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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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스가랴 4장 10절입니다.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할렐루야~ 앞 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오늘은 스가스가랴 4장 10절 말씀을 통해
‘작은 일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을 설명드리면,
주전 586년에 유다를 집어삼킨 신바벨론이
50년도 못 되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고레스 왕은 예루살렘을
애굽 정복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주전 538년에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의 손에 들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토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냅니다.
이미 바벨론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누리던 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약 5만 명 정도만 1차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환하자마자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성전의 제단을 복구하고, 기초만 놓은 뒤
성전 재건 작업은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귀환한 사람들은
자기 삶을 먼저 재건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귀환한 사람과 바벨론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
땅의 소유권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70년 전 솔로몬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건설 중인 성전이 너무 보잘것 없다며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페르시아 관료들과 결탁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결국 성전 건축이 아예 중단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학개는 노련한 행동가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권면을,
스가랴는 환상을 통해 위로와 격려로 그들의 마음을 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8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5가지 환상은 구원을, 3가지 환상은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에 대한 5가지 환상 중에 마지막 환상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해방되어 돌아온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미 이룬 구원과 아직 남은 구원,
이미 시작된 성전 건축과
아직 완공되지 않은 성전 건축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짓다 만 성전은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더 온전한 회복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입니다.
포로 귀환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무조건적인 안전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7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군사력이 부족해서였습니까?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기 바빠서 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70년의 포로생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앞선 세대에게 요구했던 회개와 순종이 포로 귀환 공동체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언과 다릅니다.
우리가 보통 예언이라고 하면 어떤 의미로 생각합니까?
미리 예, 말씀 언.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다릅니다.
맡길 예, 말씀 언.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항상 조건이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지만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해서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회개하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에 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원수 나라인 니느웨가 회개하여 멸망을 당하지 않을까봐.
그곳에 하나님의 예언 전하기를 꺼려했던 것이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조건부 예언입니다.
미리 일어날 일을 말씀하는 것도 맞지만
본질적으로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말씀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붙는 조건부 때문에 그 말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 행하라는 거에요.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이 정결케 되어
다시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를 맺으면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그러면서 스가랴 7장 8~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너희 과거의 선조들이 이렇게 내 말을 듣기를 싫어하며
내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닫았다.
그래서 너희에게 이렇게 큰 재앙이 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고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피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 가운데 임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전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앞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닙니다.
예언서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이런 상황 속에서 특별히
‘작은 일의 날’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욤 크타노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욤'은 '날'을 의미하고, '크타노트'는 '작은 것들'을 뜻합니다.
단순히 '작은 일들의 날'이라고 번역되지만,
이 표현에는 더 깊은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마치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작은 시작이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지금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보면
참 많이 닮아있지 않나요?
우리 청년들의 삶이 참 많이 고단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채용 사이트부터 확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력직 우대'라는 문구뿐이죠.
스펙을 쌓으려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학자금 대출금은 매달 통장을 옥죕니다.
직장인 청년들의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월급은 빠듯합니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죠.
결혼은 언제 할 수 있을지...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제가 최근에 어떤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여자친구랑 헤어진지 1년 됐대요.
이제 결혼해야 될 나이가 되어서
최근까지도 선을 계속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을 보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10명 중 8명은 결혼하면 살 집은 있나요?
집을 마련할 능력이 없으면 결혼도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최근에 나온 트렌드 코리아 2025에 보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무해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무해력이란 무기력과 무해함이 합쳐진 말로
좋게 해석하면 차라리 아무것도 안하는게
남들에게 해 끼치지 않고 좋은거야.
그게 순수한거야. 이런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단순히 무기력한 상태를 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절망감을 표현합니다.
무기력은 내면에서 오는 좌절감이지만,
무해력은 거기에다가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도록
외부의 상황과 환경까지 옥죄어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청년들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스가랴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시작을 결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작은 시작을 통해 큰 일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다림줄을 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림줄이 뭘까요?
<스룹바벨이 다림줄을 들고 있는 그림>
다림줄은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아주 단순한 도구입니다.
