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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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기준으로 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바울은 지속적으로 깊이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가치로, 하나님의 정신으로 정말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인가, 듣고 배운 말씀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결단을 해야 하나, 결단을 한 뒤로 믿음의 시험대를 통과할 때 내가 결단한대로 행동할 수 있나 등등 이렇게 깊이 그리고 진솔하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진정성있게 답을 해가는 사람은 결국 영적으로 성장해갑니다.
성령께서 바울이 2차 전도여행때 아시아로 가려는 방향을 밤중에 환상을 통해서 유럽, 그리스 북부 마케도냐로 그 방향을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마케도냐 지역으로 건너가서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에 살던 사람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그냥 듣지 않고 깊이 생각하면서 받아들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여기서 상고했다는 말은 성경말씀이 맞나 안맞나 따져보고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지성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죠.
아무래도 그리스는 이미 철학이 있던 곳이었고,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만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지고 묻고 하는 식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맞나 안맞나 따진다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믿으려고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으면, 시험이 다가왔을 때 흔들림이 적습니다. 받아들이고 있는 바에 확신이 있으니 테스트를 통과할 때, 믿고 있던 바가 오히려 선명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도 읽고 듣고 배운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말씀을 기준으로 어떯게 살아가야 할지를 늘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믿고 있는바에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난 뒤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하셨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결국 아브라함은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정말 이삭을 바치려고 함으로 하나님께 반응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아브라함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발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할 것이냐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깊이 고민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 질문에 어떤 결론을 얻으셨습니까? 아니면, 성경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를 고민해보신일이 너무 먼 과거입니까?
15절에서 ‘주의하여’는 살펴보라라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 하나님께 반응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주의깊에 살펴보는 것을 계속 계속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응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어떻게 행동할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은 한때는 했었는데, 이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지속해나간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반응하는 일이 적어지고, 끊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계속 해나가면서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떻게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늘 깊이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왜 이렇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살아가야 하냐면 시대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16절의 때라는 단어는 날의 복수형태입니다. 날들이라는 말인데, 날이 여러날을 말하고 있어서 이 날들은 시대를 뜻합니다. 바울은 시대가 악하다고 봤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사는 눈에 보이는 세상 자체를 악하게 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가 악하다고 봤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볼 때 선하고 아름다움을 그 안에서 보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피조세계 곧 세상은 아름답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 가치관, 질서가 하나님과 정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에 시대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생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질서, 그로 이해 나타나는 결과물들이 악하기 때문에 이런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시대가 악하다는 것이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질서로 살아가는 시대가 있고, 그 시대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시대가 악하니 세월을 아껴야 할 때 어떤 방법으로 하냐면 지혜로운 자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 지혜로움은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16절에서 세월은 카이로스라고 하는 헬라어로 어느 특정한 때를 가르킵니다. 신약성경은 단순한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할 때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구분해서 표현하는데,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시는 때를 의미할 때는 카이로스라고 말을 합니다. 16절에서 세월은 우리 인생이 지나가는 그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그 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끼다라는 단어는 최고의 것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6절의 말씀을 그 뜻이 제대로 드러나도록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의 때를 최고의 것을 만들라 왜냐하면 시대가 악하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최고의 것으로 만들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언제 이루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때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이루시는 그 때 안에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고, 또 언제 이루실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하나님의 뜻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하나님을 위한 청원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청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일어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청원하며 기도하라고 하셨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살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수는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도록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최고의 결과물들을 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바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월을 아끼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최고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죠.
