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였더라(단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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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였더라(단 6:3-10)
<서론>
지난 한 주간 본문을 묵상하던 중 제 마음속을 헤집고 다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음」 「믿음」「감사」입니다. 세 단어를 연결하면, 「한결같은 믿음은 감사하게 한다」는 문장이 됩니다.
그렇다면 한결같은 믿음은 무엇인가? 성실함인가? 하는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 결 같이 감사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下)
우리는 흔히 「한결같음」의 기초를 「성실함」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실함으로 풀어내는 대는 함정이 있습니다. 무언가 막힘이 있을 때.. 하나님 내가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이럴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한결같음」의 기초를 전혀 다른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인격적 자질에 근거한 성실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한 결 같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기도하게하고 감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시대는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처럼, 믿음의 대가(代價)로 죽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집을 빼앗기고 쫓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고, 언제고 예배에 나올 수 있고, 학교나 직장에서 기독동아리나 신우회 활동을 막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믿음생활을 잘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 면에서, 우리는 이 시대에 「믿음을 목숨처럼 여기고 지키지 않으면 결코 신앙생활이 안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자유가 없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성실함이 없어서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불신앙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의 기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보여 지는 다니엘의 믿음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그는 목숨 걸고, 치열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 결과 기도와 감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 어떻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다니엘의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한결 같은 기도와 감사를 배우기 원합니다.
1. 성도의 삶은 믿음으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먼저 다니엘의 믿음은 「성도의 삶은 믿음으로 설명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삶은 믿음으로 설명됩니다. 본문에서 보여 지는 다니엘 최고 단점은 「믿음」이었고 역설적으로 다니엘 최고의 장점도 「믿음」입니다.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의 하여 멸망당했습니다. 그 때를 전후로, 세 차례 걸쳐 유다의 귀족을 비롯한 유다의 유력자들이 포로로 붙들려옵니다.
다니엘은 불행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는 바벨론 1차 침략 때(주전 605) 16세의 나이에 포로로 붙들려왔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촉망받는 귀족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포로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름조차도 빼앗겼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단 1:7)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인데, 벨드사살은 ‘벨이여 나의 생명을 보호하소서’입니다. 「벨」은 바벨론의 주(main)신으로 「전쟁과 폭풍우의 신」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이방 잡신을 섬길 것을 강요받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비관하는 삶으로 자신을 망가뜨려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런 처지;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강요받는 삶’을 살게 되었나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마음것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던 그들이, 그 자유 때문에 믿음을 목숨으로 여기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과 앗수루와 애굽을 의지하자, 진짜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예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복구하고 극복할 길도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단 1:8上) 결단합니다.
바벨론은 정복한 나라들을 자기나라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를 강제했습니다. 포로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과 정신이 담긴 음식을 먹이며 플러팅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친구들은 그것을 거부하기로 뜻을 정하였습니다.
“뜻을 정하여”는 「마음을 정하였다, 마음에 결심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정하여”는 ‘שׂוּם 숨’인데, 이 שׂוּם 숨은 7절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שׂוּם)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שׂוּם)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שׂוּם)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שׂוּם)”
환관장은 다니엘과 친구들의 「이름을 정해주며 불신앙을 강요」했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마음을 정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과 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이 먹는 율법적(성경적)으로 어긋난, 부정한 음식과 삶을 거부함으로 「세상을 닮지 않겠다」고 결단 때문입니다.
또한 바벨론의 여러 신전에서 제물로 받쳐졌던 왕의 음식을 거부함으로 바벨론과 그 우상들에게 충성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결단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거부한 것은, 그들이 요즘 유행하는 비건 음식을 선호했거나, 채식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뜻을 정하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믿음으로 설명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렇게 뜻을 정하여, 믿음을 목숨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쩌면 멸망한 유다가 직면했던 것처럼, 진짜 목을 걸지 않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는 시대(하나님의 심판)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만약 우리 삶이 믿음으로 설명되지 못한다면, 세상은 우리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정하고(שׂוּם 숨), 우리의 삶을 자신들의 영향아래 두려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강요할 것입니다.