끝에 추를 달아 벽이 수직으로 바로 서 있는지 확인하죠.
왜 하나님은 이 평범한 건축 도구를 언급하셨을까요?
여기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다림줄은 기준을 의미합니다.
건물이 바르게 서려면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죠.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라는 기준, 기도라는 기준,
교회 공동체라는 기준이 있어야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둘째로, 다림줄은 꾸준함을 상징합니다.
성전을 지을 때 모든 벽마다 다림줄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한 번만 대충 하면 건물 전체가 기울어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신앙도 매일매일의 꾸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셋째로, 다림줄은 겸손을 가르칩니다.
다림줄은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죠.
우리의 순종도 그렇습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됩니다.
스룹바벨의 손에 들린 다림줄...
그가 성전을 재건할 때 매일같이 사용했을 이 도구를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실함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11월 그린벨트 해지가 물거품 되었습니다.
둔촌성전의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께서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반드시 다른 길을 내셔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실 것이다.
이런 찬양의 가사가 있습니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나로 그 바다 위를 걷게 하시리.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홍해바다를 걷게 하신 하나님이
신약에서 베드로를 물 위로 걷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이 길이 막히면, 반대 길을 여시고,
사방이 막혀있으면 하늘을 여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걸까요?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전이 지어지면 모든 것이 다 지어지는 것입니까?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이 온전히 지어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의 중심이고,
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 공동체는
하나님께 온전하게 준비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바라볼 수 있는
건강한 영적 성전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성전이 무너져 있다면, 다시 지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스가랴가 허물어진 성전 벽돌을 다시 세우며 들이댔던 다림줄.
우리에게도 스가랴의 다림줄 같은 작은 시작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다림줄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각자의 영적 다림줄을 준비해야 합니다.
취업 준비생에게는
매일 드리는 짧은 기도가 다림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며 준비하게 해주세요."
직장인에게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는 성경 한 구절이 다림줄이 될 수 있죠.
"바쁜 하루 속에서도 말씀을 묵상하며 살게 해주세요."
대학생에게는
매일 아침 묵상하는 QT 노트가 다림줄이 될 수 있습니다.
"시험 기간에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게 해주세요."
작은 순종이 모여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갑니다.
마치 스룹바벨이 다림줄로
성전의 벽을 하나하나 바로 세워갔듯이,
우리도 작은 순종으로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대기업 공채 준비를 하던 청년 자매가 있었습니다.
학점도 좋고 스펙도 나쁘지 않았죠.
하지만 3년째 계속 떨어졌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하고 중소기업이라도 가라"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죠.
"목사님,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나님이 저를 외면하신 걸까요?"
그런데 이 자매가 작은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에 나오기로 한 거죠.
처음엔 너무 힘들었답니다.
전날 늦게까지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요.
"첫 주는 정말 힘들었어요. 졸리고, 피곤하고...
그래도 30분만이라도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자는 마음으로 나왔죠."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만난 집사님께서 취업 멘토링을 해주셨고,
면접 스터디도 함께하게 됐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죠."
6개월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대기업 합격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중견기업에 취업하게 됐죠.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오히려 더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 회사에서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더라고요.
급여도 생각보다 괜찮고요.
무엇보다 주일에 교회 올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하나님이 저를 위해 예비하신 자리구나 싶어요."
이 자매의 다림줄은 새벽기도였습니다.
작은 순종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바로 세워가셨죠.
또 다른 청년의 이야기 입니다.
청년부에서 찬양팀도 섬기고, 임원도 했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도 차서, 대예배만 드리던 청년이었는데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자금이 부족했어요.
이 형제는 창업 준비를 하면서 특별한 결심을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중고등부 찬양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기로 한 거죠. 사실 주변에서는 말렸습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봉사야?"
"창업 준비하기도 바쁠 텐데..."
"나중에 자리 잡고 하면 되지."
맞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제가 가진 시간과 재능의 작은 일부라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그게 제 다림줄이 될 것 같았거든요."
