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5:1-16 나는 참 포도나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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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포도나무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6절
세계 3대 거짓말 중의 하는 장사꾼이 “밑지게 판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업을 하는 상인의 바람은 우선적으로 이익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육자의 바람은 제자를 길러 내는 데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으로 학문을 깨우치고 성숙한 모습으로 일어서게 될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이야말로 교육자가 헌신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또 농부의 바람은 열매에 있습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폭염을 견디면서 긴긴 나날을 몸을 아기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가을의 열매에 대한 수확의 비전 때문입니다. 꽃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매력이 있지만, 농부의 궁극적인 기대는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사실 성경은 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종 꽃은 순간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인생의 허무에 비유됩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시103:15,16)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약1:10)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이지되.”(벧전1:24)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꽃을 구하는 세대입니다. 궁극적인 열매인 생의 보람이나 진정한 의미보다도, 한 순간의 쾌락과 민족을 구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본문에 요한복음 14장의 마지막 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31절)
이 말씀에서 ‘여기’는 다락방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그 설교가 마무리될 무렵 예수께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라고 하신 것입니다.
조금 넘어가서 18절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예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4장에서 예수님은 유명한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예수님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십니다. 그분은 기드론 시내의 건너편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 길을 가시는 동안 예수님은 “내가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이 선언은 요한복음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일곱 번째의 나는... 이다. 로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한 우리 삶의 능력과 변화를 증언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포도나무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처럼 역사의 걸음을 걸어 왔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땅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탄식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2:21)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질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신약성경에도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하에 보면 포도원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포도원 주인이 열매를 거들 때가 되어 종을 보내 수확한 것들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부탁으로 포도원을 관리하던 농부들은 열매도 변변치 못했고 욕심도 생겨서 주인이 보낸 하인들을 매번 죽여 버렸습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3
이스라엘 민족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제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이들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백성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백성의 위대한 출발점이 될 제자들을 3년간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그 제자들의 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식하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 기대하시는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떻게 맺어질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열매를 두 가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격적인 열매입니다.
인격적인 열매란 주님을 닮은 열매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면 당현히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인격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9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1절
이것은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입니다. 주님은 사랑과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인격을 기대하십니다.
인격적인 열매에 대한 다락방 강화의 이 유명한 메시지는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3장에는 사랑의 열매가 중점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4.35절
이어지는 14장에서는 평안의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이 아니하니라.” 27절
16:23,24절
그리고 15장과 16장에서는 특별히 기쁨의 열매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랑 기쁨 평안 이 세사지는 사실상 바울 사도가 성경의 열매를 이야기한 것과 그 순서가 일치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갈 5:2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속한 사람답게 삶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이 사랑이시듯 우리의 삶도 사랑이어야 하고 주님이 참 기쁨을 가지고 사셨듯 우리도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운 하늘의 평안을 지니고 사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그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인격의 집은 다른 외적인 것들보다 더욱 소중합니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어떤 탐스러운 열매보다도 먼저 영적인 변화와 인격적인 변활를 추구해야 합니다.
요한 서신을 비록한 서신서들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 큰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운 인격으로 서게 되지 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흘러간 시간에 비례하여 우리의 인격도 성숙하였습니까? 만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아네 거하시며 여러분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이 주님을 더욱더 닮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신앙 연륜에 합당한 인격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늘 자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둘째는 증거의 열매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6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가서 핍박도 받고 박해도 받고 어려움도 당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내가 어버지께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6절
보혜사 성령께서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로자요 돕는자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됩니까?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시는 또 한 가지의 열매는 바로 증거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 안에 그리스도 거하신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는 얼마만큼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내가 걷고 있는 삶의 거리에서 나는 내 안에 거하시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얼마나 이웃들에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르는 민족적인 중요한 과오 가운데 하나는 선민의 특권을 강조하면서도 선미의 의무는 회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특권에만 열중했을 분 그 하나님을 나타내고 전하는 일에는 열심과 관심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주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를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맺어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공동체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생명의 부요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 찾아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열매의 종류에 대해 살펴 보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두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5절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본문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주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절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붙어 있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무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기르스도와의 변할 수 없는 생명의 관계!
