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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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2: 7-15 상]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 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 이다 하고 15.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중략)
[인사말-도입]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아직 8주가 남았습니다. 우리 서로 앞뒤 좌우 바라보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잘했습니다.” 또 한번 더 이렇게 인사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힘냅시다”
[서론]
오늘 우리는 성경의 최대 스캔들 사건으로 들어가 볼 것입니다. 그리고 모티브의 시작과 결론을 통해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에 11장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의 남편을 은밀하게 차도살인의 방법으로 처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후 다윗은 최소 9개월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성에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사는데 가난한 사람은 가진것이라곤 작은 암양 새끼 한마리 뿐인데 부자에게 어떤 행인이 찾아오자 부자가 그 행인을 대접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의 유일한 암양 새끼를 잡아서 대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삼하12:5-6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당신 말대로 마땅히 죽을 자가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살펴볼 메시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항상 남 욕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 말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니는 사람 있지요? 볼때마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은데 차마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해보겠습니다. 머리속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며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사람을 보고하면 싸움 나니 설교자를 보고 하세요!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의 죄악된 행위를 보여주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오늘 다윗처럼 죄를 인정하고 회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화를 내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리겠습니까? 대답은 듣지 않겠습니다.^^
[본론]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 설교 강단에서 제일 다루지 않는 문제가 바로 “죄’라는 주제입니다. 이는 설교자부터 ‘죄’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중은 듣기 싫어하는데 설교자는 항상 첫번째 청중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설교에서 죄악을 다룬다고 해도 죄를 단지 어떤 연약한 것이고 약점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죄악에서 악을 죄에서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삼하11:27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오늘 보면 놀랍게도 다윗은 나단이 와서 비유를 말하기 전에는 자신의 죄를 직면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려 9개월동안을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동안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는 드렸을까요? 아마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정말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스스로를 감춥니다. 그러니 드러내어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다윗의 죄악을 참고 지켜보다가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십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비유를 통해 다윗의 죄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죄의 문제를 살펴야만 합니다. 롬5:20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는 말씀은 은혜 받기 위해 죄를 많이 짓자는 뜻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압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고 가늠하려면 우리가 그 사랑을 받기에 얼마나 자격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죄에서 구원받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이란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구원 스토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이라는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죄’를 우리가 너무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다루는데 있다고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 말합니다. 둘째는 죄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죄를 성경에서나 다루는 종교적인 개념으로 알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또한 단순한 약점이나 연약함, 문화적인 결핍, 낙관적인 절망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으로 극복 가능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시간이 흐르면 점차 성화되어 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님을 믿은 지 오래될수록 더욱 성화가 되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수가 오래될수록 더욱 종교적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지만 더욱 성화되어 간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국 죄의 성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주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결국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매우 무섭고 가혹하며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세력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스캔들의 주인공 다윗은 성경에 어떤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이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와 위인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과 왕건과 이순신을 합쳐 놓은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위인입니다.그는 선량하고 양심적이며 경건한 인품의 소유자로 고결하기까지 합니다. 사울에게 몇 번이나 죽을 위험에 처하면서도 사울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합니다. 사울이 죽고 그의 후손들에게 베푼 다윗의 태도는 관용 그 자체입니다. 시편의 2/3를 쓰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라는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다윗입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 삼하11-12장에서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입니다. 비겁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이며 천박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죄는 이렇게 한순간에 존경받는 인간을 나락을 끌고 들어갑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다윗의 죄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울의 죄(순종하지 않은 죄)보다 작을까요? 간통과 살인이 불순종보다 더 큰 죄입니까?그런데 왜 사울은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다윗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을까요? 롬9:15-16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에서와 야곱을 보십시오! 잘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근거와 동기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와 같은 죄인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다윗에게 일어난 스캔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을 스스로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이고, 악인지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 죄는 강한 세력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란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강한 힘으로 제압해서 인간의 본성조차 패배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입니다. 죄는 우리를 붙잡고 마음대로 조정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가 선택하는 것을 믿게 만드는 힘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책에서 자유케 된 것을 가지고 우리 육체안에 역사하는 죄가 사라진 것으로 오해합니다. 더 이상 죄와 싸우는 일이 없다고 간과합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사도 바울의 롬7: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정욕에 붙잡혀 지금까지 이루어 온 모든 좋은 평판을 벗어 던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왕이면 이정도 권한이 있지” 죄는 이런 생각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안일한 태도) 을 믿게 하는 힘, 세력입니다. 