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0 주일오후예배: 마태복음 18:15-2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5문_권징,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키시는 수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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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이 교회로 모이게 하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주간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또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오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가장 강하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날마다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통해 교회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아가고자 합니다. 이 시간은 특별히 권징에 대해서 알아갈텐데, 부족한 저희의 지혜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이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8:15-20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15–20 NKRV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겠습니다. 85문입니다. 제가 질문하면 같이 답해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85문. 교회의 권징을 통해서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
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가진 자가 교리나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경우, 먼저 형제로서 거듭 권고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오류나 악행에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실을 교회 곧 치리회(治理會)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회의 권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으면, 성례에 참여함을 금하여 성도의 사귐 밖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제외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증명한다면, 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肢體)와 교회의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필 수 있게 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부족하고, 어쩌면 여러분보다 연약할 수도 있는 저를 세우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우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자, 우리 교회 학교 여러분. 앞에 한번 볼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 한 가지를 할게요. 만약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하세요? 따끔하게 “그러면 안돼!”라고 하며 혼내시죠. 그러면 부모님이 여러분을 혼내실 때 여러분의 기분이 어때요? 참 싫죠? 부모님이 혼내시지 않으면 좋겠고, 혼내실 때 무서운 느낌도 들어요. 그런데 여러분, 부모님은 여러분이 싫어서 혼내실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 여러분도 잘 알고 있죠? 오히려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잘못했을 때 혼내시는 거에요. 여러분이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바른 모습으로 살길 원하시기 때문에 혼내시는 거에요. 거짓말 했을 때 혼내시고, 남의 물건 도둑질했을 때 혼내시고, 다른 사람과 싸울 때 혼내세요. 이런 모든 것들이 바른 모습이 아니라 잘못된 모습이기 때문에 혼내시는 거에요. 자,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우리에게 벌을 주실 때가 있어요. 어떨 떄 벌을 주실까요? 바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따끔하게 혼내시고 벌을 주기도 하세요. 교회를 죄로부터 지키시기 위해서 말이에요. 오늘 이 이야기를 할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잘 들어보세요. 알겠죠?
우리는 계속해서 교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종교개혁기념으로 종교개혁에서의 교회의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그 전 시간에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키시는 수단에 대한 두 번째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권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권징, 쉬운 말로 벌이라고 하면 무슨 느낌이나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일반적으로 권징 또는 벌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굉장히 강합니다. 우리가 벌을 받게 되면 결코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누가 혼나고 벌을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긍정적인 말,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어둡고 별로 좋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권징은 필수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르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을 교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소한 혼내지 않거나 더 나아가 벌을 주지 않는다면 악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습니다.
특히나 인권이 중요시된 이 시대에 상대방을 혼내거나 벌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굉장히 꺼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는 지나치게 과할 정도로 해서 이에 대한 반작용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권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부모님이나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계시는 선생님들이라면 더욱 잘 아실 겁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혼내거나 다그쳐야만 그 아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곳에서 권징이 필요한데, 교회에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 당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죄와 함께하실 수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권징은 교회에 더더욱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지키시기 위해 권징하십니다.
이렇게 권징을 통해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의 통일성과 정결을 지키신 하나님은 신약의 교회도 지키십니다. 특별히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치하시는데요. 왕은 자신의 백성들을 대적들로부터 지키는 존재입니다. 백성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힘쓰는 존재가 왕입니다. 그것을 그리스도께서는 권징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지키십니다. 고린도전서 14:40 에서는
고린도전서 14:40 NKRV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방종과 무질서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 권징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살펴볼텐데요. 크게 세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권징은 천국을 열고 닫는 것이라는 것. 둘째, 권징은 징벌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셋째, 권징은 그리스도가 중심이라는 것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권징은 천국을 열고 닫는 것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6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을 보시면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말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14절에서 사람들이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15절에서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어보시자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고백이 16절에 등장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에 그리스도께서는 18-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22:20-22 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22:20–22 NKRV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일차적으로 천국의 열쇠는 누구의 것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사야 말씀이 말하고 있는 다윗의 집의 열쇠를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독점적으로 천국을 열고 닫으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 다윗의 집을 이 땅에 임하게 하신 것이고,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이 베드로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소위 이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이것만 본다면 베드로라는 사람 자체에게 그리스도께서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어떤 영적인 열쇠를 주신 왕권을 주셨다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이것을 잘못 해석하여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 사도 중의 사도인 베드로의 사도직을 이어받은 자로서 교황 자체에게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왕권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베드로 무덤 위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베드로의 사도직을 로마 가톨릭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러한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열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신 것이지, 왕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왕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도구를 주셨습니다.
