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ted in the Bible (말씀에 뿌리를 내리다) | 야고보서 #3 | 약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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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

1. 성경본문

야고보서 1:9–11 (NKRV)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2. 묵상 도움 메시지

오늘은 본문은 8절의 ‘두 마음’과도 연결되는 구절입니다. 부와 가난은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는 현실적 주제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가 전해지던 시기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체면을 챙기는 문화가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교회에서도 등장한 것입니다. 이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에도 교회 안에 대다수의 성도들은 풍족한 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당시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서 풍족한 부를 가진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풍족한 부를 가졌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낮은 형제와 부한 형제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낮은 형제가 높고, 부한 형제가 낮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낮은’, ‘낮아짐’으로 해석된 헬라어는 “겸손함, 비천함, 굴욕”으로도 해석됩니다. ‘자기의 높음’과 ‘자기의 낮아짐’도 “그 분 안에서 높아짐과 낮아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를 가지게 되면, 자신보다 조금 덜 가진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비판하면서도 부러워하는 숨겨진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신앙을 통해 부의 축복을 이루려는 모습이 있다면, 그 내면에 어떤 목적이 있을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부한 자를 무조건 비판하거나, 가난함을 추구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에 처해 있어도 비참해 하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우리의 신분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부한 자들은 평생토록 부를 인생의 전부로 두고 부에 모든 삶의 가치를 두고 살아갈 뻔했습니다. 그대로 살아갔더라면 비참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부에 모든 가치를 두지 않고, 진실로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것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적극적으로 자랑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물질’은 ‘삶’은 우리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실이고 실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하거나 유일한 자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부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부를 자랑하며 부의 적고 많음으로 차별을 만드는 모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비판하면서도 내가 조금더 가지면 똑같이 행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고 두 마음으로 살아가게 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손에 쥐려 하는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소멸한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구원을 통해 주신 그 분의 생명입니다. 그 분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부에 의해서 나의 존재가 결론지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비참한 존재가 아닙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손에 부여잡고 자랑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비참해져가는 상태입니다.
나의 환경이 나의 존재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환경도 타인의 존재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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