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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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슈퍼히어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슈퍼히어로 영화, 영웅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뭐 수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아이언맨 등등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들, 즉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이 해결해나가는 영화들을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하는데요.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재난을 막아내는 장면이나 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구출해내는 멋있는 장면들을 보면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굉장히 동경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그런 영웅들을 보면 영웅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동경하고 “와 멋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성인이 돼서 그런 영화들을 보니까 다른 부분들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구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구할 수 조차도 없는 깊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안도의 표정을 짓는 것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영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안도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 안도감, 영화를 보면서 몰입을 하게 되면서 안도하게 되는 그 마음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저희들 또한 살면서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저희가 느끼던 감정들을 그 영화 속의 인물들에게 저희가 대입하기 때문에, 영웅들이 사람들을 구출했을 때 저희 또한 영화를 보면서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저희는 그런 영화들의 슈퍼히어로들 보다도, 영웅들도 흉내낼 수 없는 이를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저희가 죄로부터 구원받고, 육체에 묶여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소망하면서 산다는 것을 다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안도하고 있나요? 정말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고 있나요?
사람이 정말 큰 어려움이 닥치면 그렇게 되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히나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구약에 예수님을 예언하는 글들이 자주 등장하는 데요, 저희가 지금까지 성부 하나님의 계시, 창조, 하나님의 형상, 인간, 죄, 그리고 회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면, 이제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구약의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메시아를 바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주권 문제
세상의 주권 문제
저희가 가장 먼저 살펴봐야할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주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저희가 살펴보았을 때 이미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이 세상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저희가 기억해야하는데요.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지금도 이 세상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은 사람의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짐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모르게 된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이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교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꺾으실 교만입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의 흉내를 내어서 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해도 저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쭉 보시면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출애굽 하기 전, 애굽에 노예 생활하던 시절부터, 사사기 시절에도 그랬구요, 앗시리아, 바빌론, 바사, 로마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들과 제국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이 제국들의 지배는 겉으로 보기에는 질서가 형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도 질서를 Order라고 하는데, 이 Order는 명령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왕이 명령을 딱 내리면, 백성들이 알아서 척척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질서가 형성되어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그 안은 하나님의 질서, 즉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이루는 질서가 아니라 폭력과 압제의 질서이고 그것은 곧 혼돈입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보시면 애굽 왕은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 명령을 내리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은 살리는 질서를 세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 살리고 평화롭게하는 세상에서 살아야하는데, 애굽에서 시작해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다른 왕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으니까 백성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신명기적 사관?
신명기적 사관?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받은 것은 일종의 자업자득 아닌가? 하고 말이죠. 구약성경에 수도 없이 나오는 말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들이죠.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이렇게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복을 받고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역사적인 관점을 저희는 “신명기적 사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쭉 보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할 때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나라를 재건하고 복을 누렸다라는 구절들을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신명기적 사관을 어찌보면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신약시대로 잠깐 와서 바울만 봐도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복음을 전하는데 보면 계속해서 고난을 받고 쫓겨나고 두들겨맞고 감옥에 갇히고 있습니다. 이게 어딜 봐서 복을 누리는 사람이냐는 겁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박해했던 애굽의 바로왕과 앗수르 왕과 바벨론 왕이 보면 더 만사형통하게 사는 것 같아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합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돈을 어마무시하게 잘 벌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해서 막 남들에게 내 자신을 뽐내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은 의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명령과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질서를 따르는 바로 그 “의로움”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워낙 이 “하나님의 의”를 사랑해서 박해를 받을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 복이 있고 천국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의롭지 못한 세상
의롭지 못한 세상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지금 세상과 삶이 의롭지 못합니다. 남들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들 때문에 백성들은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예배해야하는데 백성을 압제하는 제국, 애굽과 바로왕은 허락하지 않고 자기를 섬기는 노역이나 하라고 명령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도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그릇을 우상 숭배하는 신전 보물창고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으로 받은 저주는,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 진짜 무서운 저주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저희들의 복인데,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마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짚도 안주고 벽돌도 안주겠다”라고 하는 상황이나 앗수르 왕이 북 이스라엘을 3년간 포위한 후에 함락시켜 포로로 끌고 가고,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왕족에게 굴욕을 주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저희에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후의 상황
포로로 끌려간 후의 상황
포로로 끌려가고 나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더욱더 하나님과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백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자기 제국의 문화와 우상숭배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앗수르 왕은 아주 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여러 고을에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자기들의 문화에 혼합되게 만드려고 했습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바벨론 왕은 몇몇 뛰어난 이스라엘 자손들을 불러서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며 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혼합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제국의 압제는 어찌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처럼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냥 무조건 하나님을 못 믿게 하는게 아니라 제국의 발전된 문화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도 세상이 이야기하는 복, 즉 승승장구하고 남들의 머리위에 서는 것을 배우고 “혼합”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혼합이 정말 위험하고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것은 아주 극심한 박해보다도 오히려 천천히 이방 문화에 스며들게 하는 혼합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바벨론 사람들은 심지어 “야 너네 찬송가가 참 좋다. 어디 우리한테도 한번 들려줘라”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섞이도록 유도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혹적인 제안이지만 이 제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만들고 의로운 사람,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의로움”을 잊게 만들어버립니다.
