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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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고히 잡는 신앙
끝까지 견고히 잡는 신앙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 서론
주안에서 수고 많으시죠? 어느덧 벌써 11월이 되었고 2024년이 2달 남았습니다.
이제 이 기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해 계획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보며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못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사 형제, 자매님들은 어떠신가요? 올해 한해 계획하신 것들 다 이루셨나요?
모든 일을 할때 시작은 중요합니다. 첫단추를 꿰는 것도… 단순한 일이지만 우리가 첫단추를 잘못 꿰어 나중에 알았을 때 풀고 다시 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첫 마음이 하루를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시작이 중요한 것을 알고 그 시작을 잘 하고자 합니다.
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일이든 마음먹고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일을 끝마치기 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 유초등부 학생들도 중고등부 학생들도 어떻게 보면 성인이 되기전 신앙의 시작을 배우는 단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상황과 분위기는 너무나도 악하고 성경과는 반대되는 것들이 당연시되고 인정받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시대의 징조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기에는 복음전파의 바톤을 이어받을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여기 앉아 있는 우리 교사 선생님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그 수고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끝까지 주님을 붙잡고 나아가는 교사라는 주제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진행했던 포스트 교제와 조별교제는 잘 하셨나요?(감사, 인내, 협력)
우리가 했던 활동을 통해 우리가 단번에 인내가되고, 협력이 되고 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인내에 대해서 협력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본론
본문 말씀을 우리가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시작할 때 / 확실한 것을 끝가지 견고히 잡으면 /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 인생의 시작은 하나님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작은 슬픔과 고통과 방황이였고 그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의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향방 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만을 추구하는 그러한 세상 가운데 시작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시작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죄인이였던 우리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을 때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의 삶은 여전히 그 모습인 것이죠.
왜 내가 세상에 살고 있는지,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되는지 그걸 모르니깐 오로지 육체적인 쾌락만을 탐닉을 하면서 사는 것이 이 인생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세상을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어지면서 마귀는 세상을 점점 더 이 먹음직하고 보함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세상으로 바꿔 놓고 있잖아요.
그러한 세상 가운데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인생 전체의 목적인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이 아닌 조금만 내 생각을 내 삶을 생각을 해보더라도 그렇게 세상에서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고 또 세상에 명예와 부를 얻고 이것이 결코 나를 만족시켜줄 수 없다라는 것은 우리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은 깨달을 수밖에 없어요. 자 그러한 그 이 그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래서 거듭나야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죠.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거듭나야 돼요. 여러분들 만약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성경에 있는 말씀처럼 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습니까?
전 안 하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이 아수르의 수도 니느웨성이 그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그 니느웨 성을 갖다가 당장 멸망시키지 않으셨잖아요.
자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고 유일한 생명이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기를 원치 않고 있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안다라고 해도 많은 오해를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더이다.
또 유대인들은 저가 미혹하는 자라 귀신 들렸다 사마리아인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또 마태복음 19장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내가 무슨 선한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선을 묻는 도덕 선생님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윤리나 도덕 정도를 가르치는 그러한 정도의 분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어찌 보면 구원받은 우리들조차도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지 못하는 그러한 모습이 많이 있지는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수님을 단지 선한 선생님 윤리나 도덕, 철학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그래서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건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인 것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예수님에 대해서 매일매일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그 일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은 참으로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성경은 계속 하나님을 알라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쉬운성경 Ver :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굳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새번역(NKSV) Ver :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꼐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의미상으로는 다 똑같은 의미입니다. 시작할 때 확실한 것 내 믿음의 시작 같은 의미거든요.
왜 같은 의미냐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이나 우리가 처음 가진 굳은 믿음, 가져던 확신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거듭남으로 해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 다시 새롭게 시작이 되어졌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 사람이다 새 것이다. 새 생명이 너희에게 있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 보시기에 새로운 삶이 시작된 사람들입니다.
진정으로 사람다운 삶이 시작이 되어진 것이죠. 구원받아야지만 사람다운 삶이 시작이 되어집니다.
그 사람다운 삶 즉 하나님의 아들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 그 시작을 누가 하게 해 주셨느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히브리서 12장에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요 여기서 믿음의 주라고 했을 때 그 주를 원어에는 시작하는 자 시작하는 자 시작자 그죠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케 하신다. 끝내시는 분 완성하시는 분 이렇게 표현돼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 믿음을 시작하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그래서 이 내가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삶을 살게 되어졌습니다.
시작하게 되어졌잖아요. 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누구시냐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이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이 결국 예수님이잖아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렇죠. 예수님을 끝까지 경거히 잡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
예수님을 끝까지 경거히 붙잡으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뜻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을 했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을 하다가 중간에 예수님을 놓치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치 못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죠. 그래서 끝까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쫓을 것이니라 다른 번역에는 끝까지 쫓을 것이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끝까지. 그래서 바울 사도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끝까지 지킨 거잖아요. 죽음으로 지켰지 않습니까?
