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19-26 좋은 교회란?(안디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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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
행 11장 19-26절
<교회성장 연구소>에서 좋은교회인지 아닌지를 조사하기 위해 몇 교회를 선정하여 직원들을 밀파하였습니다.
1) 환영하는 미소를 자기에게 보내 주는 사람이 1명 있을 때마다 10점,
2) '안녕하세요' 혹은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을 때는 1명당 50점,
3) '나는 이 교회 장로입니다' 라든가 '나는 이 교회 권사입니다'하면서 자기소개를 하거나 '어디서 오셨느냐', '어떻게 오시게 되었느냐'고 묻고 인사를 교환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100점,
4) 그리고 다음 주일에도 꼭 나오시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200점,
5) 인사를 할 뿐 아니라 자기를 데리고 다른 교인들에게까지 가서,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고 합니다'하는 식으로 인사를 시켜 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1,000점을 매기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몇 주일에 걸쳐서 18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18개 교회에 대한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랬더니 18교회 중에 11교회가 100점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1교회에서는 '어떻게 우리 교회를 나오시게 되었느냐'고 관심을 가지고 묻고 이름을 나누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100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5교회가 20점 미만이었고, 두 교회는 0점 이었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두 교회에서는 인사는 고사하고 미소 한번 지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교회 성장학자는 6년 동안 2,000개 교회를 방문하면서 새신자가 교회에 정착하게 하는데 중요한 일들을 이렇게 네 가지로 요약을 했습니다.
첫째, 새신자 정착률이 높은 교회에서 보니까 주차요원들이나 새가족부원들이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주차장까지 와서 기다리다가 우산이 없는 새가족이 오면 우산을 빌려 주거나 씌워 주면서 교회까지 안내를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제일 가깝고 편리한 주차장은 반드시 새가족들을 위해 배려해 놓더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교회 입구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건물도 깨끗해야 하지만 교회 입구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안내하며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져 주느냐 하는 것이 새가족들이 정착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새 가족이 왔을 때 옆에 앉아서 성경이나 찬송을 찾아주며 예배를 도와주는 등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예배 후 10분이 그 사람이 그 교회에 계속 나오느냐 안나오느냐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자는 '예배 후 10분 동안 새 가족이 혼자 있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좋은 교회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안디옥 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사도행전 11장 19-26절에 최초의 이방인이 세운 교회로 주후 45년 경에 세워진 교회 입니다. 특별히 이 교회가 세워지기 전 안디옥 지역에는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올 때까지 그곳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교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지인들이 와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몇 몇 사람이 감동을 받고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기에 아마도 한 두 명이 예수를 믿고 변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뀐 사람들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니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더라”(21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그렇게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던 안디옥에 바나바가 왔고, 24절 말씀처럼 바나바를 통해서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큰 무리가 주께 더해진 것은 한 번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순차적으로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이것은 한 번에 끝나는 사건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던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디옥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안디옥 교회를 보면서 이 교회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회심입니다.
진정한 회심이 있었던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너무나 멋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러한 특징이 최초의 이방인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만 일어났던 사건이었을까요?
1900년 대 한국 기독교 교회 초기 역사에서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40년 전, 런던선교회 소속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그는 중국 상해에서 선교를 하다가 아내를 잃고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참수를 당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너무나 마음을 아파했던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상선을 타고 대동강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선이 들오는 과정에서 대동강 사람들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선교사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내려와 해변에서 참수를 당합니다. 그는 죽기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한국어 성경 몇 권을 몇 몇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참수를 당했습니다.
