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12-20 나는 생명의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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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8장 12-20절
때는 장막절이었습니다. 해마다 장막절 기념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간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 중에 그들을 성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당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성정 안의 ‘여인의 뜨락’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이 연보궤는 성전 안 여인의 뜰에 놓여 있었는데, 이곳은 가난한 과부가 자기 생활비의 전부였던 엽전 두 푼을 드렸던 장소입니다.
장막절 절기가 되면 이 여인의 뜨락에는 네 개의 대형 금촛대의 불이 밝혀집니다. 이 불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예루살렘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밝았다고 합니다. 문서에는 예루살렘의 아낙네들이 이 불빛을 의지하여 바느질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밝기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금 촛대의 불이 붙여지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백성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장막절은 안식일에 시작해서 그 다음 안식일에 끝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장막절 절기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은 안식일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 성화가 꺼지듯 네 촛대의 불이 가물가물 꺼져가고, 이제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고도 엄숙한 순간입니다. 이때 한 젊은이가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의 뜰의 한복판에 들어섭니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드디어 그 젊은이가 무리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두 번째 “나는... 이다.”라는 선언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한 중요한 두 번째 선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이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선업니다. 이 “나는...이다.”는 선언은 헬라어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나 홀로 빛이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불기둥의 빛은 하나님 자신의 현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바로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시편27:1
신약성경에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요일1:5
그런데 지금 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이 선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선언의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마치, 광야의 성막에서 쉐카이나 영광스러운 빛이 주의 임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며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3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말씀이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만졌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겠습니까? 광야 길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걱정이 있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고통은 아마 고독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 데서 오는 고독이 아닙니다. 적어도 백만 이상, 학자에 따라서는 이백만에 가까운 군중들이 이 광야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행진 중에 많은 난관과 역경을 경험하게 되고 저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 마음 터놓고 지낼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삶을 다 내놓고 나눌 만한 사람들이 없는 어떤 실존적인 고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고통이 올 때 우리는 저마다 홀로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 고통의 짐을 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참으로 외롭게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조차도 이 고통을 함께할 수 없다는 처절한 고독! 우리 인생의 여정에는 이런 고독이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광야 생활 중에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구름기둥과 불기둥! 누군가는 이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그 순간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느껴야 했던 온갖 좌절과 방황은 새로운 희망으로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분, 진실로 나의 모든 문제의 응답이신 그분, 창조주이신 하나님, 나와 더불어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이 하나님의 현현!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놀라운 증거였던 것입니다. 사실상 인간이 가장 깊은 의미의 고통 속에 몰입할 때는 그 누구도 함께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누구와 손을 잡고 함께 건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진정 놀라운 희망이지 않을까요?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13:22 이것은 그 백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희망이었겠습니까? 내가 걷고 있는 이 삶의 여정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 곁다고 해도 하나님만 떠나지 아니하신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시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이 빛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줄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지는 못합니다.
광야 길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아마도 사막의 무변성이었을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그게 그것 같고 무엇이 무엇인지 분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는 우리 삶의 일상성을 말해 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저 그렇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잃어버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삶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비일비재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막의 강력한 태양까지 연상해 보세요. 땡볕 아래에서의 행군! 고통스러운 사막의 이 방황이 그들을 얼마나 지치게 했을까요?
그런데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문제가 남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도 제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얼마나 지겨운 고통인가요? 그런데 그들 앞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기둥은 움직이며 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 얼마나 인상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한 발짝 두 발작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고 백성들의 입에는 금새라도 찬양과 감사의 시가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민수기 9장에는 이 장면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7절
구름이 진행하면 백성들도 진행하고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찾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면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쫒아 유진하교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정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18-20절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계속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결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쉽고 편리한 쪽으로 결정하고 있나요? 나의 편리와 나의 쉼과 나의 안식을 위해서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주께서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의 임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리와 자신의 쉼을 위해서 주님을 좇아가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성경을 열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십니까?
지금은 구름이 뜨지 않고 불기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 확실한 성경의 메시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또 우리 곁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조명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과 평안을 주시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선포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 편리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빛 가운데 거하는 이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따르는 것은 계속해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실하고 계속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삶!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와 은총을 체험하는 이 삶을 원하십니까? 그대답은 “참으로 주님 따르기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과 더불어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열어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걸을 때,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상징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요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인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이야말로 궁극적으로 그 백성이 가야 할 땅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오신 예수님 자연의 불빛은 사라져도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영원한 인도자가 되시기 위해 우리 역사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내가 바로 구름기둥이야. 내가 불기둥이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임재 이상으로, 더 정확하고 더 아름답고 더 평안하게 우리 삶속에 간섭해 오시는 예수님! 그분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약속의 땅인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려야만 했었던 그 많은 결정들,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 잘 나가다가 때때로 방향을 잘못들어 방황하고 헤메이며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어떤 결정이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당신의 결정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사모하게 합니까? 그리고 발걸음을 주님 앞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만일 다른 곳에 눈을 두게 하고 하나님께 맞춰진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유혹이 있었다면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진행했던 우리의 발걸음도 어느 한 순간에 돌이키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싶은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할 목표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정욕이 순간순간 우리 삶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 때에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주님 앞에 나가게 됩니다.
가야 할 그 땅이 있기에. 약속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전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인도를 좇아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 행렬속에 당신이 서 있음을 바라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빛 가운데 있습니까?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 어둠은 죄, 방황, 무목표, 무의미. 무목적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삶가운데 이러한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기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습니다. 빛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세요. 아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의 불빛이 세상의 불빛이 친구들의 불빛이 이성의 불빛이 꺼지는 이 순간에도 내 앞에 다가오시며 내게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주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빛은 당신을 위한 빛이십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밝은 빛이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며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요,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이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