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준비된 만남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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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릴리로 가다 2. 낚시에 실패하다 3. 예수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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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로 가다

함께 말씀을 보고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한 주일입니다.
자유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유교회를 잘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잘 꼬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스러운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쉬고)
우리 오늘 본문 1절을 볼까요?
(PPT) “그 후에"
이 ‘그 후에'라는 표현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에게 이 것을 대입하자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도마를 만난 그 이후"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대입하자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후의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제자들도 우리들에게도,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 삶이 회복된 것을 넘어,
그 이후의 어떻게 삶을 살아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쉬고)
함께 같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외롭지 않아요.
고백과 결단을 이루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같은 고백을 하던 무리에서 나와 개개인의 삶의 자리에 서게 되면 고백을 이어가는 것도 어렵고, 결단을 지키는 것도 참 힘들어요.
그래서 “그 이후"의 삶이 참 중요해요.
(쉬고)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와 디두모라하는 도마를 포함한 총 7명의 제자들이 3일 길을 걸어 갈릴리 호수에 모였다고 해요.
그리고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갈래!”라고 말을 해요. 그러자 다른 6명의 제자들 역시 “그럼 나도 따라 갈래!” 하면서 함께 낚시를 하러 길을 나서요.
왜 제자들은 낚시를 하러 갔을까요?
왜 배를 타고 호수로 들어가서 그물을 던졌을까요?
(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예전처럼 자신들과 같이 계시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지셨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자신들의 앞날 혹은 생계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다시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간 것일까요?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들의 앞날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다시 어부의 삶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쉬고) 아니에요.
(PPT) 마태복음 28장 7절 그리고 (PPT) 마가복음 16장 7절을 보면, 빈 무덤 앞에 망연자실해 있던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예수님께서 너희보다 갈릴리로 먼저 가신다.”
“그 곳에서 너희를 뵙고자 하니 갈릴리로 가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7명의 제자들이 삼일 길을 걸어 갈릴리로 갔던 거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몇날 며칠 몇시에 어디에서 만나자"라는 정확한 일정 공지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갈릴리 호수라는 이름이 붙었을만큼 굉장히 큰 호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기다리던 중 밤이 되어버렸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베드로가 뜬금 없이 “난 낚시나 할랜다"라고 말을 한 것이죠.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배신의 죄"를 저지른 다음 이었어요.
(쉬고)
아직 예수님께 죄에 대한 고백을 했거나 용서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스스로 그 배신의 죄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모습을 갖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자숙하면서 조용히 예수님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다른 제자들보다 베드로인데 그는 자숙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자신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배신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 대상 예수님이 만나자고 하셨는데, 그는 기다리다 지쳐 “낚시를 하려고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어림잡아 그들이 낚시를 시작한 시간을 저녁 8시쯤이라고 학자들은 말해요.
저녁 8시에 낚시를 시작했는데, 전문적인 어부들인 그들이 낚시를 했는데 아무 것도 잡지 못했어요.
그 때 제자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이 등장을 하셔요.
(쉬고)
아직 제자들은 그 사람이 예수님인지 모르지만, 동녘이 터오르던 그 때 예수님은 바닷가에 서 계셨어요.
어디 가셨다가 밤을 새고 돌아와서 갈릴리 호수에 서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낚시를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던 그 모든 모습을 보고 계셨다는 것이죠.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세요.
(PPT) 5절.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쉬고)
굉장히 부드러운 질문 같지요?
사실 원어로 보면 이 질문은 부드럽거나 혹은 정말 고기가 있나요? 하는 느낌의 질문이 아니에요.
“얘들아.”는 여러분이 잘 아는 파이디온이에요.
파이디온굉장히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파이디온"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라고 부르시면서
“너네 물고기 한 마리도 못잡았지?”
“아니 어떻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잡았어?”라고 부정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거에요.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 화가 날만한 질문을 하고 있는거죠.
(쉬고)
그런데 이 질문 좀 이상해요.
왜냐하면 물고기를 잡았는지 잡지 못했는지 알 수 없거든요.
제자들의 배와 뭍에 있었던 예수님의 거리는 약 90m정도 였다고 해요.
서로 잘 보이지 않아요.
특히 이제 막 동이 트고 있을 때니까, 그 전에는 어두운 밤이었을테니 더 보이지 않았겠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물고기 한 마리도 못잡았지?”라고 단정 짓고 질문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거에요.
밤새 그물을 던졌는데도 아무 것도 잡지 못해서 슬슬 지치고 화가 나기 시작하는데, “얘들아~~ 한 마리도 못잡았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질문을 모르는 남자에게 받고 있는거에요.
(쉬고) 그 때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해요. (PPT)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쉬고) 이 장면 어디에서 들어 본 것 같지 않으세요?
밤새 물고기를 잡았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그들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라고 했던 것과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첫번째 만남“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해서 던집니다"라고 하고 가서 던졌어요.
지금 두번째 만남에서는 “오른쪽에 던지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집어던져요. 그 때 잡힌 물고기의 수가 153마리나 되었다고 해요.
딱 그 포인트에 물고기가 정확하게 153마리나 몰려 있었던 것일까요?
(쉬고)
아니겠죠.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로 온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이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만남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을 제자들에게 마음껏 드러내고 계신거에요.
제자들은 기다리다 지쳐 물고기를 잡으러 떠났지만, 예수님은 뭍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고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그 자리에서 제자들을 보고 계셨던 거에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다 실패 한 그 때
예수님께서 개입하셔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 것이죠.
(쉬고) 이전에 그물을 던졌던 그 때가 생각이 났어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게 되자, 베드로는 앞뒤 생각도 안하고 일단 바다로 뛰어 들어 90m나 되는 거리를 수영하면서 뭍으로 이동을 해요.
그만큼 그에게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겠죠.
일단 뛰어들어 예수님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갔지만, 그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 수록 베드로의 마음은 굉장히 빠르게 뛰었을거에요.
“세 번 부인한 배신의 죄"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예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다에 들어가서 낚시를 했거든요"