처음에는 단순히 중고등부 아이들 출석 체크만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게 됐죠. 어느 날은 한 학생이 물었답니다.
"선생님은 왜 창업하시려고 해요?"
"음... 돈을 벌려고?"
"그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이 질문이 형제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자신의 창업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단순히 성공이나 돈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중고등부 학부모님 중 한 분이 벤처 투자자셨던 거예요.
형제의 진정성 있는 봉사를 보셨고,
그의 사업 계획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죠.
그 형제의 고백입니다.
"처음부터 투자를 받으려고 봉사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인도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청년들 뿐 아니라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을 만나보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사례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종종 큰 것을 바라보며 조급해합니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안정되고, 빨리 자리 잡기를 원하죠.
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스가랴서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성전 재건이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해요.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제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적용해봅시다.
첫 번째는 직장과 일터의 영역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월급쟁이 신앙생활'에 대해 고민합니다.
과중한 업무, 빡빡한 일정, 부당한 지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한 형제는 매일 아침
출근 시간보다 10분 일찍 회사에 도착합니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하나님, 오늘 하루도 이 일터가 저의 선교지가 되게 해주세요."
작은 실천이지만, 이것이 그의 다림줄이 되었습니다.
동료들의 어려움에 더 민감해졌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죠.
야근이 많은 회사였지만,
그는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성경 어플로 말씀을 읽습니다.
한 절이라도 묵상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말씀이 떠올라 마음의 평안을 지킬 수 있었답니다.
두 번째는 관계의 영역입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관태기'라는 말을 쓴다고 하죠.
'관계'와 '권태기'가 합쳐진 말입니다.
인간관계에 지쳐서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상태를 의미해요.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습니다.
셀 모임이 부담스럽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제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죠.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한 자매는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다림줄을 시작했습니다.
셀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매주 한 사람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기로 한 거죠.
"이번 주 말씀 묵상하면서 자매님이 생각났어요.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해요."
처음에는 어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관계가 만들어진 거죠.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재정의 영역입니다.
청년들에게 있어 재정 문제는 정말 민감한 주제입니다.
학자금 대출, 전세 보증금, 생활비...
빠듯한 살림에 십일조는 엄두도 못 내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스가랴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성전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한 청년은 월급의 1%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1%가 점차 늘어서
3%, 5%, 그리고 나중에는 십일조까지 드리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재정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는 거에요.
그 청년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헌금을 결단하니까 자연스럽게 지출을 관리하게 되더라고요.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들었고, 계획적인 소비가 늘어났어요.
이게 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거예요."
그 청년에게 있어 재정의 다림줄은 하나님께 드리는 1%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작은 순종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상황은 어떠신가요?
취업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매일 아침 15분 일찍 일어나 말씀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직장에서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신가요?
점심시간 5분이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인간관계로 지치셨나요?
한 주에 한 사람에게라도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주세요.
재정적으로 어려우신가요?
할 수 있는 만큼, 작은 금액이라도 정직하게 드려보세요.
이런 작은 순종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바꿔갑니다.
마치 다림줄이 벽을 바로 세우듯이,
우리의 작은 순종이 우리의 삶을 바로 세워가는 거죠.
스가랴 4장 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의 작은 순종과 헌신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까요?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더 큰 힘', '더 많은 능력',
'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아보하'라는 말을 아시나요?
제가 여러분과 소통하려고 공부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아로하는 들어봤어도, 아보하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정말 평범해 보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것 없이, 그저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 속에서 우리가 들고 있는 다림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매일 아침 드리는 짧은 기도...
출근길에 읽는 성경 한 구절...
동료를 위한 작은 배려...
불평 대신 드리는 감사...
이런 것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바꿔갑니다.
위러브 설교를 보다가 이런 예화를 들었어요.
여러분, 세탁기를 들여다 본 적이 있으세요?
세탁기를 들여다보면, 돌고 돌고 계속 돕니다.
마치 매일 반복되는 제 삶을 보는 것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밥먹고,
출근해서 사역하고, 심방하고, 밥먹고,
집에와서 육아에 지친 아내 도와주고, 밥먹고, 자고.