우리 교사로서 우리가 시작할 때 잡았던 예수님 지금도 우리가 잘 잡고 있는지 확인해봐야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주님을 쫓아가는 삶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주님을 쫓아가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그러한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안타까운 사람들이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래서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만이 예수님만이 확실하고 예수님만이 내 모든 것의 시작이고 예수님만이 내 존재의 시작이고 내 모든 근본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가 더욱더 분명하게 깨달아 가셔야만 돼요.
여러분들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은 결국은 다 지나가고 없어집니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니이다
세상에 완전한 것, 사람들이 말하는 완전하다라고 하는 것 다 끝이 있다.
한계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 실제로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계속 발전을 거듭하잖아요.
그 발전을 거듭한다는 이야기는 어제 것것이 오늘 어제 것보다 오늘이 더 발전했잖아요.
그 내용은 어제 것이 불완전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한 세계를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들이 또 발전을 도모하고 있잖아요.
왜 오늘 자체가 역시 불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계속 불완전의 연속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썩어질 씨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래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영혼을 지옥에서부터 건질 수가 있어요.
세상에 많은 말들이 있잖아요. 얼마나 많은 학자들의 말이 있고 철학자들의 말이 있고 사상가들의 말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모든 말들은 다 썩어질 씨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그 많은 사람들의 말을 다 합쳐서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 못 지키십니다.
근데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구원하시잖아요.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지 않습니까?
생명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확실하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죠.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오셨어요.
말씀대로 예언된 대로 탄생하셨고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말씀대로 부활하셨고 말씀대로 승천하셨고 그리고 말씀대로 오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말씀하고 반드시 연결이 되어져 있어요.
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잖아요.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잖아요.
그 능력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육신이 돼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그래서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예수님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일점 일획이 떨어지는 것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더 쉬우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의 1.1획이 떨어지는 보다. 근데 율법의 1.1획 이 모든 획을 이루시는 것이 말씀이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잖아요.
그러니 예수님만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은 우리가 죄사함을 언급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 확실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의 삶이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되어졌어요.
○ 끝까지 견고히 잡는 방법 1.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처음으로 우리가 세상에서도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초심 처음처럼 처음처럼 어디서 많이 듣던 것 같은데 성경에서도 처음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네 처음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 처음을 시작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예수님이 내 생각 내 삶의 뒤로 가시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요.
종종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2장 3장이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잖아요.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주님 앞에 한 일이 많아요.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에베소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섬기는 삶이 하루 이틀에 딱 끝난다라면 우리는 그 하루 이틀 그 시간 동안에 온전히 내 마음과 생각과 목숨을 다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어요.
근데 주님이 내가 구원받은 이후 1년 2년,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이렇게 지나가고 있잖아요.
그 긴 세월을 동일한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 삶 가운데서 예수님이 뒤로 가시는 경우가 종종 나타날 수 있어요.
이 에베소교회가 그랬잖아요. 주님이 에베소교회가 주님 앞에 한 것을 인정하고 있잖아요.
내가 니가 행한 모든 것들을 내가 안다. 너 많은 것 했다.
에베소 교회도 주님한테 그랬을 거예요.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많은 것을 했습니다.
많은 수고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가 참고 견디고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고 정말 많은 거 했습니다.
많은 거 했습니다. 근데 주님이 하나 책망하셨잖아요.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너 처음 시작할 때, 니가 처음 시작할 때 니 시작을 처음 시작하게 하신 분이 누군지 너 그거 잊어버렸지 않느냐?
그죠? 에베소 교회를 책망한 것이 뭐예요? 그 처음 사랑 예수님이시잖아요.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 제가 이러저런저런 하고 많은 것 했습니다.
많은 것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그렇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우리가 교회학교에서 봉사를 하며 이것 저것 행사 많이 준비하고 행했습니다.
간혹가다 내가 했어 내가 이 행사 준비해서 잘 했어 달란트시장, 암송대회, 성경캠프 등
그럼 조금더 신앙이 더 깊으신 분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형제님이, 자매님이 한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거 잖아요, 내가 했다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합당치 않습니까?
그리고 좀 더 어렵게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한것도 맞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 것이죠. 얼마전 수요말씀에서 이요한 목사님께서 갈릴리 수양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실때
목사님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많은 건물을 지으시고 수양관을 잘 만드셨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신 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긴 멀해요 우리 안에 성령님이 하신 것이지 난 한것 없어요~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셨습니다.
근데 주님이 우리에게 정말 묻고 싶은 것이 있지 않으실까요?
내가 너를 위해서 한 것은 무엇이 있다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묻지 않겠어요?
내가 너를 위해서 한 것 그거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죠.
우리는 주님이 나를 위해서 생각 하신 일은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리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저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많은 것 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을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물론 그게 나쁘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먼저 우선 순서는 주님이 나를 위해서 한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한 거 왜 그것이 중요하냐면 주님이 나를 위해서 생각한 것을 내가 늘 기억을 하고 있으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정말 힘 있게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러고도 내가 안 나타납니다. 그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주님에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다가 다 죽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왜요?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한 것을 다 잊어버렸어요.