낚시를 하다 실패하다

왜 예수님은 밤새 수고를 하고 힘이 쭉 빠진 제자들을 그 때서야 만나주셨을까요?
(쉬고) 두 번 다 낚시와 연관이 있어요.
첫번째 낚시, 두번째 낚시 모두 인간적인 노력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의도하신 사건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었어요.
매주 예배를 드림으로 은혜를 받고, 사도신경으로 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결단하면서 세상에 나가죠.
(쉬고 그리고 천천히)
그런데 만약 하나님을 붙잡고 외쳤던 고백과 결단이 이어지지 못했다면요.
또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보려고 했다면요.
우리는 이루는 것 하나 없이, 에너지만 낭비하게 되고 말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내 힘을 내려놓고,
경직되어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엄청난 기쁨을, 은혜를 삶 속에서 누리게 될거에요.
(쉬고)
기쁨과 감격이 무엇인지 이미 우리는 경험했어요. 그 은혜를 계속해서 사모하며 삶으로 살아나가야 해요.
(쉬고)
오늘 살펴보고 있는 두 번째 사건의 의미주님을 만나면 물고기 많이 잡고, 큰 돈을 벌 수 있다! 가 아니에요.
15절 이하를 보면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사람의 소명"에 대한 기록들이 등장해요.
첫 번째 사건은 (PPT) 베드로를 비롯한 사람들을 제자로 처음 부르실 때의 일이었어요.
두번째 사건배신하고 실패하고 쫓겨난 자들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첫 번째 사건은 (PPT)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을 택하셔서 불러주셨던 이야기라면,
두번째 사건은 (PPT) 저와 여러분처럼 여러 상황에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또 예수님을 향한 결단을 잠시 외면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쉬고)
(PPT) 이 두 사건은 사실 우리들의 이야기에요.
불러주셨는데, 우리는 부르심대로 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분은 다시 찾아오셨고 우리를 다시 부르심의 자리로 돌려주셨어요.
(쉬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이번 사건을 통해 예수님 없는 삶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거에요.
나를 떠나면 너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삶이 성공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할찌라도, 그 삶 속에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열심과 혈기 그리고 노력은 한계가 있다! 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세요.
흔들리고 넘어지고 또 결단을 잊어버리게 될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성령님과 함께 하면 열매 맺는 삶. 즉 매일의 삶을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계셔요.
(3초 쉬고) 제자들이 고기를 잡던 그 시기는 우리나라의 초봄? 처럼 쌀쌀한데, 바닷바람이 불면 추운 그런 시기였어요.
제자들은 밤새 고기를 잡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여 힘든 상태였어요.
8-9시간 동안 낚시하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거에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낚시가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시작하게 된 낚시였기에, 또 이렇게 오랫동안 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먹을게 없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지금 바닷물을 너무 뒤집어 써서 추운 상태에요.
(쉬고) 어디서도 쉽게 음식을 구할 수 없는 그 시간에,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하여 본 것은 숯불과 생선 그리고 떡이었어요.
먼저 수영을 해서 오던 베드로는 예수님과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했을거에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준비하고 계시던 식사였어요.
(PPT) “너희가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올래?”라고 부드럽게 말씀을 하셔요.