여기서 아끼다라는 단어도 현재 진행형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15절의 주의하라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계속 그렇게 하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바라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야 하냐면 시대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입니다. 그 사탄이 이끌어가는 질서는 악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때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때를 이루며 살아가는 목적을 흐지부지하게 하고, 하나님과 관련없는 삶을 추구해도 된다고 유혹하는 자입니다. 사탄이 끌고 가는 질서에 편입해서 살아가면 하나님의 때에 관심없어하고, 하나님의 뜻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도 않고, 자기가 살아가고 싶은데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인생의 목표, 목적이 내가 안정되고 내가 잘 살아가는데에만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어디에 두고 계신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선택하고 살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런 삶이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시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께 맞춘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악한 시대에서 하나님의 때가 최고의 것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들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뜻을 바라고, 그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결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17절에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가 성경을 왜 읽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성경에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자, 주의 뜻을 깊이 이해하려는 자, 주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행하기 위해 깊이 고민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18절말씀을 보면 술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15-17절과 이어서 이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는데 지혜로운 삶을 방해하는 삶을 선택하지 말라는 말씀이죠. 술취함에 결과는 무엇입니까? 방탕함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방탕한 삶은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삶이 방탕한 삶이죠. 바울은 방탕함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림언어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술취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하나님의 때에서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삶이 방탕한 삶인 것이죠.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싶어할 때,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드러나도록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이 주로 하시는 일이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기 때문에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경도 격언에 불과해지거나, 진리도 사실에 불과한 명제 정도로 그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고,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셔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이끌어가시고, 진리의 한 복판에 계신 예수님을 알게하십니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고 할 때 성령으로 가득채워진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물과 같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공간에 가득찰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각각 서로 독립적인 분이시면서 한 분이십니다. 이것을 두고 삼위일체라고 표현합니다. 세분의 위격이 하나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위격은 몇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있는 것인데, 이것을 다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은 위격이라는 그 중에서 인격에 대해서만 약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어로는 인격을 personal이라고 합니다. 인격은 지성, 감성, 의지 곧 지, 정, 의를 뜻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영이신 성령께서 각각의 인격적이라는 뜻은 각각 지, 정, 의를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서로 독립적으로 지성과 감성과 판단력이 있는 의지를 가지신 분이면서 한 분이라는 뜻이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도 지, 정, 의라는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성령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지성도 있으시고, 감정이 있으시고, 의지가 있으신 분입니다. 바울은 이런 인격적이신 성령으로 가득채워져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영향을 깊게 받으라는 뜻입니다.
인격적이신 성령은 물과 같이 물질적으로 어디에 가득차게 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 정, 의가 있는 분으로 가득채워진다는 것은, 그분의 영향을 깊이 받으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2:10-11 은 성령께서 지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지성을 가지고 계신 성령께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고 계시는 성령께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이 도와주신다는 것이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성령이 감정이 있으신 분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롬8:26 을 보면 성령께서 탄식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연약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기도할 때, 성령은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또한 성령이 시기하고 사모하는 분이라 말씀합니다. 약4:5“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성경은 성령이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런 감정을 가지고 인간인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감정을 가지고 계신 성령께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탄식하며 우리를 위해서 친히 하나님께 구하시는 도움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성령이 의지가 있으신 분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때 성령께서는 자신의 의지로 바울의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행 16:6-7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의지가 있으신 성령께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바울을 유럽쪽으로 이끄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이 인격적인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격적인 분으로 가득채워진다, 인격적인 분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지적인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고, 인간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기도해주시고, 성령께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은 막연하게 물이 가득찬 것처럼 성령에 잠겨있는 비인격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의를 가지고 계신 성령께 성령의 지적인 영향, 감정적인 영향, 의지적인 영향을 깊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곧 성령과 발걸음을 같이 한다는 것이고, 성령과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자들 안에 내주하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인격적인 성령과 동행하면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때로는 탄식으로 잘못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바꾸시고,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십시다.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판단력이 있으신 성령과 함께 보조를 맞춰 걸어가면, 우리가 걷는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질서가 악하니 이 시대가 악하다는 것을 알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간절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인격적이신 성령과 함께 동행해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낭비하며 내 소견에 옳은데로 살지 말고, 내주하시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진리의 한 복판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유일하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해가게 하시는 성령과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니, 성령과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기를 위해서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모든 땅에 정의가 회복되도록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사회적 약자층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특히 캐나다에 있는 도시원주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도시원주민 뿐만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난과 결핍, 마약과 여러 중독의 굴레에서 나올 수 있기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돕고 있는 선교지와 교회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아픔과 슬픔이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경제적인 문제로, 우울증으로, 자녀의 문제로, 가정의 문제 등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시간 그들을 위로해주시고,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개인의 기도제목.
기도
하나님, 이 시대가 악합니다. 아름답고 선한 모양 아래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질서들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하는 질서들이 있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질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악한 시대를 고쳐주옵소서. 공의와 정의로 이 시대를 바로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될 수 있도록, 이 시대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도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여 주셔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해져가기를 바라고 원하며 성령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성령과 보조를 맞추며,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저희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