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0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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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하는 이유
시편 69:1–12 (NKRV)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10 내가 곡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11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그들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12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비난하며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하나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하는 일마다 잘 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하는 일마다 다 잘되고 내가 소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세상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세상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가 다 부자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가다 세상에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가? 선교지에서 어떻게 사역을 하는지 그것이전에 가족과 함께 선교지에 있는것만으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열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선교사님의 사역과 가정에는 하나님이 복을 퍼 부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재정의 어려움가운데 늘 고민하며 이 사역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다른거 하는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염려와 근심 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신앙생활을 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라 믿는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깐 지금 환란과 시험가운데 있는 청년들이 있다면 지금 내 삶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당연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시작하는가? 1-2절이다.
우리말 성경이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이 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내가 발 디딜 곳 없는 깊은 진창 속에 빠지고 깊은 물속에 들어왔으니 홍수가 나를 집어 삼킵니다.
얼마나 큰 환란가운데 있는지 물이 내 목까지 차 올랐다고 이야기 하고 발 디딜 곳이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고 또 홍수가 나를 집어 삼키려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 있었으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인가?
4절을 보면 이유 없니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머리털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내 적이 돼 자신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까지 이르렀냐면 내가 훔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물어줘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가? 내가 잘못을 해서 적이 생긴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없이 하루아침에 자신에게 등을 돌려 내가 어떻게서든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그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마음이 어렵겠는가? 어렵다는 표현은 너무 약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그런데 가만히 보니깐 지금 시인이 이렇게까지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때문이다.
본문 7절이다.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냈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다는 말이다. 그 어려움이 무엇이냐면…
8 내가 나의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나의 어머니의 자녀에게는 낯선 사람이 되었나이다
내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말이다. 시인은 지금 그누구도 의지 할 수 없는 외로운 상황이다.
지금 시인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매순간을 선택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고 힘쓴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바로 외로움이다.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주변은 온통 내가 망하기만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뿐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럼에도 시인은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는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서든 주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그것을 가지고서도 자신을 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1절에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다는 말은 시인은 슬픔과 회개의 상징인 굵은 베 옷을 입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비웃으며 그를 조롱했습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경건한 태도가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백하며, 고통을 느낍니다.
시인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한지 모른다.
심지어 12절을 보면 성문에 앉아 있는 자가 비난하고 독주에 취한 무리가 나를 두고 노래한다고 이야기 한다.
무슨 말인가? 성문에 앉아 있다는 말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제사장을 비록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술주정뱅이들도 자신을 두고 흥얼거린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며 조롱하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인가?
이런 시인이 이러한 어려운 상황과 환경속에서 억울함과 외로움가운데 있는 이 상황속에서 선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13절이다.
13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현대인의 성경 버전이다.
13. 그러나 여호와여, 나는 주께 기도합니다. 이제는 주께서 들으실 때 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진리로 나에게 응답하소서.
무엇을 해도 안되는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해서 당하는 그 어려움 속에서 시인이 선택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의지하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맡길 수 있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밖에는 안계심을 믿어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여러분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그 어려움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고백은 바로 자신의 고난이 다른 믿는 자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태도 역시 본받을 점입니다.
그리고 이후 저자가 어떻게 기도하는지 아는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그대로 고백한다. 심지어 자신을 못살게 하는 그 사람을 해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그래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고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내 대신 그들에게 복수해주세요! 라는 말이다.
심지어 28절을 보면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이런 저주가 없을 정도로 저주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엇인지 아는가? 이러한 분노로 시편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30절부터 갑자기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한다.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기도의 힘인 것이다. 시인의 상황과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른다.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원수를 향한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그의 마음이 변한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