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신하를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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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수가성 여인
이적을 따라다니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문맥상 갈릴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호기심에 의해 이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야로서 예수님을 믿고자 접근한 것이 아니다. 1:12절에서 영접하는 자 와 대비되는 영접이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며 따라다닌다. 어릴 때는 마술쇼나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미래에 대해 예언하거나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받기 위해 능력이 있는 목사들을 쫒는다. 공통적으로 이들의 목적은 무언가를 보거나 얻기 위한 것이지 예수님을 믿으려고 나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도 좋은 직장, 대학, 화목한 가정, 성공적인 커리어, 부자가 되기 위해 복을 받으려고 교회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것들을 주기 위해 계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찾는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구약의 예언과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알았기 때문에 이적을 보지 않고도 믿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적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믿었다. 그들도 구약의 말씀들을 알고 있었가 때문에 말씀에 근간하여 믿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적을 요구했다. 뭔가 이적을 요구한다는 말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믿음은 객관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믿음의 내용이 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다 주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믿음은 객관적인 것이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믿음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 질 수가 없다. 믿음은 피상적이거나, 미신적인 것일 수 없다. 만일 내가 믿는 것이 나의 성공이나 나의 복을 채우기 위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미신적인 믿음이다. 이것을 종교라 한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은 자신의 특별함이었다. 자기는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는 차별된 거룩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이 자기만 사랑하고 선택 했다고 믿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당신의 영원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는 행위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그 분께 내 삶을 맡기는 행위다.
Assurance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밑에 서다', '기초'를 의미한다. 여러분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변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이며, 구체적이고 철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확고하게 세워진 무엇인가를 믿고 있습니다.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 우리는 죄에 대하여, 내 야망에 대하여, 내 뜻에 대하여, 내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거절해야 하는가? 왜 그것을 싸워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하늘로 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요50-52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 보아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마중 나온 하인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하인들에게 아이가 언제부터 좋아졌느냐고 묻자 “어제 오후 1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종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바라는 피상적인 믿음으로 시작하여 나님의 영광을 보게하시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성장시켜 나가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고통과 아츰을 주는 질병을 낫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베푸시는 그리스도를 얻기를 원하신다. 이 믿음으로 나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신하는 처음에 기적을 만드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이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단단하게 단려시키신다. 기적을 넘어서서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보고 믿는 단계로 변화되어야 한다. 기적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지만 그 분의 말씀은 능히 사람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1. 믿음이 우선순위어야 한다.
한국의 10대 아이들은 왜 대학을 가면 교회를 떠나는가? 그들은 왜 고등학생때까지 죽도록 공부하다가 대학가면 자기 뜻대로 살아가겠다고 하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내 뜻대로 온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강요 때문에 타의로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우리 영혼은 본질적으로 이 일들이 내게 고귀한 것인지 안다. 그리고 그 때 부터 그들은 잘못 인도한 부모의 손을 떠나며 요청을 거부한다.
그 다음 일어나는 일이 흥미롭다. 부모들은 인내하는 편을 택한다. 기도하면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우선순위가 없었던 신앙생활이 중심이 되기가 쉽지 않다. 이 우선순위에서 멀어지면 안된다.
2. 기적은 디딤돌이어야 한다.
기적은 객관적인 믿음으로 가는 디딤돌이어야 하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학금, 문제해결,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주시기도 하신다. 쳥생 그것을 쫒는 인생은 믿음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3. 마지막 세 번째로 기억할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쉽게 착각할 수 있는 부분 중에 하나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역사해주시길,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놓고 그 방법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한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왕의 신하는 본인이 생각한 방법으로 요청했죠.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 예수님께 집에 오셔서 고쳐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신하의 아이를 고쳐주셨고, 이 표적을 통해 신하와 신하의 집안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의 첫 번째는 언제나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표적을 체험하게 되면, 그 표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표적을 체험한 사람이나, 표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더욱 주님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계획이나 우리의 뜻에 맞춰서 무조건 역사해 주시는 분은 아니라는 점. 이러한 점들을 기억하시면서, 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