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 아닌 영으로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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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25–36 NKRV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서론
옷을 사다보면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늘도 드보라 전도사와 금비 청년과 함께 구제샵을 가서 같이 옷을 사게 되었습니다. 서로 옷을 막 찾아보면서 이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찾고 서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서로 고른 옷이 괜찮다 이러면서 고르고 있었는데, 드보라 전도사와 금비 청년이 한 옷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둘은 그 옷이 괜찮고 이쁘다며 보여주었지만 제 눈에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는 사람의 시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지만 제 옷을 산다면 그러한 스타일의 옷은 아마 사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옷 외에도 대화를 하다보면 같은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기준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을 배려하고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각와 기준이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기분 나쁘면 죽여도 된다.”와 같은 생각이 그럴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양한 생각과 기준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인정될 수 없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이들 중에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상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인물을 잡아 죽이고자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상이 바로 자신들의 앞에 있는 예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들에게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잡아죽이고 싶었던 사람이 대놓고 나타났는데, 왜 그를 가만히 두고 있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이 진짜 그리스도라 생각해 못 건드는 건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생각해보십시오. 예배에 늦어서 딱 들어왔는데 어떤 모르는 사람이 여기 강대상에 서서 막 설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의 설교를 다 듣고 있고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도 그 사람을 목사님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기 저 청년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라니! 그들에게 그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 요셉의 아들인 것을 너무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일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다보면 말씀을 잘 아시는 분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어?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고? 이상하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2:5–6을 보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출신을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모세가 이집트에 등장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도 모르던 미디안 땅에 숨어 있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은 우리가 아는 갈릴리에서 활동하다 왔으니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십니다. 요한복음 7:28-29
요한복음 7:28–29 NKRV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네가 내 육신의 고향과 가족, 출신을 안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모르는 영이신 하나님에게서 났고 보내졌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육신의 출신에 대해 긍정하십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출신이 있다는 것을 말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영적 출신, 기원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던 자들은 예수님의 출신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예수님의 진짜 출신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참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에 그들은 분노했지만 예수님을 차마 잡아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움직이셨고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때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놀라운 가르침과 지혜에 사람들은 감탄을 하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진짜 그리스도가 와도 예수님처럼 기적을 많이 이르키지 못할 것이다. 즉, 많은 기적을 일으킨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동요와 말들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많은 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사람들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기 위해 사람들을 보낸 것을 아셨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을 잡으러 온다고 빨리 도망가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동요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3-34
요한복음 7:33–34 NKRV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아직은 자신이 잡혀서 죽을 때가 아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은 영원히 이 땅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를 듣는 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실컷 자신의 출신을 영적으로 설명했는데도 돌아가는 곳을 육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이 유대땅을 떠나 헬라인들에게로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찾지 못하고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육적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곳과 돌아가실 곳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육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을 몰랐고 하나님을 몰랐으며 결국 예수님도 몰랐습니다. 즉,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영적인 눈이 닫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 요한복음만 따져 보아도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 4장의 사마리아 여인, 5장의 38년된 병자, 6장의 제자들, 오늘 7장의 유대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우리는 모두 영생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구원 받았다는 것이고, 신학적인 표현으로 성령님을 받은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을 받은 자들만이 예수님의 영적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 받지 않은 자들은 막 4:11-12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여러분이 수요예배 때 들은 에베소서 1장 9절에 나오는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비밀이라 말합니다. 성령받지 못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셨고, 무슨 말을 하셨고, 무슨 행동을 하셨으며, 어디로 가셨고, 어떤 일을 하실지를 하나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심판이라는 위대하고 놀라운 계획과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자들만이 그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놀라운 비밀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여기 모인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모두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임재하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토록 놀라운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살던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만 아직도 옛날처럼 육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실컷 좋은 세탁기를 사줬는데 아직도 손으로 일일히 빨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얼마나 손해보는 일입니까? 놀랍고 위대한 비밀을 볼 수 있는데 아직도 틀린 것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오늘 육이 아닌 영적으로 보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육으로 보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고 영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 다시, 육으로 보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고 영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말인지 구체적인 상황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자, 단이 대학을 못간 상황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것을 단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단이의 입장에서 대학을 못간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고, 남들이 노력해서 나가는 거 같을 때 자신은 제자리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거기에 학교를 안가고 노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심부름을 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모로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은 단이에게 손해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과 교회의 입장에선 일할 수 있는 교회의 일꾼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보다 하나님과 교회의 일을 배우고 습득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목사님과 드보라 전도사, 현우, 수아, 수빈이, 유안이까지 돌봐줄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와 사람들에게 유익인 상황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이 아닌 영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과 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이익이 되고, 내가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육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교회와 내 이웃들에게 이익이 되고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영의 방법입니다. 즉, 나를 희생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방법이요 영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과 시선으로 내 과거, 현재, 미래를 볼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비밀이 보이는 것입니다.
육의 시선으로는 하나님의 비밀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아직도 상처가 되고, 현재는 답답하며, 미래는 불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영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비밀이 보이게 됩니다. 과거는 감사가 되고, 현재는 명쾌하며, 미래는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와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결론 짓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시고 어디로 가시는 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 없는 자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시는지 어디로 가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의 눈이 닫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받은 자들, 구원 얻은 자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오시고 어디로 가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육의 눈으로 보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습관을 버리고 영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볼 때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훤히 보입니다.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명확하게 정리됩니다.
사랑하는 축복교회 지체분들. 성령님께 의지하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으로 영적인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우리가 육은 이해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일하심을 발견하고 동참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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