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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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기 위해 나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큰 은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11월 둘째주일입니다.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인지 다들 아시죠? 그렇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12기들과 공식적으로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제가 맨 처음 여기 왔을 때 12기들이 1학년이었었는데, 벌써 마지막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날인 만큼, 원래는 디모데전서를 나누어야 하는데, 특별히 다른 말씀을 가져와봤어요.
우리가 본문을 함께 읽었으니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겠죠? 오늘 본문은 아마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홍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출애굽기의 내용 중에서도 손꼽히는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내용을 워낙 잘 알고 있다보니 결말을 알고 말씀을 보고 있어서 그 느낌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요, 사실 이 본문을 자세히 보고, 나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 이입을 시켜보면 정말 이 말씀이야말로 큰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여러분들이야말로 더욱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말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함께 보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일하셨는지, 또한 우리에게는 또 어떻게 일하실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늘 말씀은 시작부터 백성들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어떻게 말씀이 시작하죠?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깝게 찾아옵니다.
자, 이게 무슨 상황이죠? 우리가 잘 아는 이집트의 열 재앙이 끝난 상황이에요.
그래서 바로가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낸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나서 짐을 싸서 이집트를 떠나온거에요.
그렇게 백성들을 보냈는데, 바로가 생각해보니 어떤 생각이 들어요? 아들을 잃은 슬픔이 잦아들면서 이성적인 생각이 든거에요. 우리 토목공사 시킬 공짜 노예들이 사라진다! 아까워진거죠.
물론 이 역시도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하여튼 바로는 그 즉시 이집트의 군대를 동원해서 출발합니다.
그 규모가 어느정도였냐, 앞선 구절인 7절을 보면 됩니다.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병거 600대, 그리고 그 외에도 모든 병거를 다 동원했다고 하니 꽤나 대규모의 군대인 것을 알 수 있겠죠.
그렇게 군대가 출동하여 쫓아오다가 드디어 코앞에까지 다다른거에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 뭐하고 있었어요? 신나게 출애굽의 길을 걷다가 홍해를 만나서 멈춰있었어요.
그러면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앞에는 홍해가 막고 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오고 있는 상황인거에요.
이런걸 뭐라고 해요? 사면초가의 상황인거죠.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인겁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어때요? 그들이 지금까지 한거야 노예로 건설공사에 투입된 정도이지, 군대 관련 훈련을 받았을리는 만무했을겁니다.
게다가 아예 떠날 생각으로 이민가듯이 짐을 꾸렸을테니, 짐도 많고 처자식도 다 딸려온 상황이니 싸우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이 찾아온거에요. 그러니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자신들을 이끌어준 모세에게 한탄합니다. 아니 왜 괜히 우리를 이리로 끌고와서 우리가 다 개죽음 당하게 하느냐, 우리는 그냥 애굽에서 종노릇 하는 것이 지금 이렇게 죽는 것 보다 나을거다.
이 백성들의 말은 뭐에요? 왜 자신들을 끌고왔냐는거에요. 원래 잘 살고 있었는데 왜 괜히 데려와서 죽게하느냐. 이런겁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이 백성들이 정말로 끌려왔을까요? 아니에요. 모세는 강제로 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들이 이제 종노릇 해방이니까 신나서 따라왔어요. 분명 이집트에서의 생활이 종노릇이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그거 안하려고 따라온거란 말이죠.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어떤 마음이 생기는거에요? 과거를 미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합니다. 아 내가 그랬으면 지금보다 나았을텐데. 내가 요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여러분 어떤가요. 어쩌면 이 백성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당장 놓여진 상황이 좋지 않고, 그로 인해서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차다보니 다른 것들을 탓하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 후회하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시간은 이집트 군대들처럼 우리를 조여오고, 나는 한발짝 앞으로 더 나아갈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이 엄청난 위기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여러 마음들이 들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러한 극도의 위기 속에서 그들을 이끄는 모세는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이 되는 13절과 14절을 함께 봅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죠?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보라. 하나님께서 싸우실 거다. 그러면 저기 오는 군대들 다시 보지 않을거다.
여기서 다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원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너희는 이집트 군대가오는걸 기뻐해야 한다. 군대가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함정에 빠트리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결국 뭔가요. 지금 너희를 조이는 이 상황들, 두렵게하는 모든 것들,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 하나님께서 싸우실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뭘 하지 말고 그저 일하심을 바라보아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간단합니다.
그냥 뭐 할 생각하지 말고 지켜봐. 그럼 하나님께서 행하실거야. 지금 두렵고 떨리겠지만, 그건 너희를 무너뜨리기 위한 두려움이 아니고, 오히려 너희를 기쁘게 하기 위한 과정들이야. 그러니 용기를 내고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고 바라봐.
여러분의 삶을 두렵게 하고 염려로 가득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여러분에게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욥기를 통해서도 봤었죠. 당장 그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던 고난들이 결국에는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게 하는 과정들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이 어려움들도 끝내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위한 과정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지금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약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을 여러분 자신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삼지 마시고,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설렘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의 떨림과 설렘의 떨림은 한끝차이죠. 하지만 그 결과는 많은 것들을 바꿀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영화 흥행 순위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가 있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명량이라는 작품입니다.
