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개천바위맹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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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도입]
샬롬!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아웃팅으로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고기를 원 없이 먹었나요? 이제 24년도 몇 주 안 남았습니다. 우리 서로 눈을 쳐다보고 축복하며 인사 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쳐다보는 것이 사랑이고 안 쳐다보는 것이 갑질이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습니다.” 청년이 좋은 것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인사할까요? “ 이제 해야 할 일을 합시다! “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교독 하겠습니다 [요9: 26--41]
26.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서론]
오늘도 요한복음 9장을 같이 살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우리가 3번에 걸쳐서 보는 이유는 날 때부터 소경을 고친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7-8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유대인들과의 논쟁에 있어 최종편이며 그 신학적인 문맥과 뜻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설교는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고 믿음은 그 수단이라는 것을 통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영역을 살펴보았습니다.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이 구원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이 찾아 가셔서 고쳐 주셨습니다.지난 설교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의 주일성수와 관련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도 2주전에 이어서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안식일에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즉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이어지는 내러티브 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고 속임을 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을 바울은 경고합니다. 딤후3: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예배의 모양은 갖추고 있으나 예배 가운데 중심인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지금 이 시간에 항상 우리는 전심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집요하게도 맹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서 예수님의 꼬투리를 잡으려 합니다. 그러자 맹인은 체험으로 얻은 자신의 신학적인 식견으로 그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닙니다. 어떻게 죄인이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습니까?” 당대의 신학자들인 바리새인들은 화가 나서 욕설을 쏟아냅니다. “드럼의 스틱도 잡아 본 적 없는 제가 승오형제에게 박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격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맹인을 쫓아내자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인자에 대한 신앙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인자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39절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오늘의 설교 제목을 특이하게 붙여 보았는데요! “맹개천 바위맹”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맹인에게 하늘이 열리고 바리새인은 맹인이 되다.” 제가 무협지 스타일로 지어 보았습니다. 이는 39절 말씀의 요약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비추이지만 믿음은 빛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1:18-2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제 본문을 주해하면서 살펴 보겠습니다.
[본론]
26.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은 날때부터 소경 되었다가 눈을 뜬 사람을 다시 불러서 물어 봅니다.부모를 불러서 물어 본 것까지 합치면 3번째 의문제기 입니다(눈 /맹인 /예수님). 예수님이 침으로 진흙을 개어서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고 그대로 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증언했음에도 그들은 그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고 또 묻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방법은 다른 수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편견에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는 어떠한 사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할 뿐이죠! 27.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대답을 듣지 않으면서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는 병’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폐’라고 합니다.사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소통을 말합니다.상대방과 교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귀를 닫는 질문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을 매우 쉽게 찾아 볼 수 있지요? 누굴까요? 자칭 선생님이라는 자들입니다. 저 같은 자들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들을 위해 기도할 때 꼭 듣는 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8.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유대인들은 답을 듣자마자 곧 욕을 합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듣지 않고 정죄해 버립니다. 맹인이 예수와 같은 동류이고 그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살펴 볼까요? 히3:2-3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유대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모세가 들은 내용과 말한 것의 실체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무지합니다. 요5:46-47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기원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의 무지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불신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어 31절~33절에 맹인의 긴 대답이 어어 집니다. “31.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맹인과 지도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59:1-2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기서 신기한 것은 맹인이었던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는 심문을 받는 중에 예수를 증언하면서 믿음이 점점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지자중의 하나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33절 말씀은 맹인이 예수님의 기원에 대하여 확신을 하고 있는 말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격분하며 답합니다. 34.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이것으로 유대인의 심문이 마치고 날때부터 장님이었다가 눈을 뜨게 된 사람은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됩니다. 유대인들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온전히 죄가운데 태어난 주제에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고 해!” 이 말은 자신들은 죄 가운데 있지 않다는 의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성격은 우리가 모두 죄가운데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모두가 죄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조상 다윗왕의 고백입니다. 시51:3-5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율법을 주장했지만 법이 가르쳐 주는 죄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이제부터가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 오십니다. 전통에 무비판적으로 갇힌 종교는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는 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믿음이 있지만 세상 살아가다 지치고 힘드신 분 혹시 여기 계십니까?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에 상처 받으신 분들 있으십니까? 입시에 실패하고 재도전 하면서 불안하고 두려운 분 계시지요? 주님이 여러분을 만나 주시고 믿음을 이끌고 가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잠잠히 기다리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선택보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는 것이 더 큰 영광이고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은혜 가운데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아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찾으십니다. 시91:14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주님이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질문에 36-3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말합니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보아도 하나님으로 알아 보지 못하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어도 그분의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말합니다. 고전2:9-10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예수님이 이제 맹인 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를 찾아 만나셔서 신앙의 성장을 도우신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교훈을 전하십니다. 인자는 메시아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위대하고 좋은 스승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중 핵심 메시지 입니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맹개천 바위맹” 입니다. 여기서 심판은 최종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왔으나 그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요3: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39절의 심판은 ‘조명의 은혜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칼뱅은 말합니다. “보는 자는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는 진실을 깨달어야 하고, 아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지신을 깨달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라는 빛으로 보고 예수라는 진리를 알아야 영적 맹인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고전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바리새인들이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처음에는 설교 제목을 ‘우리도 맹인인가?”로 했다가 바꾸었습니다. 이들은 힐문합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보지 못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규정에 분노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태도에 전혀 꿀리지 않으시고 말뚝을 박아 주십니다.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죄의 근원적인 문제를 언급하십니다.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 이 말씀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그들에게 나타난 첫번째 변화가 바로 창3: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눈의 주인이 되었고, 보는 관점의 주인이 되었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인 관찰자가 되었으며, 관찰된 내용의 의미도 스스로 부여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우리가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과 하와를 맹인으로 규정합니다. 맹인이란 주로 눈의 존재가 아니라 기능과 관계된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눈은 주어진 것이지만 눈의 기능은 자신이 마음대로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음대로 눈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눈은 상황과 환경을 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관점으로 바라볼 때, 보는 눈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데 자신의 밝아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죄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머문다는 것이 예수님의 지적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눈에 비밀이 벗겨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강력한 빛으로 세상의 눈이 멀었지만 그로 인해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야가 열렸습니다. 따라서 “이방의 빛”이 되어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맹인은 시력의 치유와 영적인 치유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났습니다.우리는 무엇을 보든지 그 시선이 예수님에게 맞닿기 전까지는 모두가 맹인입니다. 바울은 롬1: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말합니다.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이도록 알리는 도구라는 뜻입니다.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보든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게 되기까지는 우리에게 “보는 눈” 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성경과 모든 자연에서 그 가리키는 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본 자이기에 우리의 눈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야 하듯이 우리의 시선 또한 하나님을 행해 있어야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담의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물러 있는 죄인인 것입니다.
첫 아담의 눈을 닫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습니다.오직 맹인 아닌 자를 맹인으로 정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맹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죄 가운데에 머무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마15:14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말씀 하십니다. 히3:18-19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맹인입니까? 아니면 맹인이었다가 주님의 눈으로, 믿음으로, 은혜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보는 눈 뜬 사람입니까? 맹인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면 여전히 죄인인 것입니다. 주님의 영으로 살지 않으면서 내가 본다고 하면 여전히 우리는 맹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죄인이었다가 의인이 된 사람들 입니다. 엡 2:8-9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 합시다. 회개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여시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우리가 즐거운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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