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5 새벽기도회: 사도행전 2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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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송하시겠습니다. 217장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히 기도할 수 없는 저희임에도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저희가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세상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저희의 모든 간구와 소원들을 아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요.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저희의 마음이 되게 하셔서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천국이 되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그 시간이 되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28:11-16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우리의 힘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으로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 28장 말씀으로 복음을 위해 일평생 힘썼던 바울의 여정이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여정의 끝은 바로 로마인데요. 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정은 우연과 인간들의 모습만을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여정 속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계셨고, 이 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뒤에 함께 이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로마로 가던 중에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멜리데에 바울이 간 것은 폭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간 것처럼 보였는데요.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멜리데로 보내셔서 이 멜리데 섬에 있는 원주민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이 바울을 멜리데로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멜리데로 간 바울은 3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3개월 동안 이 멜리데 원주민들과 복음 안에서 교제한 후에 이제 그의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로마로 향합니다.
로마로 가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배에 올라타는데요. 누가는 독특하게 이 배의 특징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11절을 보시면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수구로라”라고 합니다. 왜 누가는 쓰지 않아도 될 배의 머리 장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연관이 있습니다.
배 머리 장식 이름이 디오스구로인데, 이것은 ‘쌍둥이 신’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은 제우스입니다. 이 제우스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요. 이 제우스 쌍둥이 아들들은 배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수호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선원들이나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순항하여 무사히 도착할 때마다 이 수호신이 자신들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 당시 사람들에게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은 곧 바다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 수호신은 바다로부터 구원해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앞에서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바닷길에서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혼란에 빠졌고, 패닉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만큼은 평화로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과 배에 함께 탄 자들이 멜리데 섬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생명을 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디오스구로가 가리키는 쌍둥이 신이 구원한 것이 아니라 우상과 같이 형상으로 새기지 않아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셨습니다. 누가는 이 배의 머리 장식을 통하여 이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눈에는 쌍둥이 신이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이제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길에도 쌍둥이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지켜주셔서 바울이 무사히 로마에 도착할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바닷길에 올랐고 이들이 가는 곳들을 누가는 이야기해줍니다. 12-13절을 보시면 수라구사에서 사흘을 있다가 북족에 있는 레기온에 도착한 후, 남풍이 불어와 둘째 날에 보디올에 도착합니다. 누가는 앞에서 가이사랴에서 출발했을 때의 여정은 아주 길게 서술하였지만, 멜리데에서 출발하여 보디올까지의 여정은 아주 짧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여정이 순항이고, 앞의 여정보다는 순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실상은 로마에 가까워질 수록 이 바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여정을 순탄하게 하셔서 빨리 로마에 도착할 수 있게 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를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홍해가 자연 현상에 의해서, 우연히 갈라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셔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바울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주도하시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도움도 주시는데요. 14절입니다. 바울은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나 이들과 교제합니다. 이들은 그냥 형제들이 아니라 함께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을 뜻합니다. 아마 이들은 보디올에서 바울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왔을 겁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누가는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배 머리 장식인 쌍둥이 형제 신이 바울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이 바울을 돕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한 형제들을 보내심으로 바울을 돕고 계십니다. 이들도 그저 우연히 바울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하여 바울을 돕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들과 일주일을 머물면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도착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더 감사한 것은 이 바울이 보디올에 도착하자 더 많은 형제들이 바울과 그의 일행이 로마로 다시 향하려고 할 때 그를 반갑게 맞아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은 이 “맞아주다”라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냥 맞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는 고위 관리, 또는 중요한 사람을 맞을 때 쓰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죄인의 신분이며 재판을 받으러 로마로 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형제들이 바울을 맞으러 나간다고 할 때 바울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울 앞에는 죽음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는 묶여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죄인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로마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죄인의 신분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바울이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셨음을 안 바울은 15절 하반절에서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형제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돕고 계시고, 로마로 자신을 보내실 것을 더욱 확신했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16절에서 바울은 그토록 고대하던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바울 곁에는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지키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 도착해서도 묶여 있는 몸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였을 때 로마의 화려함, 로마 제국이 왜 세계를 제패한 국가인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누구든지 로마에 가면 로마의 화려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을 겁니다. 특히나 화려한 신전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의 눈에는 그저 복음 전도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로마 도시에 있는 신전에서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 이 세상의 진짜 신이 아니라 비록 죄인의 신분으로 왔지만, 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신이십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이었고, 패배자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세상으로부터 승리하신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바울을 로마 제국의 심장으로 보내심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정복하시고 승리하실 겁니다. 그리하여 이 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가짜 신인 쌍둥이 형제 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안전하게 로마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바다를 주관하시는 세상의 진짜 주인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처럼 보이고, 사람들의 행동과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특히 복음에 있어서 말입니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토록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로마 제국과 같이 무력으로, 힘으로 정복하시고 승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는 약해보이고 패배자로 보이는 한 사람을 우상이 가득한 곳으로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거기에 있는 많은 자신의 백성들을 되찾으심으로 말입니다. 우상과 죄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심을 통해 승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전하는 복음, 우리 교회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복음으로 짖누르고 힘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사람들에게 힘으로 짖눌러서 “너희 안 믿으면 큰 일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항상 복음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날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 그리고 우리 각 개인을 반드시 보호하실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며 우리 교회가 복음을 통해 세상을 승리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각 개인의 삶 또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이 되는 복된 백성이 되도록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심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의 길을 지키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이 항상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모든 세상 곳곳이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어 이곳이 천국이 되는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도 저희의 삶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