“나는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이러한 신앙 고백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내가 이러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항상 거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7절
본문은 우리가 주 안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항상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거하다’는 단어는 15장에만 해도 열한 번이나 등장합니다. 또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서는 마흔 번이나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거한다.’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는 기억하다 로 되어있지만 본래 의미는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신뢰다가 내일은 멀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변해도 내 신앙을 흔드는 어떤 세력들이 있더라도 어떤 위험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이 신앙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계속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관계만 맺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뢰하되 마지못해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거하라!”
한 지분 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살지만 진정한 교제가 없이 서로의 존재만을 확인하며 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잘 잤느냐고 얼굴을 한번 보고는 헤어집니다. 저녁에 와서도 잘 지냈냐고 하고는 잠을 자고 아침에 또 일어나 나갑니다. 이들 사이에는 교제는 물론이고 사랑의 의미마저 상실되어서 무덤덤한 부부 생활이 계속될 뿐입니다. 이것은 하숙 생활이지 한 집에 거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거한다.’ 는 말은 그냥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놀랍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함께 거하는 곳에는 사귐이 있고 대화가 있고 정말 다이나믹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예수께서 참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삶이 ‘거하라’라는 단어에 담긴 뜻입니다. 그분은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한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나를 주관하시어 지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오늘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가 참으로 여러분의 주인이 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생명의 엄청난 부요와 놀라움을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이 그리스도를 계속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열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 자체까지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 삶의 장에서 경험하는 고민과 갈등과 좌절과 방황과 눈물과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내 안에 거하시는 이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번역 선교사 타우센트라는 분의 전기에 이런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타우센트가 남미에서 전도하면서 한 원주민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사명감을 느껴서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돈 빌레모라는 이 젊은이는 전도자가 되어 열심히 복음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갑자기 타우센트 선교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사표를 내겠습니다. 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타우센트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는가?
“전도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이제 사람의 욕설과 고함 소리와 비난과 비웃음 등 이모든 것을 견딜 수가 없어요. 사실 제가 아쉬는 게 뭐있어요?”
이 젊은 전도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우센트가 말했습니다.
“빌레몬 군 자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얼마후에 나에게 찾아와 주님이 복음을 전하다록 저를 부르십니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다면 나는 그 사표를 받을 수가 없네. 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주님 분일세 자네는 지금 내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 앞에 사표를 내게나.
주저하던 청년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주님께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안 받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교사는 냅다 고함을 쳤습니다.
“주께서 사표를 받으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아직도 자네를 사용하셔서 복음ㅇ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의 눈빛이 빛나더니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맞습니다.”
그는 곧 일어나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 가운데 복음 전도의 길을 걸어갔다고 합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 어떤 사건이 우리를 낙심케 했습니까? 여러분의 의욕을 좌절 시키며 여러분을 멈추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유혹과 곤란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붙들어 매든지 간에 주께서는 여러분이 계속 그분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계속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답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여 이 말씀으로 네가 지배를 받으면 열매를 맺으리라.”
우리가 인격적인 면에서 주님을 닮아가고 부족한 나를 통해서 이웃들이 주 앞에 돌아는 이런 변화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생애를 엮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나이는 얼마나 됩니까? 영적인 나이에 맞는 열매를 맺었다고 주님께 고백할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은 세월 만큼 여러분의 삶 속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자비와 양선과 오래참음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제자들을 이끌고 기드론 시내를 향해 달려가시면서 주께서 그들에게 주시던 말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5절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새로운 삶을 찾게 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지나온 많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하고 복음 전파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했다면 여러의 신앙을 뿌리부터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복음을 남은 세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까지도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너와 함께하겠다. 나를 증거하라 나를 나타내라.”
“주여! 탐스럽고 싱싱한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날을 위해서 단순히 주 안에서 있는 자가 아니라 주 안에 거하는 성도로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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