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편(자세히 보고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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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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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6장에서 하나님이 하갈에게 하신 일들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 시피 아브람과 동침 후 아이가 생긴 하갈은 주인 사래를 무시합니다.
이 일로 인해 사래는 하갈을 학대 합니다.
사실 이 사건의 근본적 문제는 아브람과 사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 방법으로 자녀를 출산하여 대를 이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임신을 통해 주인의 자리를 넘봤던 하갈 또한 학대를 당하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갈에게 찾아가셔서 다시 아브람의 집에 들어가 순종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 이라 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왜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살펴 주셨습니까?
우리는 흔히 이스마엘의 이슬람의 시조 라고 합니다.
물론 에돔, 압몬 등등의 족속들도 들어가지만, 이슬람의 대표적인 시조를 들라고 하면 바로 이스마엘 입니다.
그에게 하신 예언대로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도 그를 치면서 대항하며 살아가는 인생과 민족이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하갈의 인생을 살피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세계의 역사와 민족이 바뀌어졌을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슬림들로 인한 전쟁과 복음의 핍박이 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이 부분이 감정적으로는 완전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지키십니다.
창세기 12장 2절 입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언약의 계승자, 하나님 나라의 민족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택한 아브람의 자손이기에
아무도 돌보지 않고, 고통과 고난 가운데 곤고한 하갈과 아이의 인생을 살피신 것입니다.
하갈의 이 스토리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한가지의 교훈은 언약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도 지켜 주시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언약의 수혜자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느냐 는 것입니다.
곤고함 중에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경험한 하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16장 13절 입니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나를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이 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라 불렀습니다.
고통과 고난 가운데,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속에서, 우리의 형편과 곤고함, 의심과 실패와 분노, 절망의 절규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엘 로이, 보고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오늘 말씀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우리는 눈을 들어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외면하지 않으시고 살펴보시고 지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시편 121편 1절과 2절 말씀 입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은 순례의 길을 걷는 자들의 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바라보며 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 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순례자들의 길은 험하고 외롭고 위험합니다.
언제 사나운 짐승이나 도적떼 들을 만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할 지 모릅니다.
광야나 사막을 지날 때 물이나 음식이 부족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 많은 고난과 위협 가운데 그들은 눈을 들어 산을 바라봅니다.
당시 고대근동에서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하나님의 영역 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은 거룩한 산이라 하여 시온산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기대를 품고 산을 향해 눈을 들었는데, 그들이 깨달은 것은 다름아닌
진짜 도움은 산 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순례자들이 바라보는 것은 산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 입니다.
우리 삶이 때로는 이해하지 못할 고난과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 갈 때가 있습니다.
원치않는 곤고한 상황 가운데, 죄와 허무로 인해 하나님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을 확신하며, 인내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인내 할 수 있도록 무엇을 놓고, 붙잡아야 할지를 깨닫는 지혜를 주십니다.
곤고한 삶 가운데 우리를 지켜 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는 지혜와
오직 그 분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두번째는 나의 삶에 동행자가 되어 주십니다.
지켜 보신다는 것은 방관이나 관찰 정도의 의미가 아닌 동행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동행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은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 가신다 는 뜻입니다.
시인은 3절과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눈을 들어 여호와를 바라보았더니 그들의 인생길에 함께 동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들을 끊임없이 지켜 보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특별히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라 고백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풍요 제의와 연관된 신은 잠을 자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신 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는 이유가 고대근동의 신들이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풍요 제의와 우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능자 이십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운 문제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고 흔드릴때 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깨닫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며 힘이 됩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가장 큰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동행자이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며 지키신다는 사실 입니다.
동행자 하나님께서 등장하셔서 5절에서 부터 8절까지 너를 지켜주겠다 는 말을 네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보호하심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수 많은 인생의 시련과 고난과 문제는 나의 힘과 능력과 인맥과 물질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소망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보고 듣고 계십니다.
저에게 하나님은 걸어가는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대원 입학과 선교라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신대원에 입학을 시켜 주셨습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시험을 쳐보면 잘했다 못했다 감이 옵니다.
신대원 합격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 곳에 밀어 넣으셨습니다.
대학원 2학년 때 사역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사역지의 길이 막히고, 또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미련없이 한국을 떠나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다시 연락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결혼을 결심하여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헤어졌던 그 1년의 시간이 서로에 대한 마음과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결심할 수 있었던 정말 필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서 사역지를 이동 할 때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들을 경험하였습니다.
내가 원했던 곳이 아니었고, 너무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경험하고, 또 단단해져가는 시간들임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야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 라는 하나님의 뜻 앞에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 무엇때문에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가지만, 하나님의 필요와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때로는 지혜가 부족하여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 상황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원망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간구하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나름의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낮의 해와 밤의 달은 24시간 보호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은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물임에도 고대근동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신들로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위협을 주는 재앙과 재해와 치명적인 고통들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에는 한계가 있고 버틸 수 있는 범위를 벗어 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모든 고난의 시간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과 걸음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알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하며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49장 15절 입니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를 완전하게 보호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환란과 고난 속에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에 오늘 이 시편의 고백을 통해 위로를 경험하며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에게로 향하여 주와 함께 기쁨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수 많은 위협과 고난과 문제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눈 앞에 건널 수 없는 홍해 앞에서 믿음으로 바다를 쳐 가르게 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며,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므로 우리의 출입과 영혼을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지만, 홀로 간절히 부르짖은 우리를 지금도 지켜 보고 계십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과 시선을 마주치며,
모든 선한 경주를 마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인내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우리 장전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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