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14 믿음이 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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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성장하는 길
요한복음 1장 1-14절
요한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요한복음은 목적 없이 예수님의 신변잡기를 기록한 성경이 아닙니다.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기록했는데 이는 20장 31절에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힙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1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믿음이 심겨지기를 원한다.’ ‘믿음이 자라기를 원한다.’ 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고,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성경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켜주거나 교회 부흥의 비결을 가르켜주는 성경은 더더욱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목적은 오직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데 있습니다.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적은 믿음이이나마 ‘구원받는 믿음’ 으로 심겨지기를 원하고 적은 믿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적은 믿음이 아니라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으로 변하기를 원하는 것이 요한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예수님을 오래 믿었지만, 진짜 믿음이 아니라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가짜 믿음이 진짜 믿음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변질된 믿음이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럼 왜 믿음이 필요한가요? 요한복음 20장 31절 하반절을 보니깐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을 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망의 냄새가 나는 곳에 믿음이 심겨지면 그 안에서 사랑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면 비로소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교회에 믿음이 들어가고 한 심령에 믿음이 들어가면 만날 패배하는 인생, 만날 깨어지는 인생이 변화를 받아서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거센 물결이 거슬러 올라가는 능력있는 인생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인생을 허망하게 사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매일 낙심하고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심령 가운데 믿음이 들어가면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존 윌터라는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26세까지 참으로 망가진 인생이었습니다. 순간마다 실패하는 인생이었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던 중 어느 날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 목사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겨자씨 만한 믿음’ 이라는 제목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너희 심령 가운데 가져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산을 들어 옮기리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큰 은혜를 받았고 이상하게 그 말씀이 존 윌터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내 방황하는 인생의 해답은 믿음이었구나.. 믿음을 붙들면 승리할 수 있구나!”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주머니 속에 겨자씨를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죄절이 올때마다 그는 겨자씨를 보고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후로 존 윌터는 19세기 이후에 영국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잘것 없는 사람이 강력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비결은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 말씀으로 심어라.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님 자체가 말씀이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일하시는 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씀을 들을 때 연상되는 본문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 1절 같은 느낌으로 요한복음 1장 1절을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성경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씀의 창조는 ‘온 우주 만물, 이 물질 세계를 창조하는 것’ 이라고 한다면 이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씀의 창조는 ‘온 우주 만물, 이 물질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요한복음 1장 1절의 창조는 ‘예수님의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제2의 창세기라고 보면 무난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제2의 창조요, 재창조의 역사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은 개선이 아니라 창조입니다. 과거와 어떤 연속성을 가지고 그것을 조금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단절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새 출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갓에서도 BC와 AD로 갈라집니다. 예수님 이전과 예수님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없는 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마다 없는 것이 있게 되는 창조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로고스라고 하는 것인데 간단히 말하면 로고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실체를 말합니다. 즉 독립적인 실체, 말씀자체가 실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좀 더 이해를 쉽게 하자면 이렇습니다. 로고스가 머릿속에 있을 때를 무엇이라고 하면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로고스가 말대로 움직이면 그것을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생각과 말 심지어 행동을 포함해서 로고스라고 합니다. 완전히 하나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어 말로 연결이 되고 행동까지 모든 것을 포함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로고스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2. 스폰지 같은 믿음
빛의 속성 중의 하나는 생명을 줄 뿐 아니라 성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묘한 것은 살아있는 것에 빛을 비취면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있는 나무에 빛을 계속 비취면 맛 좋은 사과, 아몬드, 그리고 포도와 같은 열매가 열립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생명의 빛은 열매를 거둡니다. 반면에 죽은 나무에 계속 빛을 비취면 어떤일이 있어납니까? 말라서 타 죽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에게 은혜의 말씀이 들어가면 더욱더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반면에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생명의 말씀이 심판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죽이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믿음이라는 것은 수용성입니다. 잘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영접하는자’ 와 ‘믿는자’가 동의어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접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설교자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또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을 많이 주십니다. 이것은 귀한 복입니다. 평생토록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권면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하는데 계속 거부합니다. ‘안된다’, ‘못한다’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불신앙입니다. 말씀에 귀를 막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수용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완악한 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받아들이고 ‘아멘’ 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하고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변화받으면 부쩍부쩍 자라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거절하게 되고 점점 바짝 바른 썩은 나무처럼 되고 나중에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태양열 발전을 할 때 집열판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태양열로 만든 집을 보면 지붕 꼭대기에 태양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집열판을 많이 세워 놓습니다. 우리도 태양열 집열판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취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자라나고 생명이 자라나는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무디 이후의 크게 쓰임을 받았던 지도자 윌버 체프먼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무디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무디가 복음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체프먼에게 물었습니다.
