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8문 하나님의 일하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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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8문 하나님의 일하심:창조
소요리문답 8문 하나님의 일하심:창조
말씀 : 이사야 44:21-28절
제목 : 하나님의 일하심:창조 (소요리 8문)
이 시간 ‘하나님의 일하심:창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후시간에도 함께하신 여러분들 반갑고 축복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들과 이렇게 한번 인사합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과 이유에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속담에 ‘쇠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 않던 물건도, 급하게 쓸 데가 있어 찾으면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 속담입니다. 근데 저는 이 의미를 다르게도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하찮은 소똥이라 할지라도, 다 용도에 맞는 쓸 곳이 있다는거에요. 쇠똥도 어디에 쓸 수 있어요? 약에도 쓸 수 있고요, 거름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쇠똥구리라는 곤충을 아시죠? 얘가 하는 일이 뭐냐면, 공처럼 똥을 굴립니다. 동그랗게 굴려요,이 곤충은 그 똥을 굴려서, 가지고 다닙니다. 쉽게 말하면 밥을 굴려서 가지고 다니는거에요, 그래서 그 똥을 먹으면서 생활을 합니다. 이게 약간 더러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그렇게 불필요해 보이는 똥도 다 쓰이는 곳이 있는거에요, 이 자연세계를 들여다 보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위치가 있고, 어느 것 하나 필요한 것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서로 상생하며 존재한다는 겁니다.
보통 이 자연의 모습들을, 먹이 사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땅에서 거름이 되면, 그 토양에서 식물이 자랍니다. 그 식물을 애벌레가 먹습니다. 그리고 이 애벌레는 작은 새에게 먹힙니다. 작은 새는 뱀에게 잡아 먹히고요, 뱀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 잡아 먹힙니다. 바다에 떠 다니는 작은 플랑크톤 역시, 정어리 같은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됩니다.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되요, 이런 자연의 상생 관계를 보면요, 하나님께서 이 피조물들을 얼마나 정교하고도, 다 쓸모 있게 목적에 따라 지으셨는지 알면 알수록 우리는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소요리문답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8문 9문을 보려고 합니다. 지난 번에,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배웠는데요, 하나님이 모든 피조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지으셨어요? 그냥 우연찮게, 아무런 계획 없이 지으신 것이 아니라요, 이미 모든 것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셔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로 정했다고 배웠어요.
그리고 삼위 하나님께서는요, 이 일들을 정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 이 일을 행하셔요, 작정했던 대로 계획 했던 대로 그 일을 시행하시는거에요. 이 하나님의 일하심은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8문입니다.
8문 제가 문 읽으면 답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작정을 어떻게 이루시나요?” 답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의 일로 그 작정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것을 어떻게 이루세요? 창조와 섭리를 통하여서 이루신다는거에요. 오늘 살펴볼 부분은 창조까지입니다.
9문은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창조의 일이 무엇인가요?” “창조의 일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로부터 만드신 것인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6일 동안 만드셨고 모든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을, 창조라는 일로 실행하신거에요. 여러분 창조가 무엇입니까? 먼저 창조는요, 무로부터 유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있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땅에서도 수많은 창작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일어납니다. 최근 24년 10월 10일에, 한강이라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건 우리나라 인물 중에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았을만큼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요. 이번에는, 그가 쓴 작품 중에,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이 수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 소설의 소재는 바로 1980년에 일어났던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쓴 소설이었습니다.
참 대단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세계에서 인정하는 대단한 작품도요, 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5.18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쓴 것이고, 그가 겪었던 삶의 환경과 영향이 작가에게 다 소재가 되어지고요,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에요.
