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 우리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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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갈라디아서 3장 15절부터 22절은 하나님의 약속의 중요성과 그 약속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다룹니다.
적용: 이 구절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믿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약속은 불변이며, 우리의 신앙이 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붙들어야 할 확고한 소망임을 깨닫게 합니다.
교훈: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신앙의 기초이며, 그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요구됩니다. 또한, 이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지: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며, 그리스도가 약속의 성취자로서 구약의 예언들을 이루어낸다는 점에서 기독론적 초점이 있습니다.
큰 아이디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믿음의 토대이며, 그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추천 연구: 갈라디아서의 역사적 배경과 바울의 사역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Logos를 활용해 주해를 참고하고, 약속의 사용에 대한 신학적 논의와 본문 비평을 통해 이 구절이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하신 약속

갈라디아서 3:15-16
당신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단순한 언약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은 단수 형식으로 언급된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짐을 느끼고, 그 약속이 변함없음을 믿으며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15 (NKRV)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언약이라도 : 본래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말로 인해 비롯했는데 사람들에게 죄가 들어 온 이후로 약속이 깨지기 시작했다.
더 큰 개념으로 우리는 늘 참말을 해야하는데 죄로 인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말은 더이상 신뢰의 대상이 되지 않기에 계약을 상징하는 행위나 의식이나 문서가 발달되었다.
갈라디아서 3:16 (NKRV)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것은 신앙의 혼선과 이방들을 경계하는 메시지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다른 복음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이단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약속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종교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메시아 혹은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을 향해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실제 자손들을 모두 포함한 약속이 아니라 오직 한분 예수님을 향한 약속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가장 처음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 시작이 이와 같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상속을 약속하셨고, 다윗을 통해 그의 나라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대상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그분이 그의 상속과 유업을 공유 할 대상으로 우리를 지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약속에 대하여 살펴보자.

2. 하나님의 약속

갈라디아서 3:17-18
아마도 당신은 율법과 약속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430년 후에 주신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이 아닌 은혜를 통해 주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당신은 이 구절을 통해 구원은 율법 준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마음에 품어야 할 것입니다.
1)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신명기 4:44 (NKRV)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신명기 5: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이것을 듣고, 배우며에 주목하자. 우리가 율법에서 온전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순수한 동기로 그것을 듣고 배우고 지킴으로써 우리의 신앙과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다.
Deuteronomy 5:9–10 NKRV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을 구원과 연관지을 수 없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되어 있다.
단, 죄를 지은 자에게는 3~4대에 이르고,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1000대까지 이른다는 은혜에 주목하자.
‘질투’나 ‘사랑’은 관계에 관한 단어이므로 법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늘 한결같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다해 듣고, 배우고, 알기 위해 힘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모세가 받은 율법으로 인해 이전의 언약들이 취소되거나 변형될 수 없다.
갈라디아서 3:18 (NKRV)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여기서 유업이란 성경에서 ‘상속, 기업, 유산’ 등으로 표현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업은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3. 율법의 역할

갈라디아서 3:19-20
율법이 추가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함을 인지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율법은 중재자를 통해 주어졌고, 그 중재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을 나타냅니다. 아마도 당신은 율법의 제한된 역할과 함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중재자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중보를 경험하는 하루를 보내도록 권장합니다.
갈라디아서 3:19 (NKRV)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범법하므로 더하여 진 것 :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하여 알려주기 위해 생겨난 것.
계명은 먼저 십계명으로 10개가 주어졌다가 이후에 613개까
지 늘어났다.
천사들을 통하여 : 구약에서 흔히 ‘사자’라고도 표현되는데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중보자 : 모세를 나타낸다.
약속하신 자손 : 예수 그리스도
Galatians 3:20 NKRV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 중보자는 한 편만을 위한 자가 아니나 :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율법은 사람들의 죄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신 것인데 이것은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위한 것으로도 사용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종교들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다 같을 수 없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이유이다.

4. 우리들의 믿음

갈라디아서 3:21-22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에 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역할은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빛나게 하고, 믿음을 통한 구원이 유일함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약속을 기반으로 한 믿음이 구원의 근거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당신은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신앙생활을 지속하면서 평화를 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확하게 일치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이루어질까요?
우리가 그것을 지켰는가? 못지켰는가?에 대한 행위로 유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듣고 배우며 지키려고 힘껏 행하는 믿음의 동기로 인하여 유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12월1일 정오에 교회에 오신 분들에게는 천만원을 드립니다. ’라고 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약속한 12월 1일 정오에 우리 성도들이 와서 천만원을 받아갔습니다. 이것이 집에서 교회를 오는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해도 그것의 대가로 천만원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지 제가 한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이곳에 왔기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성도가 사정이 있어서 전날 서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성도는 어린아이라서 돈도 없고 어떻게 서울에서 목포에 와야하는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날부터 무작정 서울에서 걸었다는 소식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날짜에 교회에 오지 못했지만 오려는 그 마음을 받아서 그 성도에게도 천만원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불의합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이고 은혜입니다.

결론

기독교의 신앙은 어떤 조건부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위에 세워진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배워서 그것을 믿고 행하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어떤 약속을 신뢰하며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 계단에 올라오면 히브리서 말씀이 크게 쓰여있습니다. 유튜브 메인 영상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Hebrews 11:1 NKRV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제상황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도 매일매일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에요? 한가지만 말하라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한가지만 말하라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나의 삶에 왜 예수님이 경험되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요? 믿음이 없기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약속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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