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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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
벌써 11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곧 2024년 한 해가 저물게 됩니다. 이맘때쯤이면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래도 결국 다 지나갔네.”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쁜 순간에도, 힘겨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 해를 돌아보며, 세 가지 감사 제목을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본론]
첫째, 주님, 그래도 경건한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올 한해를 잠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5초 드리겠습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혹시 생각나는 큰 죄가 있으십니까?
혹시 남의 것을 빼앗거나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으십니까?
혹시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많이 한 적은 있으신가요?
곧바로 이런 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또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올한해 주님을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일까요?
예배 많이 빼먹지 않으셨죠?
그래도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려고 애쓰셨죠?
그러셨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경건하게 살았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큰 죄가 떠오르지 않는다고해서 죄가 없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종교적 행위를 한 것이 곧 경건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경건이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을 신뢰하고 그 분을 따르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청교도였던 토마스 왓슨은 경건을 이렇게 말합니다.
경건은 ‘영혼 전체에 퍼지는 거룩한 누룩이다’
경건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몇가지 선한 행위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경건이란 내면 깊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왓슨은 이빨이 하얕다고 흑인을 백인이라고 할수 없듯 몇가지 종교적 행위만으로는 경건하다고 말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이웃, 세상을 향한 마음와 태도를 모두 포함합니다.
성도여러분, 올 한해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더 알고자 애를 썼습니까?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죄와 싸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내가 미워하는 혹은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를 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어떤 분은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며 부단히 애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애를 썼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애씀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디모데후서 3장 10절입니다.
바울은 경건한 삶의 7가지 태도를 언급합니다.
더 많겠지만 완전수로 대표적인 것만 언급한 것입니다.
가르침, 행동, 의향, 믿음, 오래 참음, 사랑, 인내입니다.
여기서 의향이란 마음의 방향과 의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7가지 요소 가운데에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게 믿음인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대로 살려고 무진장 애를 쓴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바울의 이런 삶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는대로 살지 않고 믿는대로 산 사람입니다.
거짓 가르침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지키려고, 복음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세상의 박해를 오래참고, 인내하며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보여준 경건한 삶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을 어찌 바울에게 비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도 한해 동안 그래도 믿음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조금이나마 경건한 삶을 향해 나아갔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경건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감사하는 이유는 그러한 경건을 우리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한 발자국일지라도 경건을 향해 나아가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든 경건하게 살려고 할때 주어지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둘째, 주님 그래도 고난 속에서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SNS에 푹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tv프로그램을 보니 아내가 자기 생활을 매 순간마다 올립니다.
먹고, 자고, 입고, 여행가는 모든 것을 인스타에 올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이한테 강제로 포즈까지 취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도한 자기 과시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SNS에 빠져 자신의 일상을 포장하고, 자기 과시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동산은 어떻습니까?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수 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누구는 갭투자해서 1년도 안돼 수억을 벌었데.
그런 말 들으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은 현타옵니다.
그것뿐입니까?
흑백요리사 나온 식당들은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선다고 합니다.
그 음식을 한번 맛보려고 자신의 시간과 돈을 마음껏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기 사랑, 자기 만족에 몰두하는 시대의 단면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대를 마지막때, 말세라고 부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 절은 말세의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19가지 특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항목들의 시작을 보십시오.
모든 것들의 뿌리는 잘못된 자기 사랑입니다.
그 다음 항목들은 모두 이런 자기 사랑의 모습들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항목은 경건하게 보이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위선자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지만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도 가족도 이웃도 안중에 두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신처럼 섬기는 시대의 모습입니다.
곧 우리 시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언급하며 디모데가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반드시 사람들과 부딪히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갈 때, 세상의 기준과 충돌하는 순간들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고난은 바울처럼 돌에 맞거나 감옥에 갇히는 극심한 박해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도 신앙때문에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함과 손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은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고 여가를 즐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교회봉사에 시간을 씁니다.
때로는 서로 안 맞는 형제자매를 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루한 설교를 들으면서도 졸음을 참아야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어떻습니까?
불법과 편법이 만연한 관행 속에서 신앙 양심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웬수같은 상사를 위해 기도할때도 있습니다.
결혼상대를 선택할때에도 신앙을 기준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다른 게 다 갖춰진 상대방일지라도 신앙때문에 고민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교회에 노처녀들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알면서도 이익을 포기하거나 손해를 감수해야 할때도 있습니다.
나때문에 기독교가 욕먹을까봐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신앙때문에 불편함과 손해를 감당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난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불편함과 손해 그리고 양심의 갈등은 단순히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셨고, 견뎌낼 힘과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신앙 때문에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순간들이 있으십니까?
말씀이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순간들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신 증거입니다.
그 고난의 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주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에 감사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이처럼 경건하게 살며 고난을 겪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셋째, 주님, 그래도 성경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많은 메시지와 메신저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중 하나는 유튜브일 것입니다.
유튜브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즉각적으로 답해주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줍니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 필요한 것을 유튜브가 다 찾아주는 듯 합니다.
또한 챗GPT같은 기술은 무엇이든 물어보면 대답해줘서 우리 삶에 편리함을 더합니다.
때론 사람들은 인생의 답을 얻기 위해 유명 연사들을 찾기도 합니다.
김창옥, 김미경같은 연사들의 강연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줍니다.
세바시같은 프로그램도 우리 삶에 도움을 줍니다.
어떤 때는 내 설교보다 이런 강의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때도 있습니다.
훌륭한 책과 영화, 여행 등도 우리 삶에 유익한 도구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잘 사용하면 우리 삶에 큰 유익을 줍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수는 없습니다.
다시말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해줄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잠시 산소 호흡기를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일시적인 도움은 될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인격과 마음, 영혼까지 전인적으로 바꿀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무엇입니까?
단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영생,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전인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 영혼을 온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인간의 이런 온전함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줍니다.
17절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을 보면 ‘유능하게 하고’가 아니고 ‘온전하게 하며’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단지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잘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성숙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여 선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목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성경이 이런 역할을 할수 있을까요?
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긍정과 부정 두가지 방향의 역할이 있습니다.
먼저 부정입니다.
책망과 바르게 함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긍정입니다.
교훈과 의로 교육하는 것은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갈수 있는 힘을 줍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줍니다.
제가 헬스를 하고 있는데 헬스 트레이너가 해준 말이 있습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면 두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가지는 잘못된 자세를 고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력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제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경건하게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항과 불편함,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선한 일을 지속할수있는 힘과 지혜를 줍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얼마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씨름하셨습니까?
혹시 성경을 읽다가 졸아본적 있으십니까?
성경을 읽다가 눈물때문에 성경이 젖어본적 있으십니까?
아니면 성경 읽다가 졸아서 침흘린 흔적이 남아 있으십니까?
그 모든 애씀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경건하게 살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붙들고 순종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남아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온전함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세 가지 감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주님은 그래도 경건한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둘째, 주님은 그래도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겪는 고난 속에서 지켜주시고, 견뎌낼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셋째, 주님은 그래도 성경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 가지 감사를 마음에 새기며, 남은 한 해와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들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 절에서 말하듯,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세우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성경을 붙들고 씨름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쓴 흔적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 깊이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결단을 내려봅시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단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새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성경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온전하게 빚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추수감사절날,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말씀의 능력을 붙들고 새롭게 경건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는 나는교회, 함께걷는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