환관장의 입장에서 보면, 다니엘의 믿음은 최고의 단점이었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바보 멍청이 같은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왜? 고기 안 먹고 풀만 먹겠다는 거야...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결단하자,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단 1:15)
바라기는, 믿음으로 살기로 “뜻을 정하여 שׂוּם 숨” 우리 삶의 모든 장소에서; 가정 직장 사업장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모든 관계에서; 남편 아내 친구 동료 상사 부하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성도로, 예수를 주님과 구원자로 모시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삶이 설명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삶으로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채식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자」는 말씀입니다!
2.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게 합니다.
두 번째로, 다니엘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성경의 기록은, 믿음으로 설명되는 다니엘의 삶에 대하여 계속 말합니다.
다니엘 1장과 6장은 시간적으로 65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토록 위세 등등했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하여 멸망(주전 539년)했습니다. 6장은 새 제국 페르시아 때의 일입니다.
그동안 다니엘은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만들었습니다. 포로라는 신분으로 총리가 되어; 왕 다음의 권세자로서 바벨론 왕국와 페르시아 왕국에서 살아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여섯 왕(느브갓네살 에월므로닥 네르살사레셀 라바시말둑 나보니두스 벨사살)과 페르시아의 두 왕(다리오 고레스)을 섬기면서 한 번도 실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80 넘은 노구였음에도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3)하는 실력자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오늘날의 중근동 일대와 인도의 일부, 아프카니스탄에 이르는 큰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120도로 나누어 행정관 총독을 파견하여 관리하고, 그 위에 총리 3명을 두어 다스렸습니다. 다니엘은 3명의 총리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다니엘의 능력이 뛰어났던지, 주변 사람들이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어떻게든 모함해서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4)
요즘으로 치면 경찰 검찰 공수처 등 모든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다니엘이 뭐 잘못한 것 없나? 하고 뒤를 삿삿이 캤습니다. 그러나 어떤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적자들 입장에서 보면, 다니엘에게 치명적인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역시 다니엘 최고 약점은 믿음이었고 역설적으로 다니엘 최고의 장점도 믿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5)하면서, 다니엘의 믿음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공략합니다.
그들은 왕을 설득하여 다니엘을 죽이기 위한 맞춤형 법을 만듭니다.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7)
그리고 왕은 여기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 법은 도장 찍은 왕조차도 임의로 바꿀 수 없는 법적 효력을 가지게 했습니다.(8)
드디어 대적 자들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자신들의 덫에 걸려 들것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역시나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대로 행동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니엘의 여전한 기도와 감사는 성실함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단이 나타나는 단어가 “알고도”(10a)입니다. 직역하면, 「확실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대적자들이 판, 함정에 대해 확실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간계로 음모를 꾸며졌으며, 그들이 자신을 반드시 고소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며, 결국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실행됩니다. “전에 하던 대로...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b)
“전에 하던대로”는 그의 탁월한 성실성이나 습관을 말하는 것이기 보다는, 그의 행동이 자신의 「믿음대로 옮겨졌다」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그에게 「감사」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했습니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하고 있었다」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을 바꾸려하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감사하였더라”는 진행형(ing)을 나타내는 능동태 분사로서 「다니엘의 감사는 지속적 이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10절 하반절을 의역하면, 다니엘은 「모든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대로 계속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성실한 사람 혹은 긍정적인 습관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성도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결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맞춰질 때, 우리는 한결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붙들립니다.
그래서 당신 자녀들을 향한, 한결 같은 사랑과 은혜의 다스림을 신뢰하는 믿음은, 언제나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게 하고, 그 믿음으로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언제나 동일하시며 한 결 같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며, 전과 같이 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와 같이, 신앙생활 하기 힘겨운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정부입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는 다수의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소수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대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면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고, 법과 제도는 점점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가 더욱 힘들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할 수 없으니 수긍하고 감사해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