예수님을 만나다

예수님은 밤새 고생한 그리고 배가 고픈 제자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미리 준비 해 두셨어요.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는 이 때 음식을 준비하셨을까요?
(쉬고) 제자들에게 세 가지를 알려주고 싶으셨기 때문이에요.
(PPT) 첫째, 제자들의 필요를 알고 계셨어요.
밤새 고기를 잡으며 실패했던 제자들.
바닷물을 맞으며 젖어버린 그들의 옷과 몸 그리고 수영하며 오느라 온 몸이 젖어 추워하는 베드로를 위해 숯불을 피워 그들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에요.
제자들은 자신의 전부였던, 자신들의 살아가던 세상 바다로 다시 돌아갔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 곳에서 어떤 것도 얻지 못했어요.
그들이 살아갈 이유와 명분이 되었던 세상이었는데,
다시 돌아간 세상 속에서 그들은 좌절과 낙심 그리고 실패를 맛봤어요.
그랬던 그들이 자신들의 전부였던 세상을 뒤로한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니, 가장 필요했던 따스함과 사랑 그리고 온기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이죠.
(쉬고) (PPT) 둘째,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아침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과 함께 캠핑을 온 것이 아니잖아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러 오시면서 숯을 따로 준비하고 떡과 물고기를 들고 오셨을까요?
굳이 굳이 그 것들을 다 바리바리 싸서 오셨을까요?
중요한 것은 그 것들을 어떻게 준비했느냐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을 준비하셨다는 거에요.
따스함과 사랑 그리고 온기를 넘어서,
인생의, 육신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어요.
배고플 때 예민해지는 분들이 계실거에요.
저도 그 중 하나인데, 어느 순간부터 배가 고파오면 손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고 예민해지더라구요.
지금 제자들을 허기짐을 넘어서 온 몸에 힘이 빠졌을 순간이에요.
8-9시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힘이 없는데, 갑작스럽게 잡힌 물고기 153마리를 끌어올리느라 없는 힘까지 끌어다 썼어요.
그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 육신의, 인생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쉬고) (PPT) 마지막, 제자들의 필요를 정확히 아시고, 채울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넉넉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요.
제자들에게 필요한 따뜻한 온기와 음식이 준비 되었어요.
하지만 정말 제일 중요한 것 한가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요.
예수님을 세번이나 배신했음에도 아직 용서를 구하지 못한 베드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 그 마음 속에 있는 죄송함, 속상함 등에 대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거에요.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셨어요.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만을 위한 식사를 손수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죠.
(쉬고) 감격스럽고 따뜻한 아침 식사가 시작 되었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과의 육적인 그리고 영적인 교제를 누리며
그들의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해요.
(쉬고) 예수님은 밤새 자신의 힘과 의욕으로 씨름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보았어요.
모든 것들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경험한 후 좌절하고 있던 그들에게, 힘이 다 빠져버렸을 그 때에 예수님은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어요.
(쉬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라는 고백만 남았던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죠.

