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앞, 두 가지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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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개미와 배장이의 이야기 잘 아시죠? 그 이후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혹독한 겨울을 개미의 도움으로 잘 지나고 나서 여전히 배장이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만들다가 빅히트 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유명해졌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먹을 수 있지만 먼저 잡아 먹힐 수도 있습니다.
수 많은 기업들이 시장조사의 중요성을 외칠때,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인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즉 쓰기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더 관심을 가져서 큰 성공을 이룹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는 힘이다” 라고 하였고 그의 제자 플라톤은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주장 했습니다.
콜롬버스는 동방견문론을 썼고 누군가는 허왕된 이야기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비전을 품고 대양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상반된 조언들이 존재 합니다.
현대 사회는 더 많은 선택지와 보다 많은 의견들이 넘쳐 납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에게 적절하고 유용한 정보를 선별하고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헤엄 칠것이냐? 허우적 델 것인가?
항해 할 것인가? 아니면 조난 되거나 난파 될것인가?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에서
많은 정보 속에서 분별 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매 주일설교와 성경말씀과 수 많은 설교영상들을 통해 다양한 메세지를 전달 받습니다.
그 어느때 보다 말씀이 흔한 이 시대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철저히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적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혼란한 시대에서 옳바른 판단과 실생활에서의 적용과 옳바른 선택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수 많은 메세지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시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1. 일단 들어야 한다

바울과 그 동료들은 지금 까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에 붙들려, 가라는 곳을 가고 머물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안디옥교회의 파송
사도행전 13:2–3 NKRV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아시아에 전하지 말라
사도행전 16:6–7 NKRV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예루살렘공의회
사도행전 15:28–29 NKRV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빌립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라 명령
사도행전 8:29–30 NKRV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베드로 고넬료 집에 가다
사도행전 10:19–20 NKRV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성경에서 이런 예는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집중하고 모든 결정에 앞서 기도해야 할까요?

들어야 하는 이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빌립보서 4:6–7 NKRV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 아뢰고 그 음성을 간구 하는 자에게
염려와 걱정에서 평강의 삶으로 변화 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허우적 대지 않고
헤엄치고 항해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14:26 NKRV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둔하고 부족하여 항상 넘어지고 죄짓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로 우리의 성품과 인생의 전반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 NKRV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사랑이 넘치고 희락으로 기뻐하고 마음의 화평이, 관계의 화평이 있고
아무리 어려운 일에도 오래 참을 능력이 있어서 더 좋고 잘 익은 결과를 맺는 다면
또한 자비하고 양선하여 착하고 거룩한 /신앙과 성품이 있어 존경 받고 사랑 받는다면
그와 동시에 충성된 신앙과 온유한 인품과 절제하여 규모 있는 삶을 산다면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도덕적 수양의 결과가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메세지를 듣고 따른 사람의 삶의 결과를 열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지향점은 바로 이런 삶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

로마서 8:14 NKRV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예수께서도 항상 아침 첫시간에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듯이
그게 누구든지 간에 이 땅에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지시가 필요합니다.
그 인도함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음성을 들어야 하는 이유들 입니다.

2. 옳은 해석과 적용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둘러싸고 있는 훌륭한 동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울에게 전합니다.
내 주변에 항상 성령의 음성에 귀기우리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든든 합니다.
더군다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나를 위해 영적인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 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말하는 장면과 “성령이 말씀하시되” 라는 구절이 등장 합니다.
첫째로 두로에 있던 제자들을 통해 말씀 하십니다.
사도행전 21:4 NKRV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둘째로, 아가보 선지자는 성령을 통한 예언의 말씀을 전함
사도행전 21:11 NKRV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이 두 경우 모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그 해석과 적용에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두로의 제자들과 아가보는 동일한 메세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같은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의 간곡한 만류를 따르지 않습니다.
왜 바울은 동료들을 통해 말씀 하시는 성령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일까요?
심지어 아가보의 예언의 말씀은 구체적인 핍박을 예지 해주기 까지 하는데도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불길한 예언을 만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울과 정반대로 결정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교만한 걸까요? 바울은 영적으로 무딘 걸까요? 바울은 고집스러운 걸까요?
우리가 바울의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장으로 돌아가서
고별설교를 나눴던 밀레도로 우리의 시점을 옮겨봐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3 NKRV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놀라운 일은 바울은 아가보의 예언의 말씀과 똑같은 메세지를 성령을 통해 이미 받았고
그 성령의 증언은 한번만 주신 것이 아닌 여러 성읍을 다닐때 매번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앞에서 바울에게 두 가지 음성이 들립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 와 들어가라’
아가보와 바울에게 주신 성령의 메세지는
예루살렘에서 있을 신체구속과 구금과 핍박과 고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바울을 인간적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동료들은 그가 상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만류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바울은 울지 말라 왜 울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말하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가야 한다고 눈물을 머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13 NKRV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삶의 여러 형태로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언의 말씀은 그 어떤 지시를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당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사실을 단백하게 팩트만 알려 주신 것입니다.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지 말라 하는 메세지는 애초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나의 해석과 나의 적용이 있을 뿐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의뢰하는 것도
그 음성을 통해 예루살렘을 들어갈지 아니면 들어가지 않을지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해석의 차이가 결국 그 사람의 가치관이고 신앙 입니다.
신앙은 다 알고도 죽을 길로 손해보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확신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희생의 길도 아니고
손해 보는 길도 아닌 그저 주님 만나러 가는 길,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그 안에 충만함과 기쁨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신앙적 만족감 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성령의 메세지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석 하시겠습니까?
주를 위해 각오 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겠습니까?