거기서 등장하는 명대사가 있죠. 두려움을 용기로만 바꿀 수 있다면,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 두려움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기대감으로 바꿔낸다면, 그 두려움은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더 큰 용기가 되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에게 용기를 준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뭐라고 하시죠?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명령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갈라지도록 하라고 하시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는 마른 땅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이 그리로 뛰어들어 오도록 하실 것이고, 그 모든 병거와 마병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여호와인줄, 즉 스스로 존재하는 자, 참 신이신 줄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뭔가요? 하나님께서 이제 어떻게 그들 가운데 일하실지를, 그 계획을 다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나아가고, 모세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상징인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킵니다. 그러자 홍해는 갈라집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갈라짐이라는 것은 실제로 홍해의 상류를 흙과 모래를 통해 일시적으로 막으셔서 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고, 그래서 하류에 있었던 백성들이 물이 흐르지 않아 드러난 땅을 건널 수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집트 군대가 건널 때 둑이 터지는 것처럼 그 막혔던 것을 터뜨려서 수몰되도록 했다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딱 물을 반 갈라서 건넌것은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뭐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그 연구대로 물을 막으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만화처럼 반을 아쿠아리움보듯이 딱 가르셨을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뭐냐, 백성들이 정말 말씀대로 그 강을 건넜다는 것이고,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이집트의 군대들이 그 강에서 수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바로와 이집트군대가 홍해가 열렸다고 거길 뛰어들어가는건 지혜롭지 못한 무리수였습니다.
앞서 그 군대가 어떻다 그랬죠? 엄선한 병거 600대에 추가적으로 모든 병거들도 가져왔다고 했었죠.
그런데 병거라는건 말 뒤에 수레를 부착한 형태의 것이죠. 바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병거를 홍해바다의 바닥이라는 누가봐도 물기가 있고 단단하지 않은 땅으로 가져간다는건 좋은 선택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이 뒤집혀진걸까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17절에 나와있죠. 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이죠.
당장의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백성들만 보고 홍해로 뛰어들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잘못된 판단 하에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끌려가서 모두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당대 초강대국 이집트는 잘 훈련된 정규군의 상당수를 잃고 당분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래도록 광야를 방황했음에도 그들을 잡을 생각조차 못하게 된 것이죠. 하나님의 계획은 당장의 위험을 벗어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더 먼 미래까지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그 모든 하나님의 계획에서 집중하여 바라볼 곳이 있습니다.
바로 15절 첫부분이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모든 놀라운 계획의 시작은 무엇이었죠? 15절 하반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먼저 가르시지 않았어요. 백성들로 하여금 먼저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이건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거에요? 홍해로 들어가라는 명령이죠.
생각해봐요. 당장 눈앞에 홍해가 있고, 뒤에 군대가 쫓아오는 상황에서, 그저 ‘야 두려워하지마 하나님께서 일하실거니까 일하실거 지켜보고, 일단 앞으로 가!’ 이런거잖아요.
아니 당장 눈앞에 홍해바다가 있는데, 앞으로 가라니. 말이 안되잖아요.
그런데 백성들이 어떻게 해요? 앞으로 갑니다. 앞으로 가니 홍해가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죠.
이건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더 물을 가르시는데요, 모세의 다음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때에 요단강을 가르십니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물론 이 때에는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가 가장 먼저 나아가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언약궤를 든 제사장들이 강물에 발을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둘다 뭐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비롯되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당장 눈앞에는 갈라지지 않은 바다가 놓여있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실거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그 바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앞서 말했듯 더 큰 용기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하심으로 눈앞에 나타나 바다가 마른땅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큰 일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있을건가요?
늘 이야기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어떤 행동도 요구하시지 않아요. 하지만 그 일하심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죠.
우리의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놀랍게 여러분들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나태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도 그 자리에 앉아서 풀어야지 답이 나오는 것이지, 수험장에 가지도 않고 정말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점수가 나올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그 마음을 기대함으로 변화시키고 일하심이 일어날 그 장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신 계획대로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영상 하나를 보여주고 마무리하고 싶은데요, 여러분들이 아마 못들어봤을 영화일거에요. 80년대 저희 부모님 세대를 휘어잡았던 시리즈인데요, 바로 인디애나존스라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가 최근까지 5편이 나왔는데요, 4-5편은 많이 이후에 나온거라 논외로 하고, 보통은 1-3편을 메인으로 합니다.
그 중에서 3번째 최후의 성전이라는 영화인데요, 인디애나존스의 시리즈 자체가 2차대전을 배경으로 고고학자인 주인공이 여러 유물을 찾아다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3편은 뭘 찾으러 다니냐,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성배를 찾으러 갑니다.
인디애나존스는 여러 예언들을 바탕으로 그 성배를 찾아다니는데요, 우리가 볼 부분은 그 내용의 극후반부입니다. 거의 성배를 찾기 직전까지 왔는데, 나치가 방해를 하면서 인디애나존스의 아버지에게 총을 쏩니다.
그래서 빨리 찾아와야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식으로 인디애나존스를 압박하죠.
그렇게 예언을 토대로 여러 함정을 피해 성배를 찾으러 가는 존스 박사의 모습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셨나요? 예언에 따르면 믿음의 도약을 해야 했죠. 존스 박사의 시선에서는 아무런 디딜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고, 놀랍게도 허공에서 발은 딛어졌죠.
하지만 실제로 허공이 아니라 착시효과로 보이지 않던 다리에 닿은 것이었습니다.
이건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상식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늘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 가운데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주님의 놀라우신 일하심을 믿고 신뢰함으로 용기를 내어 믿음의 도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도약을 할 때, 우리는 하니님의 우릴 향한 놀라우신 계획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3학년 12기 여러분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지금까지 3년동안 열심히 믿음을 가지고 헤쳐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이 이끌어주신 것처럼 이끌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보이지 않으나 그 길을 향해 도약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의 선하심을 여러분들 가운데 보이실 것입니다.
그것을 신뢰하며 담대히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 12기, 뿐만 아니라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