사랑을 느끼다

예수님께서 세가지를 채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조반을 먹는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을거에요.
(쉬고) 밥을 먹으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눈치도 보면서 초조해 했을지도 몰라요.
먹다 체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 있었는데, 가장 눈치를 보고 있던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시선이 고정되었어요.
(쉬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식사하시던 예수님의 시선이 베드로에게 멈췄어요.
베드로는 얼마 전에도 예수님과 시선을 교환했었어요.
바로 예수님을 부인할 때 세번 부인하며, 그를 모른다고 저주할 때 예수님과 시선을 교환했었어요.
그리고 지금 다시 눈을 마주치고 있어요.
어쩌면 전기가 통한 것처럼 머리 끝이 서고 식은땀이 흘렀을지 몰라요.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 입에 지금 떡으로 가득한데 하필이면 이 때'
‘아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일단 죄송했다고 엎드려야 하나?’
등등의 고민을 하며 시선을 회피하고 있던 그때,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어요.
불평이나 원망의 시선이 아닌 사랑과 용납을 드러내는 부드러운 시선을 보여주시면서, 그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세요.
(쉬고) (PPT)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이름이에요.
만약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라고 부르셨다면, 베드로는 더 낙심했을 거에요.
왜냐하면 “내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이 반석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을 거거든요.
(쉬고) 당시 사람들은 이름이 불리면 그 이름의 뜻도 함께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니?”라고 물었다면, 베드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을거에요.
“그래 사랑한다면서 나를 버렸구나”
“그런데 왜 그 이름처럼 살지 못하니"라고 스스로 느끼고 좌절할 수 있었기에,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신거에요.
(쉬고) 근데 솔직히 저는 이 질문이 더 부담되었을 것 같아요.
“내가 뭐라고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왜 배신했어?”
“죽어도 배신 안 한다고 했는데, 나를 저주까지 하던데 왜 그랬어?”
라고 했으면 무릎 꿇고 삭삭 빌면서 용서해달라고 할텐데, 그러면 베드로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텐데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너 나 사랑하니? 남들 보다 더 사랑하니?”라고 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셨어요.
그 것도 세번이나.
(쉬고) 예수님의 이 질문은 베드로를 돌려서 깎아내리기 위한, 베드로를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어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의 숨겨진 의도는
(PPT) “너가 나를 배신하고 저주하고 도망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곳을 뛰쳐나가다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PPT)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울던 모습도 보았다"
(쉬고)
“너 나 사랑하는 것 맞잖아? 나 다 알고 있어"
“나 다 알아. 너의 그 마음 다 알아. 그러니까 그런 두려운 마음 갖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그 걱정과 미안함을 다 내려놓아도 괜찮아"
(5초 쉬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베드로의 배신의 죄를 용서해주심과 동시에, 그의 진심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셨어요.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쉬고) 예수님 안에 한 가족된 동부교회 여러분.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이 만남은 저와 여러분에게 늘 준비되어 있는 만남이기도 해요.
우리도 베드로처럼 넘어지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해요.
어쩌면 내 신앙의 고백과 결단이 무색하게 지난 한 주 많은 것들을 또 놓치고 살았을지 몰라요.
그 때 내가 그런 마음을 가졌었나? 싶을 정도로 세상과 동화되어 살았을지도 몰라요.
(쉬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자리에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배신하고 저주했으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울었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 모든 걸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쉬고)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한 주를 살아내는 것 결코 쉽지 않아요.
어쩌면 이번 주는 좀 더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죠.
(쉬고) 또 넘어지면 어때요.
다시 일어서면 돼요.
(PPT)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이 여러분에게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을 지금처럼 붙들고 살면 돼요.
예배의 자리에 나와
아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돼요.
그거면 충분해요
그러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한발 한발 다시 내딛으며 걸어갈 수 있어요.
(쉬고) 우리가 가는 이 길을 세상이 미련하다 해도,
우리는 주가 보여주신 그 한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면 되는거에요.
(PPT) 그 중심을 붙들기만 한다면, 하면 돼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필요했던 세가지를 채워주셨고, 베드로의 상한 심령을 다시 세워주셨어요.
우리가 이 고백을 외치며 살아가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실 것이고,
그럼에도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울던 모습을 내가 분명히 보았다. 라 하시며
상한 내 심령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실거에요.
(쉬고) 이번 한주 살아갈 때, 우리가 함께 부를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를 묵상하며 찬양 하시기를 바래요.
그 가사를 통해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옆에 있는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기를 바래요.
(쉬고) 우리의 삶을 찾아오셨어요.
늘 만남을 준비하고 계셔요.
새로운 주를 살아가며, 늘 준비된 예수님과의 만남을 삶에서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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