3.진정한 동역자

우리 인생에서 진정한 동반자는 신앙에서 뭉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대해 결국 단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결정이 동료들에게는 매우 아쉬운 결정 입니다.
결국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 이라는 공동의 목적 아래 다시 모였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14 NKRV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이 구절은 바울이 그의 주변에 훌륭한 믿음의 동역자가 많이 있는 동역자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만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고
제자들과 아가보도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바울 만큼 기도 했는데, 바울이 고집을 부리니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울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뜻이 예루살렘 땅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동료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그 만큼 바울을 존중하고 이해한다는 증거 입니다.
바울의 영적 권위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신앙의 동료들과 함께 동역하는 일은 우리 신앙생활의 기쁨 중 하나 입니다.
이 동역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또한 이 동역에는 사명에 대한 책임감이 바탕에 있습니다.
You can have community without accountability, but you can't have accountability without community.
Surround yourself with the right people and change becomes inevitable. -Mark Mason-
당신은 책임 없이 공동체를 가질 수 있지만, 공동체 없이는 책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올바른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싸면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은 서로가 주님 뜻 가운데 옳바른 길을 걷게 돕는 것입니다.
누구나 선한 공동체에서 훌륭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좋은 공동체를 찾아 다니는 노력이 아닙니다.
내가 속한 그 공동체와 나의 관계를 선한 공동체로 세워 나가려는 노력에 동참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스며들듯이 사람이 변화되는 선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나누고 헌신적으로 서로를 돕고 세웠듯이,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바울과 그 선교팀이 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많은 사람을 도왔듯이,
우리도 연약한 사람들을 돕고 괴로운 사람의 쉼터를 제공하고 지친 사람이 새힘을 얻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그 동료들이 서로에게 신앙적인 버팀목이 되었던 것같이 영적인 메세지를 공유하고 주뜻을 이루기 위해 뭉쳐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개인주의화 되지는 않았나 뒤돌아 봐야 합니다. 각자 도생 하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 보아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함께 선한 일을 도모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삶은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뭉쳤듯이
부부도 자녀들을 신앙안에 옳바르게 키우고
가정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협력하는 동역자 이자 성령의 공동체 입니다.
부부 둘 중의 한 사람이 아님, 둘 다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가거나
다른 관심사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면
같은 메세지를 들어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중에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소원해지신 분이 있다면
오늘 부터 가정 예배나 부부가 함께하는 큐티를 시작 하시기를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서 명령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하나님의 음성> 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깊히 있게 들을 수 있는지 방법을 소개 합니다. “상대가 집중하고 있는 바를 인식하면 그 사람의 마음의 의도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몰라 당황며 거기에 대해 지시받아야 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동참하지 않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라고 말합니다.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겠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에 참여해보십시오.
그사람의 깊은 마음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상대방의 일을 같이 해보세요.
같은 목표와 취미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컨데, 만약에 어떤 부부가 몇년 안에 집을 사기 위해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열심히 동역한다면 부부가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부부의 대부분의 대화가 무엇이 될까요?
만약에 어떤 부부가 내년에 준비하여서 내 후년쯤에 온가족이 단기선교를 가는 것을 목표로 돈을 모으고 함께 기도한다면, 그 부부의 대화주제는 무엇이 될까요?
그 기대와 소망이 관계를 개선하고 더 깊은 영적 대화로 이끌것입니다.
결국은 신앙인들은 그게 부부이든 친구이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우리 가정 위에 우리 교회 위에 이뤄지는 것을 위한 목표 아래 모여 있을때 가장 복되고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목소리를 듣는 것 이상의 행위입니다.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그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결단과 헌신

마틴 로이드 존슨은 <영적침체> 라는 책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나의 문제에 집중하다가 오히려 영적 침체를 경험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본래 고통의 바다이고 행복은 찰라에 찾아오는 잠깐의 만족감과 충만함인데
우리는 그 찬라의 도파민만 따라다니다가 인생을 허비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의 기쁨인데
여러분의 구원은 기쁨 입니까?
인생의 결박과 죄의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 합니까?
내 생각이 아니라
최고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지혜임을 진정 믿으십니까?
잠언 3:5–6 NKRV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자신의 명철에 의지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의뢰 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통해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지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주님을 위한 길로 지도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어떤 손해나 핍박이나 고난도 감내할 각오를 하십시오
사도행전 21:13 NKRV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우리 신앙은 축복받고 평안하게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신앙은 주를 위해 기쁘게 감내 하는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삶적으로 힘들어도 주를 위해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다 잃어도 예수는 잃을 수 없다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주님의 양해를 구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외면 해왔을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론
예루살렘 앞에서 바울은 두 가지 음성을 들었지만
각오와 헌신의 길을 택했습니다.
예루살렘 입구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끝내야 합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사명을 방치 한 것이
오늘날 우리 에게 나타난 수 많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바울 처럼 결단 하고 각오 합시다.
그곳 예루살렘에 주님의 뜻이 있기때문 입니다.
그곳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있기 때문 입니다.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이든 헌신 할 각오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예루살렘이든 어디든 주님이 계신 곳이라면 가겠다는 각오가 있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유와 평강이 찾아 옵니다.
우리 교회를 사람을 선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공동체로 세워 갑시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으십시오!
그 음성의 뜻을 알기 위해 깊히 있게 묵상하십시오
옳바른 해석과 적용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주저 마시고 나의 예루살렘으로 들어 가십시오
주를 위해 헌신 하기를 다짐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모두 일어나서서 고백 하겠습니다.
다 잃어도 주님 한분만으로 충만 합니다.
찬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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