“예수 믿습니까?”
그런데 이 젊은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믿기는 하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님이 성경 한 구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을 들려주면서 “이 말씀을 믿느냐?” 고 물었더니 “믿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너에게 영생이 있느냐?” 그랬더니 “글쎄요.” 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경에 보니까,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그랬는데 믿느냐? 고 했더니 ”잘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무디가 버럭 화를 내었다고 합니다.
“네가 도대체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지 웬 말이 많으냐?
그러자 윌버 체프먼이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무릎 끓고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비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안 받았다 라는 것은 내 마음의 무슨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있는 것이지 단소리가 있습니까? 그러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주께서 역사한다고 하시면 역사한다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은 폭발적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그러니깐 실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믿는 사람들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믿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누가 내 말을 믿느냐?”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믿는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자를 찾고 계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믿음을 통해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귀중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3. 증인의 삶
또한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요건들이 있습니다, 체험이 있어야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에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고 했습니다. 이런체험이 있을 때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똑똑해야 되는 것도 많이 배워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본 바가 있고 들은 바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깐 세상에서 제일 쉬운게 무엇입니까? 증인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고 들은 바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할 때, 재판관이 묻는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들었느냐? 네가 보았느냐? 네가 그곳에 있었느냐? 를 묻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증인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시다.
“사실 나는 그곳에 없었는데 내 견해는 이렇습니다.”
그러면 내 쫓습니다. 증인은 자기 견해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주장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본 것 가지고 나오는 사람 들은 것 가지고 나오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자꾸 약해집니까? 본 것이 없고 자꾸 자기 주장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증거하는 자로 부르셨는데 우리는 자꾸만 자중하는 자로 나갑니다. 이것에 옳다 저것이 옳다 그러면 반드시 바리새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그 싸움에서 보고 체험했던 것들을 증거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런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은혜를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은혜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회를 참 좋아합니다. 수련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죽하면 “여기서 살다가 죽으면 참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지요. 날마다 찬송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면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왜 그렇죠? 그 기도원에서, 수련회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들어가면 또 다시 하나님 없다고 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피곤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심을 믿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기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분명히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도 엉터리들이 많아서 아니라고 우기니깐 우리가 위축이 되어서 피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라면 비진리를 들고 나와서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왕성하게 증거합시다. 예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외에는 오직 살길이 없습니다. 부처 앞에서 절한다고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라고 외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 것과 아울러 이 믿음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만 외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4. 자기부인
요1:8 -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자라.
세례요한은 자신을 증거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했다. 증인은 주목받을 필요가 없다. 진실만 애기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증거하면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를 추종했지만 자신은 아니고 나는 다만 증거하는 자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 매둡을 풀기도 나는 부족한 자이다. 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예수님께 돌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하는 사람의 자세이다.
결혼식장에 갈 때 참 민망한 경우들이 종종 있다. 결혼식에서 보통 신부 옆에서 그 친구들이 들러리를 서게 되는데, 신부는 참 못생겼고 그 신부 친구는 늘씬하고 얼굴도 예쁜 자매이다. 누가 보더라도 신부보다 그 친구가 예뻤다. 그날의 주인공은 신부인데 엉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복음을 전할 때 증거할 때 증거자가 너무 화려하면 예수가 죽는다. 참 묘한일은.... 어떤 대단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고서는 “이 만큼 대단한 예수를 증거했는데 ... ” 하며 폼을 잡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증거자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들어쓰시지만 (고전1:26-29) 왜 그런가? 그런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24장로들에게 면류관을 하나씩 다 씌워줄 때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을 향해서 다 던진다.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드높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