예언가들이 말하는 메시아
예언가들이 말하는 메시아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언가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흔히 저희가 신약성경에도 특히 마태복음에서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하면서 이러이러한 구절들이,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들이 가끔 놓치는 것은 대체 “어떤 메시아”를 예언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메시아”냐 라고 하는 것은 놓칠 때가 많습니다.
먼저 메시아 라고 하는 말의 뜻을 알아야할 텐데요. 메시아(מָשִׁיחַ)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하는 뜻의 히브리어고 이걸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χριστός)가 됩니다.
그럼 누구에게 기름을 붓느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요
사무엘상 16:13a (NKRV)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먼저 사울도 마찬가지지만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일이 있었구요,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아론의 자손들에게 기름을 부어서 제사장으로 세운 일이 있었고,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선지자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메시아, 그리스도 라고 할 때에는요 왕, 제사장, 선지자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엄밀히 따지면 다윗, 아론, 이사야가 다 메시아고 그리스도입니다. 다만 다윗과 아론과 이사야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만민을 구원할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죠.
그래서 어떤 메시아, 어떤 그리스도인지가 중요합니다. 본문말씀 5절을 다시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이 메시아는 먼저 의로운 메시아입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기름부은 자이고,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할 자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은 저희가 지금까지 봐온 불의한 제국의 불의한 왕이 아니라 의로운 나라를 세우고 지혜롭게 다스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할 의로운 왕이 도래할 것이다 라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하는 메시아입니다. 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의로운 왕이 첫번째입니다.
둘째로 6절에 보시면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메시아는 구원을 하고 평안하게 하는 메시아입니다. 어떤 구원이죠?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 당신이 우리의 의로움이십니다. 공의가 되십니다”라고 말하게끔 하는 구원입니다. 나라를 의롭게 바꾸고 백성들을 의롭게 바꾸는 구원의 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다른 예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공의롭고 구원을 베푸시는 메시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백성을 의롭게하는 구원은 하나님과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화해하게 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서 이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메시아가 도래하게 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다라는 뜻이죠.
그리고 제가 아까 메시아와 그리스도라는 말 뜻 자체는 기름 부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라 다윗과 이사야도 엄밀히 말하면 메시아와 그리스도라고 말씀드렸지만 이 구원하고 화해시키는 이 메시아는 그 근본이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윗도 이사야도 그 근본은 사람이지만 이 메시아는 다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 메시아만이 이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구세주가 되시고, 이 땅을 다스릴 의로운 주권자, 의로운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통해서 나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 메시아, 이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불의한 백성에서 의로운 백성으로, 또한 불의한 나라에서 의로운 나라로 구원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의로운 백성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의로운 백성이라는 말은 의로운 나라에서 사는 백성인 것이죠. 그렇기에 아직도 여전히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의 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흩어버리고 문화를 혼합시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서서 왕이 만든 상에 절하지 아니함으로 풀무불에 들어간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보통은 이 사건을 고난이 닥쳐옴에도 강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해석을 많이 하시는 데요, 저는 오히려 바로 그 믿음이 불의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 왕 조차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의를 행하게 만들게 된 것에 좀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그 믿음은 나만 의롭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나라조차도 의롭게 바꾸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신석구 목사
신석구 목사
삼일 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에 신석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감리교 목사님이셨는데 이 목사님이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신명기적 사관,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역사적인 인식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불의해서 나라가 기울어진 것이다 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서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는데, “참으로 나라를 구원하려면 예수를 믿어야겠다. 나라를 구원하려면 잃어버린 국민을 찾아야겠다. 나 하나 회개하면 잃어버린 국민 하나를 찾은 것이다. 내가 믿고 전도하여 한 사람이 회개하면 또 하나를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국민을 다 찾으면 나라는 자연스럽게 구원받을 것이다.” 의로운 백성이 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그 현장에서 의로운 나라를 세우시는 의로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라는 다짐으로 일어섰던 것입니다.
저희도 이와 같이 예언되었던 바로 그 메시아, 불의한 백성에서 의로운 백성으로 구원하시고 불의한 나라에서 의로운 나라로 바꾸시고 의로운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땅에 의로운 나라를 세워나가기에 힘써야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마치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처럼 남들 머리 위에 서서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국들은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끊으려고 세상의 다른 문화들과 저희의 믿음을 혼합하려고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복을 받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제국들은 돈과 권력과 명예가 복이라고 생각하고 저희에게 그것을 원하고 가지라고 속삭이지만, 진정으로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다니엘과 세 친구들 같이 우상숭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인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즉 복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언된 메시아이자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서 불의한 나라를 의로운 나라로 변화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막 혼잡하고 불의한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제대로 서있지 않아 보이는 중에 나 혼자만 의롭게 서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메시아이며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나라를 의로운 나라로 바꾸시고 의로운 왕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저희들은 또한, 바벨론 제국에 맞서서 오히려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만든 다니엘의 세 친구 같이, 애굽의 바로 왕에 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낸 모세와 같이, 불의한 나라에 맞서서 의로운 나라로 변화시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의로운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불의한 세상을 의로운 세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