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1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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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2:12–20 (NKRV)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6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1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20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이 시편은 솔로몬 혹은 다윗 왕조의 왕들이 어떻게 주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하여 하나님과 백성의 바람을 반영한 노래이다.
주의 백성을 다스리는 특권을 누리는 왕들은 그들의 특권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들에게 위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주님의 뜻에 따라 주의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여러분들이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위해 어떤 정책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우리는 대통령이 되면 마냥 편하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떤 힘 다시말해 권력을 가지면 마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자리를 늘 꿈꾸며 어디서든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해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보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내 힘을 사용할 것인가! 가 더 중요하다.
왕이라면 한 나라를 통치하며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게 매우 중요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힘을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사용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당순히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만 여겨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려야 했기에 왕 개인의 가치관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백성을 통치하여야 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그 힘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2 Samuel 8:15 NKRV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그가 지은 죄만큼 죄값을 치루지 않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과 인맥으로 다시말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어떻게해서든 빠져나간다. 하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의 왕은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인 72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시편 72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편 72:1–2 (NKRV)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2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방금 이야기 했던 것처럼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에 따라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힘없는 자를 정의로 공의로 재판하는 것은 그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때무넹 불공평한 판결을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왕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통치를 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편 72:12–14 (NKRV)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왕이라면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건지며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궁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는데 힘을 써야 하는데 단순히 별 감정없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여 함께 아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그들의 생명을 위혐하는 것들로 인해 그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왕이 아닌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을 천지의 창조주요 우리의 왕되심을 인정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록된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왕이 될 상도 아니고 어떤 힘도 없는 존재이기에 오늘 말씀이 상관없다고 여기면 안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신명기 10:17–19 (NKRV)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약자인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명기 24:17–18 (NKRV)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약자를 억울하게 하지 말고 공의와 정의를 실현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Isaiah 1:17 NKRV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시편 146:7–9 (NKRV)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레위기 19:9–10 (NKRV)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신명기 24:19–22 (NKRV)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너희들 이렇게 하면 좋겠다가 아니라 22절에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에서만 그러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신약에서도 계속해서 약자를 도울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내려오셔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가?
모든 성경은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복음서중에 누가복음만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은 시간순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 문학기법을 알면 조금더 성경을 보는데 유익한데, 히브리 문학기법 중에 수미상관법 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과 끝의 내용을 같게 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수미상관법으로 쓰여진 글의 주제는 처음과 끝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는 어떤 내용이 있겠는가? 주제의 내용이 풀어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마태보음 4장 23절 에서 9장까지 수미상관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Matthew 4:23 NKRV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Matthew 9:35 NKRV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 같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마태 복음 5-9장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겠는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내용이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말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 스스로가 제물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오셔서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병든자를 고치시는 사역이다. 이건 예수님께서 굳이 하실 필요가 없으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역을 하셨다. 왜 하셨는가? 먼저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심지어 사회적 약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으로 인정하신다고까지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5:34–40 (NKRV)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잘 알려진 예화가 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서로 상종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지름길이라 할지라도 유대인은 절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가지 않는다. 그럴정도로 서로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을지라도,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로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기꺼이 내 시간을 쓰고, 내 재물을 쓰고, 내몸을 사용해 그를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남을 돌보지 않는다.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만 우리만 잘살면 그만인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이다.
예전에 이런 내용의 단편극이 있었다. 지갑을 주웠는데 그 지갑에는 항상 만원짜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면 또 마원이 생긴다. 이런 지갑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니깐 이 사람이 지갑에서 만원을 꺼낼 때마다 어디선가 만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이 지갑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을 끝이 난다.
그런데 만약에 오늘날 실제로 이러한 지갑이 있다면 과연 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지갑을 사용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만 내게 주어진 힘을 사용한다. 그렇게 사는것이 옳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세상사람들이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해서 믿는 우리까지 그렇게 살아가면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사람과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가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었다.
정직히 내가 가진 힘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면 분명 나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왕이 약한자 힘없는자들 대신 힘있고 강한자들과 관계를 더 잘 맺는다면 왕권이 강화되는데 더 유익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내가 아닌 주님께 맡길때 주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내가 가진 힘으로 내가 아닌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내가 손해 보는 것 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러한 삶은 주님이 책임지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 15-17
시편 72:15–17 (NKRV)
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6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1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약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의 것을 기꺼이 흘려보내고 도움을 주는 그 삶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그것을 주님께 한 것으로 여겨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주님께 무엇을 해드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주면 되는 것이다.
늘 하는 말인데 우리가 선교를 가는 이유가 이것이다. 주님을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몸을 드려 가장 좋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도움이 꼭 선교처럼 특별한 행사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선교보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약자에게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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