광야에서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그 애굽을 멸망시키고 홍해를 갈라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고, 광야에서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를 주시고, 반석을 깨뜨려서 이 물을 주시고 정말 많은 은혜를 주셨어요.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근데 그들이 그것을 기억했습니까?
못했잖아요. 우리의 모습 가운데서는 그러한 일이 없겠는가 하는 것이에요.
주님 저 구원받고 이러저런 일 많이 했습니다. 주님은 그래 그거 한 것은 고마운데, 내가 너를 위해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거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니 그렇죠.
가장 큰 게 뭐예요? 방황하던 나를 내 방황을 끝내고 내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갖게 해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시잖아요. 그 예수님이 내게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어떤 희생을 하셨어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면서 돌아가셨어요.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을 생각한다라면 내가 주님 앞에 저 이런 일 했습니다.
저런 일 했습니다.
에베소교회처럼 많은 일을 하고 수고하고 인내하고 용납하지 않고 거짓된 걸 드러내고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래 잘했다. 그런데 내가 너를 위해서 한 것은 너 지금 생각하고 있니 너희 처음 사랑은 어떻게 했니?
이거 물어보시는 거잖아요.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래 너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시작하게 하신 참고 견디고 인내하고 거짓된 걸 드러내고 수고하고 용납하지 않고 너한테는 원래 이게 없었잖아.
그런데 이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해준 분이 누구신지 그거는 생각해보지 않니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원래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내 물질을 희생하거나 그러한 마음은 내게 원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잖아요. 원래 내게 없는 마음이었지 않습니까?
그 일을 하신 분이 누구세요? 주님이십니다.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동참할 수 있는 마음 나는 다른 사람하고 원래 어울리기 싫은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내가 함께 어울리는 그러한 마음을 주신 분이 누구시냐 하는 것이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것저것 했다라고 말씀을 주님께 드리는 것보다 주님이 내게 이러한 일을 하셨군요.
내게 없는 마음을 주님이 내게 주셨습니다. 정말 나는 인색한 사람인데 내가 베풀 줄 아는 마음을 주셨고 나는 참을성이 없는데 참을 수 있는 마음을 주셨고 희생할 마음이 없는데 희생할 마음을 주셨고 그 일을 하신 분이 누구시냐 하는 것이죠.
주님은 정말 내게 많은 일을 하셨잖아요.
여러분들 우리가 구원받고 지금 이와 같은 자리에 이렇게 있기까지 주님이 내게 정말 많은 일을 하셨거든요.
근데 그 일을 얼마큼 우리가 생각하고 계셔요. 그 일보다는 주님 저 이런 일 했어요.
지난달에 이것도 했고요. 지난달에 저것도 했고요.
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이런 일도 하고 이렇게 참기도 하고 많은 거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걸 하는 것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 이거 생각하시는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렇죠 정말 주님이 내게 많은 것 행하셨어요. 근데 우리는 그것은 잊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 모습이 에베소교회의 모습이에요. 주님이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한 거예요.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 이 처음 사랑의 실체가 누구세요?
예수님이잖아요.
여러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새로운 삶이 시작을 했는데 그 예수님을 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예수님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이것저것 많은 걸 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 없어요
이 에베소 교회가 다른 교회 일곱 교회들보다 정말 한 곳이 많아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책망했습니다.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너를 새롭게 시작한 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니 삶에서 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버렸다라는 의미가 다른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뒤에 있다라는 뜻이에요.
뒤에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은 순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예수님이 뒤로 가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요.
그리고 내가 나타나고 내가 한 일이 나타나고 주님 저 이런 일 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것을 한번 지금 생각해 보세요.
정말 많거든요. 그죠? 내 인생을 쭉 돌아다보면 사실 기도에 응답 안 하신 것 같았거든요.
그때 당시는 근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까 내가 그때 기도했던 것을 응답받고 살고 있잖아요.
지금 내가 여러분들 안 그러십니까? 그러시잖아요.
그때 당시는 이것 때문에 이러한 일 때문에 내가 정말 염려되고 걱정되고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그 일이 지나고 1년 5년 10년이 흘렀어요.
1년 5년 10년 흘러서 그때 당시의 모습을 보니까 어떻게 됐어요?
아무 문제없이 해결되고 지금 내가 편안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게 우연히 저절로 됐겠습니까? 그거 주님이 내게 행하신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 행하신 일에 대해서 나는 깊이 생각 안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그것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나는 주님 앞에서 주님 저 이런 일 했습니다.
저런 일 했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내가 너를 위해서 한 것이 있는데 그렇죠.
주님이 우리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구원받고 지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각자 다 다르잖아요.
그 시간을 한번 되짚어보세요. 주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하나하나의 일들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러면 주님을 위해서 더 힘있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야 할 것은 예수님 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우리의 선생님들도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며 신앙생활을 하기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