그 중 그를 죽이려 했던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성경을 주었고, 박춘권에 의해 참수를 당합니다. 그리고 구경나왔던 최치량이라는 소년에게도 이 성경을 주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오로지 이들에게 성경을 건내 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박춘권은 토마스 선교사가 준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주변에 아무도 그리스도인이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국 안주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성경을 건내받은 구경나왔던 최치량은, 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서워서 당시 영문주사였던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이 성경책을 건내주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아주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지만,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이 책을 뜯어서 사랑방에 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박영식이라는 사람이 방에 와서 누워 있다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누워도 말씀이 보이고 앉아 있어도 말씀이 보이니깐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시간이 흐린 뒤 이 박영식의 집이 널다리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는 장대제교회가 되고 나중에 장대현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1907년 1월 14일과 15일에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던 교회입니다. 사실 토마스 선교사가 이 나라에 와서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제대로 전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순교당하기 전, 몇몇 사람들에게 성경책 몇권을 나누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받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성경을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의 집이 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가 성장하여 평양의 중심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두 교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읽었던 안디옥 교회와 우리나라 초기 한국교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사소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교회에 진정한 회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심은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말을 해주고,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좋은 교육을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사람은 결코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변에 있는 변화된 사람을 볼 때, 그의 인격과 그의 삶의 모습을 볼 때, 사람은 자신도 놀라고, 궁금해서 질문하고 자신도 영향을 받아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만나게 되고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이러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도미노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수없는 회심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전도 훈련받고 열심히 전도하면 가능할까요? 아니면 정기적인 부흥 집회를 통해서 가능할까요? 아니면, 훌륭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와서 교육하면 가능할까요? 아니면 예배를 통해 감동을 주면 가능할까요?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방법론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안디옥교회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회심이 일어나는 첫 번째 비결은 편견이 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편견이 깨어진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깬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선민의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독특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주후 30년에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주후 45년 동안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사건으로 일어나서 다 흩어졌음에도 사람들은 10년 동안 유대인의 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와서 처음으로 그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처음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본이 되어 지속적으로 회심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입니다.
“저 사람 잘 사는데... 너무 잘 사는데... 저 사람이 하나님이 왜 필요해?” 또는 반대로 “저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저 사람은 강팍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천국에 가면 안 돼!”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할 수 없어. 내 인생을 봐. 날 통해 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절대로 나는 할 수 없어. 내 인격은 변화되지 않았어” 사람들은 이러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 인생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 나 자신에 대한 편견, 전도에 대한 편견, 사역에 과한 편견들이 깨지지 전에는 우리는 결코 좋은 교회를 이룰 수 없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두 번째, 진정한 회심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들은 헬라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이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헬라 사람들과 그저 편한 이웃 정도로 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까? 이 구절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그들 속에는 애가 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자신들은 예수를 통해 인생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어져가고 매일 자신의 삶은 바뀌어 가는데, 이 사람들은 그 예수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애가 타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없었다면, 지난 세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예수님 없이 10년, 20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애타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예수를 통해 이렇게 달라진 삶을 경험하고 있는데, 어떻게 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 땅의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정말 원하십니다. 애가 타도록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사람들이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셨던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변화시킨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 마음이 우리 속에 전이되어서 우리도 애타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것처럼 우리도 애쓰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회심은 바로 이런 애탐으로부터 시작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회심이 일어나는 세 번째 비결은 바로 삶입니다. 본문 21-23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안디옥에 이르렀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 예수님의 대해서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말 몇 마디 잘해서가 아닙니다. 외지인으로 안디옥에 와서 살아가는 모습, 그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도전되었을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받아 온 바나바가 살아가는 모습도 그들에게 그대로 드러났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어떤 사람입니까?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바친 사람입니다. 이런 바나나는 안디옥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들을 절약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을 섬기는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예수를 믿었다. 숫자가 늘어났다” 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대신 “주님께로 돌아왔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말에는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의 인격에 감동받고 그분이 한 일에 대해 도전받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그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인이 되었다가 아닙니다. 예수를 통해 인생이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했던 것처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이제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이들을 “그리스도인” 크리스티아노스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들의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물론 성숙한 사람이었지만 안디옥에 있었던 사람들은 연차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그저 변화되어가고 있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완벽한 삶을 보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도전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어떤 경지에 이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결점없는 완벽한 삶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는 삶, 달라지고 있는 삶, 여전히 완전에는 멀지만 바뀌어가고 있는 삶 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 때 진정한 회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회심이 일어나는 마지막 비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소개시켜 주는 일입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생명수 같은 예수님, 끄집어내 써도 부족함이 없이 거대한 보물과 같은 예수님을 소개해 주는 일입니다. 그냥 예수님 믿으면 천국가는 정도로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지혜와 감격과 비전을 주시고 회복과 치료를 일으키시는 분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누리고 알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힘쓸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려고 힘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려고 힘쓸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21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예수라는 사람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안디옥에는 십자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고, 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예수님처럼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을 주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결심을 통해, 하나님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 장남감에 매여 살던 사람들,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 되려고 주님을 일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을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 가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따라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아무리 좋은 시설, 프로그램을 갖춘다 할지라도 주님의 손이 들어갈 데가 없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눈에 좋은 교회는 언제든지 주님의 손이 임하도록 준비하는 교회입니다.아직은 불완전하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는 공동체, 한번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교회가 좋은 교회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끊임없이 연쇄적으로 회심이 일어나는 그런 교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만나게 되고 변화되게 되는 교회,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이것이 우리의 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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