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5 금요기도회: 사도행전 28: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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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이 금요기도회로 부르시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원래 완악한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희의 죄악을 뛰어넘으시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이 자리에 가운데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경험하는 이 기도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힘쓰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28:17-3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8:17–31 NKRV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간 또 달리신다고 고생 많으셨고, 피곤하실텐데도 이렇게 나와 함께 기도하게 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우리를 불러 기도라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먼저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 28장의 말씀으로 사도행전을 마무리하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이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을 썼는데요. 이 사도행전은 오늘 본문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계속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마치면서도 끝까지 복음 전파에 대한 내용을 기록했는데요. 바로 사도들이 전한 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 이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이 본문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과 오늘 우리에게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로 주고 계시는지 살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사흘 후, 즉 로마에 도착하고 사흘 후에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는데요. 그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아닌 유대인 지도자들을 먼저 부르는데요. 여기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때까지만 해도 복음은 항상 유대인들에게 먼저 선포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바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헬라인에게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고, 돌이킬 기회를 언제나 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자신은 유대인을 위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지금 누구 때문에 매여있고, 구속되어 있습니까? 바로 유대인들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유대인들이 이런 일을 행했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인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결코 꺼리지 않고 수행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바울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의 오해처럼 정치적 또는 외교적 목적이 아니라 복음 전파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무죄함을 17-19절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과거에 자신과 똑같은 처우를 받은 어떤 한 인물을 떠올리게 만드는데요. 바로 바울보다 먼저 무죄하였지만 고발 당하고 죽으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바울은 백성과 관습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아 무죄였으나 로마인들에게 넘겨졌고, 그래서 로마인들이 바울이 무죄라서 풀어줄 예정이었으나, 유대인들이 이것을 극구 반대하였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바울이 당한 처지가 과거에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백성과 관습, 심지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셨으나,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지셨고, 로마인들, 특별히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자신이 지금 예수님이 먼저 가신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 자신이 전하는 이 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과 동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바울은 자신에게 억울한 처사가 내려진 것이 유대인들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을 원망하고 책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울은 자신에게 유대인들이 나쁜 일을 행했으나 결코 이들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에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처럼 말합니다. 바울은 마땅히 유대인들이 자신에게 행한 것들에 대하여 억울하다고, 자신을 학대했다고 고발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자로 가이사에게 상소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러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이 유대인들도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기만을 바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26장에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26장 29절입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바울이 이 말을 하고 있는 대상은 분봉왕 아그립바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아그립바를 향하여 결박된 것 외에 자신과 같이 되기를, 즉 예수님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비록 아그립바가 바울을 고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자신과 같이 모든 사람, 심지어 자신을 고발한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들을 십자가에 매단 유대인들을 용서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자리에 함께 있던 죽은 스데반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발당했고, 억울한 상황이라는 것을 표출하여 유대인들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로마에 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20절에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은 자신이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소망”,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렇게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한 호기심과 의심이 섞인 말로 대답합니다. 21절입니다. “우리가 유대에서 너에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너에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들은 유대에서 바울에 관한 어떤 소식이 담긴 편지도 받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바울에 대하여 악담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하여 이 로마에까지 왔으나 바울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에 대하여 말해줘서 바울에 대한 이 고발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도록 하지도 않았습니다. 로마법에서는 고발자의 고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나 고발자가 누군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관해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이들은 22절에서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에 관한 한 가지 이야기는 들었다고 덧붙이는데요.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의 사상이 어떤지 듣고자 한 것은 어디서든지 이 바울의 사상에 유대인들이 반대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로 바울의 신학과 이 바울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바울의 말을 듣고자 날짜를 정하고 바울이 가택연금이 되어 있는 집에 많이 모이게 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구약 성경이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로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매여있는 몸인데, 오히려 그가 가르치고 유대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아주 아이러니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이 바울의 가르침을 들은 유대인들에게 나타나는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 복음을 믿는 부류였고, 하나는 믿지 않는 부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두 반응으로 갈라진 것에 대하여 바울은 구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는데요. 그 말씀은 바로 이사야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말씀을 떠올리면서 그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이사야의 말씀을 전하는데요. 26-27절입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줄까 함이라”
이 말씀은 이사야 9장 9-10절인데복음서 ,특별히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들어도 마음이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한 이사야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지만 거부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먼저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전해주셔서 그들에게 회개하여 돌아올 기회를 주셨지만 도무지 돌아오지 않기에 이 복음이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보내셨따는 것을 28절에서 말씀합니다. 바로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는 특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넓혀지게 된 겁니다. 제가 매번 말했지만, 이전에는 항상 구원을 받는 특혜는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안으로 들어와야만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은혜와 호의를 끊임없이 거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한 모습을 보이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베푸시기로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이 멀었고, 귀가 닫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는 죄성으로 인해 이 메시야가 직접 오셨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완악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도 듣기는 하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이처럼 이 이사야 말씀은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고 고발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인용함으로 바울은 복음을 믿지 못하는 자들을 책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절은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소망을 주는 구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파되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눈과 귀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게 된 자들은 그 눈과 귀를 하나님께서 열어주셨기 때문에 복음이 들리게 되었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사야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감사의 구절이 됩니다. 자신은 이 구절과 같이 자신의 죄로 인해 완악해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겉으로만 보면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보다 안 좋은 상황에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아야 하고, 가택연금이 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바울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이사야 말씀을 전하게 하심으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죄를 가지고 있다. 내가 너희를 책망한다. 그러나 너희를 책망하는 것은 너희를 심판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여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회개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의 이 완악함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죄를 고발하고 회개하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이 도저히 안 들으니까 그렇습니다. 도저히 안 들으니 이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겁니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 이방인들이 있는 것을 목격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완악함을 동시에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하셨으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오히려 완악한 마음을 가져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이제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로 보내신 이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 분노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고발로 인해 이런 처지에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이때에도 유대인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의 심장인 이 로마에서 가이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고 계시기에 바울을 묶고 구속할 순 있어도 결코 복음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막으려고 했어도 유대인들도 막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복음은 막으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까지 전파됩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누가가 어떻게 마무리하고 있습니까? 30-31절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라며 마무리합니다.
바로 바울이 전하는 이 복음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로마 제국의 심장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세상에서 복음이 별볼일 없어 보이고 약해보여도, 그리고 교회가 세상에 의하여 핍박 당하고 구속당할지라도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무력 시위나 폭력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그는 오직 복음만을 전파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복음은 결코 중지되거나 정체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막을 수 없습니다. 회개를 촉구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이 복음이 가로막히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강단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이 무엇입니까? 바로 어둠 속에 있던 복음의 빛을 하나님께서 다시 밝히신 일입니다. 시대 가운데서 심지어 교회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워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복음은 항상 전진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 그리스도의 힘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매여있고 구속되어있을지라도 복음을 전함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이 놀라운 복을 누리는 주님의 참된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꼐서는 복음을 계속해서 전진시키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완악한 유대인들에게까지 전파하셔서 회개를 촉구하게 하실 정도로 복음이 널리 퍼지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같이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완악한 유대인과 같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완악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가 되지 않기를 먼저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맡겨주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주신다는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은혜와 복을 누리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들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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