이것의 근거가 있는데요. 우선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바로 천국 열쇠의 역할은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5장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시는데요. 10-11절을 보시면 신랑과의 혼인 잔치를 준비한 다섯 처녀들에게는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나머지 다섯 처녀는 급하게 준비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문이 닫히게 됩니다. 그러자 이 다섯 처녀가 하는 말이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입니다. 마태는 이를 통하여 “열다.”, “닫다.”, 그리고 “들어가다.”라는 것을 통해 “열쇠”라는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다시 말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도구로서의 열쇠이지 결코 왕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열쇠를 직접 받은 베드로도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10-11 입니다.
베드로후서 1:10–11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1절을 보시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도 “들어간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 자체에게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주신 것이라면 문제가 생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16장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뒤에 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반응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한글 번역이 많이 아쉬운데요. 사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제발 그 일이 안 미치게하겠습니다.”라며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헬라어 원어를 보면 “항변하다”가 “꾸짖다.”, “책망하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베드로가 꾸짖었다는 뜻입니다. 아주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23절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아”라고 하십니다. 바로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로 막으려는 사탄이 베드로의 배후에 있음을 보시고 베드로를 향해 꾸짖으십니다. 따라서 만일 베드로 자체에게 천국 열쇠라는 왕권이 주어졌다면 지금 천국이 베드로의 배후에 있는 사탄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이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왕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지만, 베드로는 이 22절을 통해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질문은 천국 열쇠를 어떻게 가질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수행할 때 천국 열쇠가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4:44 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24:44 NKRV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는 것은 성경 자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임을 깨달을 때 천국 열쇠를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 이 성경을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전파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할 때에만 천국 열쇠가 주어집니다.
이것을 교회는 어떻게 수행합니까? 바로 설교를 통해 수행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항상 거짓 교사가 생길 수 있고 죄로 인해 오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권징을 통해 수행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나 직분 자체에 천국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복음 설교와 그것을 수호하는 권징을 수행하는 직무에 천국 열쇠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0장 2항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직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는데, 그들은 이 열쇠로써 정죄하기도 하고 사죄할 수도 있으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말씀과 권징으로 천국을 닫고, 회개한 죄인에게는 필요에 따라 복음의 사역과, 권징의 해벌로 천국을 열어줄 권한을 가진다.”
이 신앙고백에서도 말하듯이 직분자들에게 천국 열쇠가 맡겨진 것은 직분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직분자 자체에게 그러한 권위가 주어졌다면 신앙고백에서는 그저 권위가 주어졌다고만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러나 직분자가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권징이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8장은 권징에 대한 말씀인데, 16장처럼 천국 열쇠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18장 18절을 보시면 16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이 똑같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천국을 열고 닫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에서 말하듯이 죄를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않는 자에게 권징은 천국 문이 닫히지만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자에게는 해벌을 통하여 천국 문을 열어줍니다.
