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애씀
Notes
Transcript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수고하고 애를 썼습니다. 어떤 수고를 했나보니,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터키 지역들이나 지금 그리스의 지역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터키나 그리스에서는 고대 철학자들이 많이 나타난 곳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다녔던 곳들에서 고대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나왔다는 것은, 그 지역들은 철학적 사고를 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고, 철학적 사고를 하는 곳을 지나면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있었던 데살로니가도 마찬가지로 철학자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떠돌이 철학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들이 성공하는 삶, 구원, 영생, 올바른 삶, 행복한 삶 등과 같은 내용의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주며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하면서 수고하고 애를 쓰며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철학자들과는 달리 복음 전하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려는 떠돌이 철학자들과는 달리 바울은 스스로 돈을 벌면서, 일을 하고 생활비를 대면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살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너가 아닌 이상, 일 스케줄을 받은대로 자기의 다 시간을 맞춰야 하고, 일하고 난 다음 남는 시간에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노동 시간은 길었던 것 같습니다. 9절을 보면 밤낮으로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 전하는 일로 먹고 사는 것은 복음 전하는 자들, 곧 사도의 권리라고 했습니다. 고전9:14 새번역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풀타임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면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인 회중의 헌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죠.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다른 사도들은 교회에서 헌금을 받아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주께서 허락하신 특권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바울 자신은 그 권한을 안 쓰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고전9:15 새번역,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비량으로 즉 손수 일해서 생활비를 벌면서 전도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헌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담긴 그 정신을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갈 때 취할 태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복음 6:8–10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복음 선포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가능해지려면 동네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전대를 준비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능해집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복음전하는 자들을 서포트해줄 수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도 이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베다니에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집안이 한 예입니다. 이렇게 곳곳에 박혀 있던, 복음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야말로 예수의 복음 전파 사역의 중요한 후원자(support)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역하라고 하신 것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 선포자들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을 하게 된다면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데살로니가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의 복음 선포는 자칫하면 떠돌이 철학자들의 돈벌이 수단과 같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 전파를 그렇게 오해하게 된다면 바울 역시 떠돌이 철학자들과 같은 부류로 여겨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바울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고, 복음 전파에 큰 장애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매우 어렵게 되겠죠.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에 바울은 떠돌이 철학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복음은 결코 자신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며, 돈을 받고 전해 주는 지식 조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바울이 자비량의 원칙을 고수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헌금을 받지 않고 직접 일을 해서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복음의 은혜로움을 드러내야 했던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값없이 전달할 때에 복음이 지닌 은혜가 가장 효과적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아 보이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바울은 오히려 예수의 말씀의 정신을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 속에 온전히 이루어 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보면 몇개월 또는 몇년 동안 한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신화와 철학이라는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떠돌이 철학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면서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바울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가며, 본을 보여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간을 많이 들이고, 공을 들여가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진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진리를 따르기 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따라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도 맞으니 나도 맞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릅니다. 캐나다에서도 절감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L,G,B,T,Q,+를 틀렸다고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이라고 인정하라는 것이죠.
너도 맞고 나도 맞다라고 하는 세상에서 참된 진리를 따르자고 하는 논리가 설 위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전할 준비단계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들어야 하는 대상에게 먼저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합니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시대에서 참된 진리가 있다고 이야기조차 꺼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통해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 사람에게 신뢰를 얻으면 그제서야 중요한 이야기들을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포스트모던이라는 참된 진리를 전하기 어려운 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바울은 당시 여기저기서 지혜과 지식들이 난무하던 시대였고, 그런 철학적 사고를 하는 시대에서 참된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고전시대와 달리 현대의 시대는 다른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 자비량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듯이, 오늘 우리도 너도 맞고 나도 맞다고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하면 잘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방법들을 찾아내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일을 했던 바울처럼, 오늘 우리의 일도, 생계를 위해서만 하는 개념이 아니라, 복음 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로 일의 개념도 복음을 위해서 바뀌어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때 수고하고 애씀으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애씀이 복음을 전할 때 달 수 있는 멋진 타이들이 아니라, 한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할 수만 있다면 해야하는 나의 희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그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오늘 내가 부름받은 시대에서 나는 어떻게 전해야 할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저 사람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하셨던 것처럼, 나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복음을 전해야 겠다고 다짐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