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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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
요한복음 2:1-12
어떤 사람이 공식적인 자리에 취임하여 처음에 하는 일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으로 그 사람이 할 일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례요한이 처음으로 제자들을 모아서 가르치기 시작한다면 무엇부터 가르쳤을까요? 아마도 그는 금식하고 기도한느 일부터 가르쳤을 것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에게는 금욕적인 요소가 아주 강했습니다.
바리새인들 같으면 자기 제자들에게 무엇부터 보여 주었겠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손을 씻는 결례 의식부터 가르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례야말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더렵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야로 씻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무엇부터 보여 주셨습니까? 그것은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바리새인들이나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는 상살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서슴지 않고 제자들을 잔칫집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무슨 선생이 제자들에게 먹는 것부터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쾌락주의자 였던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 풍성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잔칫집은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거기에는 음식도 많고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풍성한 삶입니다. 기쁨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잔칫집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신 것이 함께 잔칫집에 가서 먹고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1–2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가나에서 벌어진 한 혼인 잔치에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그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보면 그 집이 마리아와 꽤 가까운 사람의 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그 혼인에 초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나의 잔치는 생각만큼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문제가 무엇인가요?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아지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를 일주일 가량 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잔치를 망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알려 준 것은 무슨 기적을 일으켜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지 지금까지 늘 집안의 어려움이 있으면 아들과 의논했고, 그 때마다 아들이 도와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식으로 도와 달라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마 이제 함께 다니는 제자들도 있으니까 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디서 포도주를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이 무슨 이상한 말씀입니까? 포도주가 없다고 하면,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든지 아니면 ‘그래요? 그럼 어느 집에 포도주가 있을 것 같은데 좀 빌려보죠.’ 말한다면 모를까 거절도 이런 거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어떻게 좀 도와 달라는 마리아의 요청을 예수님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요청을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번째는 일의 성격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지금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남든지 모자라든지 그것이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와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는 시기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때’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여기서의 때는 영광의 때로 곧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받으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들리심 등을 이루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살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을 모으셨습니다. 이제 그가 하실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전처럼 마리아의 아들로서 다른 집에 가서 포도주를 빌려오는 일은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 하나의 문제에 있어서도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십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사탄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틈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주리셨을 때 사탄이 시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로 하여금 일시적으로라도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싫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아버지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셨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능력 행하시기를 망설이고 계신 주님을 움직이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리아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였을 때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일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예수님의 성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지금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가 이 일을 행하실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는, 주님의 성품상 곤경에 처한 자기들을 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무엇이라고 지시했습니까?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직므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명령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믿음은,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명하시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 포도주가 거의 다 떨어졌고, 이것이 주님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 어려움은 닥쳐 있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빋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상관없는 일을 상관 있게 만듭니다. 믿음은 아직 도달하지 않은 때라도 도달하게 만듭니다. 혼인 잔치의 포도주가 모자라는 것이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왔을 때, 얼마든지 주님과 상관이 있는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믿음으로 주님께 가지고 나아왔을 때는, 이것은 주님의 일이 됩니다.
원래 가이사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도 가이사의 이름으로 호소하면 그것은 가이사의 일이 됩니다. 어려움을 주님께 끌고 와서 주님의 이름으로 호소했을 때, 그것은 주님의 일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기만 하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하여 주님께 완전히 맡길 수 있으십니까? 주님이 어떻게 처리하시든지 그대로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러면 그것은 주님과 상관 있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주님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마리아의 믿음은 위대한 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6-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6–8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예수님께서는 그 집에 있는 유대인들이 정결예식을 위한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유대인의 정결 예식은 유대인의 종교 의식입니다. 그들은 씻는 일을 중시하여 외출해서 돌아오거나 식사 전후에 부지런히 씻었는데, 이것은 위생적인 차원의 씻음이 아니라 의식적 불결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된다는 제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하나에서 두세 통씩 들어가는 물을 담아두는 큰 항아리들이 여러개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통은 약 40리터에 해당하므로 한 항아리에는 야 100리터 정도 물이 들어갔을 것으로 봅니다.그것은 유대인들의 헛된 의식과 복음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물을 채우고,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들이 주님이 명하신 그대로 했을 때 주님의 영광이 나타났씁니다. 그 손 씻는 물은 값진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창조자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자신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이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정결 예식으로 사용하는 돌항아리의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손씻는 그릇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의 겉만 씻을 뿐이지 속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직 겉만 번드르르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포도주는 어떻습니까? 이것은 사람을 실제로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충만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중단될 수 밖에 없는 이 기쁨을 영구적으로 지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돌항아리 속에 들어 있는 물은 어디까지나 물일 뿐입니다. 그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껍데기만 바꾸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의 속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여러분은 새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있는 하인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이 시키는 그대로 하나도 빼놓지 말고 그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바꾸어 놓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겉모습만 물로 씻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의 첫번째 능력은 결코 모든 사람이 다 알지 못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절-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9–10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그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은 그 놀라운 포도주를 맛보고도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포도주는 분별했지만 하나님의 표적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지금 일어난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신 포도주는 그들이 손발을 씻는 물로 만들어진 포도주였습니다. 아마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포도주를 마셨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술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포도주가 공급된 것으로 만족하면서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한 하인들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예수님의 이 일에 직접 사용되어 동참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심리까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나중에 나쁜 포도주를 낸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알마나 크신 분이 자기들 가운데 서 계시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님과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떠들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주님과 상관없는 잔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겸손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슨 일을 하셔도 사람들을 불러 놓고 선전하시면서 일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신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 그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기 위하여 기쁨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 포도주를 마셨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자신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를 좋아하십니다. 주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긴 무리에게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아주 소수의 무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님이 되셨으며 그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물로 된 포도주 하면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면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리아가 했던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주님이 신실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포도주만 맛보고 돌아가지 마세요. 마리아가 한 것을 보고 주님이 하신 것을 봐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까?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는 한 풍성한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돌항아리에 있는 물처럼 있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바꾸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지로가 성품을 바꿔야 합니다. 색깔도, 맛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주님께 우리의 삶이 주님과 상관 있는 일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주님과 전혀 무관했던 우리의 생각과 삶에 주님의 영광아 나타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호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약간 위로해 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중심은 불신자 그대로인데, 겉만 기독교의 페인트를 칠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손씻는 항아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런 외적인 행위가 아니고 하인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고, 그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주님은 아주 작은 공동체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막 주님을 알았고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주님을 따르는 이 작은 무리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잔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포도주만 마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포도주만 마시고 만족해했습니다. 잔치가 엉망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잘된 것으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하인들의 감동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신성을 경험한 순간 이미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시며 이분이 참 경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더욱 더 분명히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만났을 때 이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의 두려움은 큰 확신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겼다는 뜻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겼듯이, 우리는 주님께 우리 전부를 맡기고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두려워합니다. ‘혹시 무엇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너무 늦기 전에 내 방법대로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 주님이 과연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실까?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를 이 곳에 모으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깊은 문제를 바로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포도주가 없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주님은 더 근본적인 난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작은 것으로 거절당했을 때 실망하지 마세요. 주님은 우리가 더욱 더 바른 자세로 나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믿음을 가진 자만이, 주님의 영광이 지금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포도주가 맛있었다고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믿음을 가진 자들은 자기들이 체험한 주님의 영광에 대하여 말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물이 포도주가 되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기쁨이요, 새로운 삶입니다.
결단찬양 :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