따라서 권징을 받을 때 우리는 아주 무겁게 여겨야합니다. 교회가 권징을 내릴 때 이런 반응도 나올 수 있습니다. “에이, 그냥 다른 교회로 옮겨버리지 뭐.” 교회의 권징을 아주 가볍게 여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권징은 천국 문을 열고 닫는 것입니다.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권징을 직접적으로 받는 당사자도 이것을 무겁게 여겨야하지만 권징의 증인이 된 온 교회도 이것이 결코 개인의 죄가 아니라 온 교회가 짊어져야 할 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나도 권징을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통해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권징이 천국을 열고 닫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권징은 성도를 책망하고 벌을 주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범죄자를 벌할 때는 사람들은 항상 형량이나 어떤 벌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적으로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벌을 주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에는 항상 범죄에 대한 벌에 집중합니다. 그 사람이 범죄에서 돌이켜 교화를 하던 말던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게 찍어누르려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권징, 교회에서의 권징은 벌도 중요하지만, 그 벌을 시행하는 것의 목적이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에 있습니다.
2. 권징은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이다.
두 번째로 권징은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권징이 “벌”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권징하는 목적은 죄로 인해 그리스도의 품을 떠난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볼텐데요. 이번에는 18장의 맥락에서 이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앞의 본문인 12-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14절을 보시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꿔서 말하면 작은 자를 얻는 것,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 뒤에 작은 자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건져낼 것인지가 18장 전체의 맥락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것인지라는 문맥 안에서 오늘 본문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5절에 나오는 “네 형제”는 곧 잃어버린 양이 되며, 권징은 이 잃어버린 자들을 어떻게 권징하고 벌을 내리는 (발음 조심) 시벌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 본문을 볼 때 우리는 한 사람이 찾아가서 권고하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또 권고하고, 만일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출교시키라는 권징의 과정에 대한 말씀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의미도 있지만, 이 본문의 1차적인 의미는 “네 형제”, 다시 말해 너희 중에 있는 잃어버린 형제를 되찾기 위한 것으로서의 권징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악한 자에게 벌을 내려서 권징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권징과 교회의 권징이 다른 부분입니다.
16절에서 이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나는데요. 16절을 보시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라고 하는데, 보통 이것을 신명기와 연관시켜서 죄인이 저지른 죄에 대한 증인을 세우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신명기 19:15 입니다.
신명기 19:15 NKRV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그런데 이 신명기 말씀과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신명기는 “그 사건”, 즉 저지른 죄에 대한 것에 대한 확증을 위해 증인을 세우지만, 오늘 본문의 16절은 말마다 확증하게 하기 위해 세웁니다. 다시 말해 연약한 형제가 자신의 연약함과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한 확증입니다. “너도 증인이다. 너도 증인이니까 같이 가서 이 형제의 죄를 추궁하자”라는 식의 증인이 아니라 이 형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한 증인입니다. 따라서 형제를 위한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출교시켜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교회는 직접적으로 당회나 치리회를 바로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당회나 치리회를 말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직접적인 의미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입니다. 16절의 두 세 사람의 증인도 너희 중, 제자 중의 두 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7절의 교회는 16절에서 말하는 제자 중의 한 두 사람을 단순하게 확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교회 중에 아무나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중에, 그리고 제자들이 지금 몸 담고 있고 포함되어 있는 확장된 숫자로서의 교회 안에서 데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8절의 “너희가”도 교회의 모든 일반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입니다. 바로 이 본문의 전체적인 맥락은 이 제자들이 연약한 죄를 범한 자를 얻을 것인가에 대한 의미입니다.