주일에는 찬양하고, 설교하고, 밥먹고, 자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여러분도 설교만 안했지 저와 비슷하지 않나요?
매일 출근해서 상사한테 욕먹고, 뒷담하고, 밥먹고, 자고.
집에가서 엄마한테 욕먹고, 뒷담하고, 밥먹고, 자고.
주말에는 친구한테 욕먹고, 뒷담하고, 밥먹고.,자고.
사실 나는 찬란한 미래가 있는 사람인데,
나 진짜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비전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쪼그만 회사에 붙으려고 열심히 공부한게 아닌데...
현실은 방구석에 앉에서 티비나 보고 있고,
매일 자소서 쓰다가 회사 떨어지고,
한숨 쉬면서 발톱이나 깍고있고.
정말 별볼일 없는 내 삶을 바라보면서 자기 연민을 느낍니다.
그때 세탁기를 보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니 삶이 세탁기 같다고 했지?
근데 세탁기에는 목적이 하나 있잖아.
세탁기가 왜 돌아요? 깨끗하게 하려고.
새하얗게 하려고. 정결하게 하려고.
니 삶이 그냥 보면 의미 없이 돌고 도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세탁에는 정말로 중요한 목적이 있단다.
우리의 삶이 죄의 때에 찌들어 있으니까
그것을 깨끗하게 하려고 도는거에요.
오늘만 돌면 안돼. 충분하지 않아.
오늘 내일 모레 계속 돌아야돼요.
다윗의 삶도 그랬습니다.
다윗은 10대 소년일 때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름부음 받고 바로 왕이 되었나요?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렸다가
30살이 되어서야 왕이 됐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고 다시 양치기로 돌아갔어요.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서
양 밥 먹이고, 양 털 밀어주고, 양 발톱 깍아주고, 양 똥 닦아주고.
내가 왕이 될 사람인데. 이런거 나한테 시키지마.
이렇게 안했어요.
다윗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 일상의 반복, 그 세탁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들을 지키며
용사로 준비되어지고 있었고,
고독 속에서 하프를 치며 주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선지자로 준비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니까
하나님께서 세탁기에서 다윗을 꺼내죠.
그리고 왕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셨을거에요.
빨래 끝!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이런거에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니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큰 일을 맡기리라.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은,
하찮아 보이는 일상,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상은
사실 위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스가랴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놀라운 약속이 나옵니다.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말 방울에까지 성결하게 될 것이라.”
이것은 우리의 평범한 모든 일상의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거룩한 예배의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
직장, 관계, 재정 뿐 아니라
여러분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노트, 책상, 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의 작은 순종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다림줄...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거룩한 도구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신가요?
"나는 너무 부족해..."
"내가 가진 건 너무 작아..."
"이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다시 한 번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세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은 여러분의 작은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부족한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서툰 섬김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시작을 기뻐하십니다.
스룹바벨의 성전은 20년이 걸려 완성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한 돌 한 돌 20년간 쌓아올린 것입니다.
때로는 더디게 보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좌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더디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세요.
거창한 계획 말고, 대단한 결심 말고,
지금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그것이 여러분의 다림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시간 함께 찬양하며 봉헌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찬양의 가사를 고백할 때,
우리의 일상이 때로는 부족하고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순간이 주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고백을 가지고 결단하며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찬양 - 믿음과 삶>
기도제목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하소서
우리 청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실한 다림줄의 사역자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이룸 청년부가 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은혜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에게 귀한 예배를 허락하시고,
말씀으로 은혜를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작은 순종과 헌신을 기뻐 받아주시는 주님,
이시간 작은 정성을 모아 하나님께 예물을 올려 드리오니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다림줄을 들고 성전 재건을 시작했던 스룹바벨처럼
저희의 작은 헌신이 주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
믿음의 마중물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힘과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광고>
축도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의 작은 순종을 기뻐 바등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믿음의 다림줄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청년들의 일터와 가정과 삶 가운데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