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10 예루살렘 성벽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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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0장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고,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자복하며 나아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서약을 하였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과 함께 다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견고한 언약”을 하고 거기에 ‘인봉’하였다. 견고한 언약이란? 계약 당시자들이 언약을 어겼을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당시의 상징적 의식이다. ‘인봉하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이다. 인장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매우 보편적인 것으로 확실성과 위엄의 표시로 문서를 보증하거나 출입을 금하는데 사용하였다. 도장을 찍는 행위는 어떠한 여건에서도 그 다짐을 지키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런 뜻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도장을 찍었다.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아니라, 느헤미야부터 레위지파 사람들, 그리고 지도자와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도장을 찍고 다짐하는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들이 모두 인봉에 참여한 것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을 꼭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느헤미야 1-7장을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또 9장에서는 회개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셨다. 민족의 역사가 수치와 펴멸의 길로 빠졌던 그들을, 하나님이 도우시고 보살펴 주셔서 그들은 무너진 민족의 운명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어떠한 다짐이었는가?
1. 느헤이먀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워 인을 치면서 제일 먼저 신앙이 다른 자와는 혼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30절)
이방 여인과의 통혼은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이미 에스라 9장과 10장에서 회개 기도의 시작도 이 문제의 자복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혼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방 문화의 악습이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에 얼마나 악영향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당시에는 이방인들과 결혼하면 이방 사람들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까지 함께 가지고 왔다. 그중에는 이방신숭배도 있었다.
느헤미야 시대의 가나안의 문화는 음란하고 타락했으며 심지어 몰렉이라는 이방 신상에게 절하며 자식을 바치는 인신제사까지 있는 타락한 문화였고 이들과 결혼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물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솔로몬같은 왕도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우상 숭배의 불씨를 나라에 들여놓았다. 솔로몬이 이방여인을 취함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남긴 악습의 폐해가 얼마나 컸는가?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았는가? 느헤미야가 성전을 정화하면서 다시 솔로몬의 범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한번 뿌리내린 악습은 자손 대대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잘못이 무엇인가? 그들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기독교의 혈관에는 예수의 피 외에는 어떤 것도 흘러서는 안된다. 세상과의 타협은 기독교의 심장을 세상의 피로 수혈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복음주의 신학자였던 프란시스 쉐퍼는 “복음주의의 대 재앙은 진리를 진리로 대변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것에 해당하는 단어는 하나뿐이다. 다름 아닌 타협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이 시대의 정신과 타협했다. 첫째 성경을 세상의 문화와 타협했다. 지난 세기 독일에서 개신교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린 것도, 금세기 초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린 것도 바로 그런 방법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의 즐거움을 보고 있는 한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세상의 마수를 끊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세상의 즐거움에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즐거움이 눈을 뜨는데 있음을 기억하라. 모세는 현제의 고난보다 장차 누릴 영광과 즐거움이 눈 떴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죄악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길은 세상을 피해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눈을 여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에 즐거움에 눈을 뜰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외는 없음을 기억하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날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축복으로 인도하셨고 죄를 징계하셨는지를 회상하면서 율법의 뼈대인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더 이상 안식일에 물건을 팔지도 사지도 않겠으며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하고 빚도 탕감하겠다고 약속했다. (31절)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레위기부터 시자개서 구약성경에 계명으로 지켜져 내려왔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안식일을 주일로 바뀌었다. 예수님의 은혜로 주일을 안식으로 지키게 되었다. 구약시대의 안식은 ‘노동 후 안식’이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안식 후 노동’이 되었다. 그래서 달력에 한주의 시작이 주일이 먼저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0절은 “그의 안식에 들어간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애써 헌신한 것이 열매 맺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안식은 바로 그 의미를 되새기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 앞에 새로이 다짐하면서 쉬는 날이다. 아무리 열심히 집을 세우고 수고를 하고 파수꾼을 세워 성을 지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 주일에 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쉰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신앙고백이다.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예배를 통해 영적인 쉼을 가지며, 하나님이 대신 일해 주실 것을 믿는 것,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것이 안식일의 핵심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는 것, 그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고백이 있기를 소원한다.
3.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율법대로 번제를 드리고 나무를 가져와 제단에서 사르고, 동물을 희생제물로 드릴 것을 약속했다. (34절)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고 제단을 쌓는 것을 회복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죄 문제를 단순한 방법으로는 해결 할 수 없었다. 소나 양이나 희생 제물의 피가 필요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를 드리겠다고는 약속을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한 결심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물을 번제로 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흉년으로 자신의 집과 밭과 심지어 자식마저 종으로 팔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면서 그들이 가진 모든 소유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자, 믿음으로 소유권을 이전한 것이다.
삶의 소유권의 첫단계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죄와 더러움을 가진 몸으로는 하나님 제단 앞에 자신을 올려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희생 제물로 소나 양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소나 양의 피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씻고자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그들을 구원시키는 방법으로 어린양의 피를 확인하셨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으신 것은 그의 소유가 아니었다. 단 한가지 어린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하나님의 섬정에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어린양의 피이다. 구약의 어린양의 피가 유대인들을 보호하시고 해방시킨 것처럼, 예수의 피가 세상살이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짐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이다. 이것이 보혈의 능력이다.
지금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집과 소유를 전부 팔아야 할 정도로 궁핍한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그 증표로 토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전부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뜻한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이전했다는 증거로 율법이 정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다짐했다(37절). 이것은 신앙생활의 동기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십일조가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이 아닌가?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여기 10개가 있다. 이 10개가 누구의 것인가? 하나님의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신뢰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철저한 신뢰가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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