지 않고 왜 행진하게 하셨을까?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기 전에 혼자 말을 타고 페허된 성을 돌아 보면서 마음 아파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는 성벽 재건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면서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산발랏 무리에게 ‘너희가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는 조롱도 받았다. 그리나 이제 그들 앞에 선 성벽은 수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행진해도 끄떡조차 하지 않는 견고한 성벽임을 만방에 보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야’ 벽돌 하나하나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환과 지난 역사의 고초와 담즙, 그리고 그 가운데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담겨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벽을 행진하게 하시고, 성전 앞에서 팡파레를 울리며, 성전 봉헌식의 절정을 맞도록 해 주셨을 것이다. 지금 성벽 재건을 끝내고 봉헌식을 하는 느헤미야의 심정은 너느 때보다도 기쁨으로 차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도비야 일당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고백이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6:16). 또 그는 성벽이 재건될 때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짐을 알았다. 느헤미야서는 13장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60번 이상 나온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기쁨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위에 임하기 원하는 느헤미야의 마음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언제인가? 무엇이 우리의 삶을 희열로 가득차게 하는가?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원하는 결혼을 하고, 원하는 집을 얻을 때인가? 그럴 수 도 있겠지만, 믿는자의 삶의 기쁨은 수준을 높여야 한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로 훼손된 신앙의 성벽들이 다시 재건되는 것, 그래서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는 것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기 원한다. 성벽봉헌은 단순하게 벽을 쌓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느헤미야가 꿈꾸고 소원하고 기도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이든, 사회적, 국가적이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 낼 수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름의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 한 손에는 벽돌을, 한 손에는 말씀을 가지고 이루었던 예루살렘 성벽 봉헌에도 그것을 이룬 구성 요소들이 있었다.
즐거움이다.
성전 봉헌식에서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악기를 연주했다. 진정한 봉헌식에는 기쁨이 표현되어야 한다. 기쁨 없는 봉헌식은 없다. 어떤 일도 하나님 안에서 성취되려면 반드시 기쁨과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침울한 표정을 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다. 독일에 반기독교인 니체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좀 더 구원받은 자의 기쁨, 구세주를 믿는 자다운 얼굴 표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비판한였다.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기쁨의 표정을 요구한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슬픔과 비탄의 시기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해야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을 완성해서 행복했지만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이 일하게 해 주셨다’는 기쁨이 있었다. 주님이 마음속에 주시는 기쁨을 회복하기를 소원한다. 기쁨의 봉헌식을 마친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 제사드리고 ‘심히 즐거워’했다. 부녀와 어린아이, 제사장 할 것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다 기뻐했다. 그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예루살렘 밖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의 의해서 기뻐하는 삶임을 기억하라. 무엇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없음에도 기뻐하겠다는 말로써 믿는 기쁨의 수준이 있기를 소원한다.
2. 정결함이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몸만 정결한게 아니라 봉헌하는 성벽도 정결하게 했다. 성경에 보면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여기가 유일하다. 이것은 철저한 정결 의식을 뜻한다.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김없이 정화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취, 하나님이 원하시는 봉헌식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정결함이다. 깨끗함이다. 위선적이거나 이중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음을 기억하라. 부패하고 황폐한 심정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봉헌식을 할 수 없음을 기억하라.
여기서 말하는 정결함은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군자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성취되기 위하여 하나님이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결함이라 했을 때, 시편 24편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3-5)
하나님께 복을 받을 사람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정결함이란, 더러움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게 씻음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무리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깨끗하게 목욕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심령의 더러움은 씻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깨끗게 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라.
3.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봉헌한 뒤, 성벽 위를 ‘감사 찬양’하면서 행진하였다. 여기서 감사찬송은 12장 38,40,46절에도 나온다. 감사는 진정한 봉헌식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다. 그 어떤 하나님의 일도 감사 없이는 성취되지 않음을 기억하라.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성전 봉헌식 내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찬송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또 어떤 감사를 했는가? 그들의 심중에는 여러 가지 감사 제목들이 있었을 것이다. 먼저 페르시아 왕의 마음이 움직여 이 모든 계획이 이루어진 일, 또 성벽이 재건되는 동안 보호해 주심, 적들의 방해를 극복하게 하신 것, 또한 먹을 것을 주신 것 등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사실 감사의 마음은 우리의 후각의 감사만큼이나 금방 무뎌진다. 아무리 심한 악취도 코의 후각은 금방 익숙해져 버리는 것처럼 아무리 크다고 해도 조금 후면 또 다른 불평이 나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의 단어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심지어 은행에 가도 듣는다. 감사의 말 속에 담긴 은혜를 잊지말라.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성벽 위를 행진하면서 감사찬송을 드린 것은 그들에게 감사의 현장을 기억하고 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도록 하는 마음에서 였다. 우리역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소원한다.
즐거움과 정결함과 감사, 이 세요소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위를 걸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거룩한 땅 밟기를 하라. 성벽 봉헌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 무리로 나눠서 성벽을 행진하면서 ‘하나님이 이루셨다’ , ‘내 힘과 내 실력으로 결코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면서 땅 밟기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내가 밟는 곳마다 하나님의 땅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확신이 있기를 소원한다. 땅을 밟으라니깐, 진짜 땅을 밟으면서 돌아다니는 분들이 있다. 이것은 영적인 소유의 지경을 넓히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거룩한 땅 밟기”라 부르고 싶다. 내가 목표하고 기도하고 소원하고 주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성취를 위해 기도로, 찬양으로, 헌신으로 거룩한 땅 밟기를 하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성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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