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한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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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주님의 뜻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주님의 뜻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감사가 넘치는가? 부모님이나 가족이 어려운 순간에 지원해 줄 때 감사함을 느낀다. 학업에 대한 격려나 마음이 힘들 때 위로를 받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게 된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도움을 받을 때 어려운 상황에서 친구들이 위로하거나 도와줄 때 친구 관계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친구들의 작은 배려나 이해가 큰 위로가 되곤 한다. 선생님이나 멘토로부터 지지와 조언을 받을 때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으며 도움을 주는 선생님이나 멘토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조언과 지지가 인생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힘을 주기 때문이다. 작은 배려나 선의를 받을 때 다른 사람이 작은 친절을 베풀 때, 예를 들어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필요한 순간에 도와줄 때, 그 따뜻한 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낄 때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행복들, 예를 들어 건강한 몸, 식사, 편안한 집 등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감사를 느낄만한 순간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기 쉽지 않다.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나, 힘든 상황에 도움을 받거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받을 때 감사가 자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감사는 이런 모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보다 높은 차원의 감사를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장하다는 다른 말로 ‘결정하다, 지배하다’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안에 왜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등장한다. 교회라고 부름받은 저와 여러분이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주님이 이곳에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 평강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냐면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한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몸으로 표현한 이야기는 마치 여러분이 몸이 있는데 손이 좋은 일이 생겼다고, 다른 신체부위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처럼 우리가 한 몸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나만 누리는 평강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평강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 안에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나,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일에 기준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한 몸인 우리가 서로 평강을 이룰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는 것, 지배하는 것,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따지고 잘잘못을 확인하는 것이 대부분의 문제 해결법이다. 그러면서 잘못한 부분에 있어서 분명하게 사과하고 인정하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다. 그러나 평강을 이루기 전에 해야하는 작업이 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미워하고 분노하면 우리 마음에 평강이 깨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잠도 오지 않을 뿐더러 마음에 그 사람에 대한 증오가 가득해지기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지옥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악한 줄 아는가? 예를 들어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사람의 삶을 모조리 찢어버려도 마음이 후련할 것 같은가? 아무리 찢어버려도 모자를 판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증오심과 분노는 가해자를 어떻게 하더라도 속이 풀리지 않는게 우리 인간이다. 모세 율법에서는 당한 만큼 그대로 갚으라고 가르친다. 또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이 선하지 않아서 아무리 당한만큼 갚아도 속이 후련하지 않다. 그래서 모세 율법도 피해를 당한 사람이 가해자에게 분노로 인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당한 만큼 갚는 원칙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베드로는 7번 용서하면 되냐고 물어봤을 때, 7번보다 더 큰 제안을 하셨다. 7x70은 무엇인가? 490번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숫자 7이 완전 숫자이기에 베드로는 7번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그의 말에 에수님은 다른 높은 차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딱 490번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내용은 이런 비유인 것이다. 어느 날 한 나라의 왕에게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불려왔다. 그 종은 왕에게 돈을 갚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아내와 자녀들과 가진 것을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당시 한 달란트가 노동자가 16년 동안 일을 해야 얻어지는 돈이다. 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3억원 한다. 만 달란트면 16만년을 일을 해야 하는 돈이다. 곱해보면 468억원을 내야하는 빚을 진 사람이었다. 종은 이렇게나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아내와 자녀들과 가진 것을 싹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종은 주인에게 무릎을 싹싹 빌며 엎드려 빌었다. “제발 기다려 주세요. 제가 꼭 모든 것을 갚겠습니다” 주인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서 풀어주며 빚을 없던 것으로 해 주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것인가? 그러나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났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급여로 대략 10만원으로 잡으면 100데나리온은 대략 1,000만원 정도의 값인 것이다.그는 동료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나에게 빌린 돈 어서 갚지 못해?!” 동료는 그 종의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엎드려 빌었다. “기다려 주게. 내가 모든 것을 갚겠네” 그러나 그 종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감옥에 집어 넣고 자기에게 빚진 것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했다. 이 장면을 본 주변에 동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아주 안쓰럽게 여겨서 주인에게 가서 일어난 일을 낱낱히 말씀드렸다. 그 소식을 들은 주인의 반응은 어땠겠는가? 그를 불러서 화를 내며 “이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빌기에 내가 네 모든 빚을 없던 것으로 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화가 난 주인은 자기에게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있게 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939년 여수에 애양원 교회에서 한센병 환자를 섬기던 손양원 목사님이 이야기가 아주 유명하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1948년 어느 날 반란군 세력이 자신의 두 아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놀라운 것은 그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양아들이 된 사람은 훗날 목사가 된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어느 교회 현수막에 이렇게 크게 적혀져 있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이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복수심을 참고 참다보면 언젠가 용수철처럼 어느 순간에 폭팔하게 되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휩싸이기 때문이다. 그 분노는 우리의 삶을 갉아먹으며 괴롭게 만들고 결국 지옥같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러한 지옥같은 삶을 끝맺음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이다. 그렇다. 그래서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이다. 왜 용서의 종교인가? 내가 당연하게 마땅히 받아야할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값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정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주셔서 영원한 죽음이라는 형벌인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같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저 이야기 속의 은혜를 모르는 종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로 인해 지옥같은 삶이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용서할 수 있는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을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주님은 그냥 맹목적으로 “그냥 용서해!”, “그냥 감사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무엇인가? 복음이다. 우리가 어쩌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누리지 못하고 있거나, 마음 속 깊이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풍성히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 사랑을 온전히 누릴 때 누군가에게도 그 사랑에 대해 가르칠 수 있고 기쁜 마음으로 전하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전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영혼의 고백은 하나님께 감사가 계속해서 나오게 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같으면 자신의 친아들을 한 명도 아닌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두 아들이 죽었을 때 손양원 목사님은 장례예배 때 이렇게 10가지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손양원 목사님이 양아들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격분한다. 목사님은 그가 처형을 당하려고 하는 것을 막아서며 끝까지 양아들로 삼으려고 했다. 그것을 가장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은 죽임당한 오빠들의 여동생이었던 손동희씨였다. 그녀는 당시 고등학생 소녀였다. 그래서 양아들로 받아들여서 집에 있는 모습을 보며 당신이 우리 오빠를 살려내던가, 자살로 사죄하라고 수많은 원망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과 오빠를 살해한 그가 진정으로 참회와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용서하고 오빠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손양원 목사님이 양아들로 받아들이며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서야 감사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드림인 여러분, 이전에 예수 믿기 싫어했던 원수같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을 참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또 그 사랑이 내 안에 있다고 고백한다면 원수 같은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살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릴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것이다. 주일에만 십자가를 생각하지 말고, 매일 모든 순간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를 생각하여 모든 순간을 감사하는 시간으로 가지십시오. 또 여러분의 일상 속에서 카페를 가든지, 공부를 하든지, 놀러갈 때 등 모든 순간마다 SNS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스토리도 날마다 올려보는 것도 어떤가? 우리 드림인 모두가 감사가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회복되어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날 줄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감사를 드리기 바란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고, 결정하고, 지배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