따라서 18절은 열쇠권에 대한 내용으로 권징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잃어버린 자를 얻는 행위로서의 제자들의 직무 수행에 해당합니다. 더 나아가 권징은 두세 사람, 제자들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이름”, 즉 그리스도의 이름이 중심이 되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징이 “내 이름으로 시행되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권징을 시행할 때 18절에서 말하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할 때 따라서 권징은 지극히 작은 자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서의 권징이며, 이 권징의 중심은 죄인을 찾아가는 두 세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 위한 그리스도께서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공적으로 죄인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공적인 권징을 통해 죄를 용서하시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는 예수님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본문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으로 형제의 죄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시면서 만 달란트를 하나님으로부터 탕감받은 자가 그 은혜를 안다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기꺼이 용서해준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가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로 그 죄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바로 권징은 (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을 쓰겠습니다.) “너 잘못했지? 이 나쁜 놈!”으로 정죄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고 죄에서 돌이켜서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출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징의 단계에 있어서 근신, 수찬정지, 그리고 가장 엄벌인 출교가 있는데요. 이 출교는 1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는 것, 바로 믿지 않는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출교조차도 그리스도께서는 출교 당한 자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참으로 돌이키기로 약속하고 증명한다면 언제든지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 외에 이방 민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계속해서 유보하시면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 이스라엘 민족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오전예배 때 살펴본 라합을 보십시오. 그녀는 분명히 이방 민족이었고, 죄를 지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복음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기꺼이 그녀를 받아주셨습니다.
이처럼 비록 교회는 권징을 통해 이 사람을 불신자처럼 여기게 되었더라도, 동시에 그 죄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사람을 정죄하고 “이 나쁜 놈”이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심지어 출교 당한 자가 온유함보다 완악함을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그의 모습이 나아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권징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징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권징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권징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정결과 순수성을 위해 범죄한 자들을 징벌하셨습니다. 목숨을 빼앗기도 하셨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이방 민족의 포로로 끌려가면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났듯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아주 많이 주신 뒤에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으면 징벌하셨습니다. 심지어 이방 민족이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다 차지 않았다며 아모리 족속을 아직 징벌하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징벌하시기 위해 그들의 죄가 언제 차나 하며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어둡고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입니다. 만일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에 빠져 심판받기를 원하셨다면 절대로 죄를 지적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가게 내버려두셨을 겁니다. 그래서 칼빈은 권징을 이야기하면서 출교와 저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저주는 용서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고 사람을 정죄하여 영원한 파멸에 집어넣는 것이지만, 출교는 그 사람의 도덕적인 품행을 제지하고 책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교도 사람을 벌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미래에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정죄를 받을 것을 미리 경고하여 그를 돌이켜 다시 구원의 반열에 들어오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다시 그리스도의 품 안에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권징입니다.
다시 한번 이 표현을 쓰겠습니다. 여기 계신 부모님들이 아이를 혼내고 벌까지 주실 때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기 하시는거죠. 아니, 어쩌면 혼내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더 찢어지실 수도 있습니다. 내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은 이 아이가 잘못된 모습을 보일 때 이 아이를 혼내야만 그 모습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혼내고 싶지 않음에도 아이를 혼내야 합니다. 눈물을 꾹 참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혼냈다고 해서 이 아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때 “안돼, 안 받아줘”하며 이 아이를 안 받아주겠습니까? 아니죠. 이 아이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이 보일 때 부모님은 언제든지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꽉 껴안아주며 사랑과 은혜로 보듬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권징입니다.
더구나 권징이 교회에게 복된 것은 권징을 받고 용서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용서와 용납이 얼마나 큰지 경험하게 되며 교회도 동시에 이 사람을 공적으로 용서하면서 그리스도의 용서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용얼가 얼마나 큰지 경험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새순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권징을 통하여 이 교회를 지키십니다. 권징으로 자신의 백성인 이 교회를 죄로부터 정결할 수 있도록 지키십니다. 권징으로 천국을 열고 닫으십니다. 그러나 그 권징은 동시에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신 것에 대한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바로 죄인에게 다시 천국을 여시고 그 영혼을 지키시기 위해 권징하시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며 권징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주신 천국 열쇠인 이 권징 잘 행하고 잘 받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권징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지키시는 수단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권징은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시고 잃어버린 자를 되찾으시기 위해 권징을 행하십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권징을 나쁜 것으로 여기고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고 일깨우셔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고 권징을 시행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권징이 이러니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 특별히 권징을 행하는 당회가 이 권징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행할지 고민하며 모두가 다 이것을 사랑과 은혜로 받아들이는 보다 성숙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같이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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