그리고 요압을 통해 살인도 저지릅니다. 다윗을 붙잡은 죄는 그 선택하는 것에 대해 대가가 무엇이든, 손실이 얼마나 크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주변에 살펴보면 죄의 세력때문에 당당하던 많은 사람들이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다혈질이라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지금도 주님의 은혜로 이 정도 사람 노릇하고 살지만 화가 날 때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쏟아내고 나중에 몹시 후회합니다. 화가 나는 순간은 그냥 모든것을 포기해 버려?이젠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속에서는 이러면 안 되잖아! 모든 것을 일시에 불태워 버릴 건가?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도 죄의 세력은 전혀 그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막 소리 지릅니다. 그때 쏟아내는 말들은 칼이 되고 회사 직원들과 친한 권사님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이렇듯 죄는 힘으로 강제하여 우리를 끌고 들어 가는 세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죄는 자신을 감추고 속입니다. 죄는 교묘하게 우리를 설득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를 비틀어 왜곡시키고 변질시킵니다.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안다고 해서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롬7: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선과악을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죄를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죄를 범하면 양심의 가책이 따라옵니다. 롬2: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인류의 최고의 변명이 뭔가요? “몰랐다’~, ‘최근에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죄에 대한 심판자는 다행히도 사람이 아닙니다. 만군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공의로우면서도 은혜가 풍성하신 심판자 입니다. 따라서 그분 앞에서 죄인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12장에서도 이 사실이 언급됩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과의 대화속에서 예화를 들어 설명하여 다윗의 공평무사한 평결을 지혜롭게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만약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예화를 통해 상황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도록 하지 않고 직접으로 죄를 지적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쉽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한 책임질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실인식을 왜곡시키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자신을 방어하고 변호하는데 매우 본능적이고 발 빠릅니다. 늘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선택하기보다 현재 상태를 지키려는 태도를 선택합니다. 설령 변화는 것이 진리이며 참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렇습니다. 반면에 죄의 성격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문제일때 드러나는 태도가 다릅니다. 쉽게 정죄합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마땅히 죽을 자라고 평결할 수 있던 이유이지요!
셋째: 죄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계시라고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는 말합니다.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을 거룩한 분노 혹은 진노하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기에 그렇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것들을 파괴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할 때, 직면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 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주시기 위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댓가 지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철저히 남김없이 속량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통해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선언했듯이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악용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생명으로 무엇을 하면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 죄를 이기는 능력의 삶, 기쁨과 평안의 삶, 이 세상 이후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 영원한 기쁨과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을 미워하고 이 세상 방식을 즐기며 이 세상 연락을 즐깁니다.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들에 매달려서 시간을 허비하고 은혜를 망각합니다.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려 볼까요? 우리가 죄인입니까? 아닙니까? 죽어 마땅한 자입니까?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십자가 없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론]
이제 결론입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 13절 입니다.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 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나단 선지자의 비유를 통해 다윗은 자복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탄식합니다. 죄를 짓고 9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지냈던 다윗의 마음은 편했을까요?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면 거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고백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다윗은 회개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바로 우리를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종들의 소식으로 탕자가 돌아온 것을 전해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 많은 종들보다 제일 먼저 자신의 아들을 맞이한 분이 탕부입니다. 그분이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가 옳다고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고 약점일 뿐이라고 연약한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우리를 죄의 자리로 유혹합니다. 인간의 최대 문제는 바로’죄’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유일한 해결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책을 없애시고,죄의 세력을 깨트리고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삶가운데 어떻게 죄와 싸워 나가야 할까요? 첫째는 죄의 세력에(사탄)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죄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에게 날마다 속입니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죄는 심각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그 어떤 훌륭한 사람도 죄의 세력에서 자신을 충분히 지킬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다윗을 통해 보여 줍니다.죄의 세력을 이길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말씀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구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종이었던 삶에서 구원하여, 자유케 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기억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이 죄인을 찾을 때, 내 안에 선한 것 이라고는 한 줌도 없다는 고백으로 손들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 죄인입니다. 또한 주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나의 존재와 행동은 여전히 의로운 것이 전혀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그 사람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말을 할 때 마땅히 죽을 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 그래서 오늘 이자리에 예배자로 나와 있는 우리를 부르는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이제 우리 함께 찬양 드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끌고 가는 세력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없으면 우리 안에 있는 은밀한 죄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 때 그때가 바로 은혜 받을 때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찬양 부르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안일함을 돌이키고 회개합니다. 주님 은혜 주셔서 나의 눈을 밝게 하시고 나의 죄악을 보고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한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제가 은혜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입니다. 감사하시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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