최근, 유은이 유찬이 어린이집에서, 부모초청 활동이라고 해서, 간적이 있습니다. 가서 아이들과 무엇을 했냐, 도자기 만드는 활동을 했어요. 도자기는 뭘로 만드냐면, 점토를 가지고 만들죠, 흙으로만든 점토요, 그걸 가지고, 도마도 만들고요, 칫솔 꽂이도 만들었습니다. 같이 점토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만들었던 활동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게 그런거에요, 어떤 재료와 물질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는 무엇이라고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거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이 하신 창조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세상의 제 1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은 시작하게 됩니다. 이 일은, 세상의 어떤 학문을 가지고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라는 일을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되는겁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44장 24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중간에 보세요.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는데, 어떻게 했어요? 홀로 하늘을 폈고 혼자 땅을 펼쳤다는 겁니다. 이 말이 뭐에요, 하나님은 만물을 아무 도움이나, 조언이나, 재료도 없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창조라는 것이 신앙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의 삶과, 아니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의 삶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 부분에서 다를까요?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과 이유에 대해 근본적이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창조라는 행위는 어떤 것에 의한 거라고 배웠어요? 작정,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시고 준비하신 것의 실행이 바로 창조라는거에요. 우리는 창조에 대해 고백할 때 어떤 단어를 떠올려야 하냐면, 바로 목적입니다.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유 없이, 목적 없이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거에요.
이 사실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봅시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왜 태어났습니까? 내가 왜 이 땅에, 여기에, 오늘을 살고 계십니까? 모든 만물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는 사람들의 답은 뭐에요? 몰라요,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지금 살고 있는지, 어떤 이유로 이 삶이 주어졌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왜요? 모든 것이 우연인데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면서 자신의 불행과 어려움을 부모 탓을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서,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하냐며, 울부짖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허망함 가운데,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면서, 평생토록 헛된 것들을 쫓아 살아가요.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태어나셨습니까? 내게 왜 생명이 주어졌고, 지금껏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21절 보세요.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24절,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우리의 인생을 누가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나를 나게 하신 이도,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분이 누구세요? 우리 하나님이세요. 여러분 이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이 사실을 붙드세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과 목적이 분명히 있으시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이 창조의 신앙을 고백하는 인생입니다.
제가 읽었던 한 동화를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아이들이 생긴뒤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 중 하나는, 책을 읽어주는 일입니다. 물론 저보다 저희 아내가 더 많은 책을 읽어주었지만, 저도 아이들과 책읽는 것을 통하여 같이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책 중에,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동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웸믹이라고 불리는 나무인형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람이라고 하듯, 여기서는 나무인형들을 웸믹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사는 웸믹들은 ‘엘리’라는 목수가 모두 다 만든 존재들입니다. 이 웸믹들은, 그 마을에서 서로 생활을 합니다.
웸믹들이 주로 하는 행동은 이렇습니다. 다른 웸믹들에게, 별표 아니면, 점표를 붙입니다. 자신이 보았을 때, 나무 재질이 좋거나, 매끄러운 웸믹들, 또 재주가 많거나 여러 능력이 있는 웸믹들에게, 별표를 몸에 붙입니다. 그와 반대로 내세울 것이 없거나 변변치 못한 웸믹들은 점표를 받습니다. 거기에 펀치넬로라는 주인공 나무인형이 등장하는데요, 이 친구는 항상 점표를 받는 나무인형이었어요. 생긴 것도 별볼일 없구요, 특별한 재주도 없습니다. 주로 점표를 받습니다. 몸에 점표가 많이 받으면, 또 다른 나무인형들이 점표를 붙여주는 인형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이 펀치넬로가 한 여자 나무인형을 만나는데요, 그 여자애 이름은 루시아라는 친구였어요. 근데 이 루시아는 특별했습니다. 뭐가 특별했냐면, 몸에, 어떤 점표도 별표도 붙어있지 않았어요. 어떤 나무인형들이 루시아에게 점표나 별표를 붙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붙이면 바로 떨어져 버렸거든요, 그런데 펀치넬로가 이 루시아에게 물어봐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냐고, 그러니간 루시아가 아 그거 아주 간단해, 나랑 엘리아저씨를 만나면 되,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펀치넬로는 루시아와 엘리 아저씨를 만나러갑니다.
엘리아저씨는 펀치넬로를 보자마자, 그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펀치넬로야 어서와라 너무나 반갑다고 인사를 해줍니다. 그리고 그의 몸을 살펴주면서, 점표를 많이 받았구나 하면서 그를 위로해줍니다. 그러니깐 펀치넬로가 엘리아저씨 저도 이 점표를 많이 받고 싶지 않았는데요, 노력많이했는데요, 잘 안되더라구요, 괜찮아, 나는 다른 인형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 없어, 진짜 중요한건 뭐냐면, 다른 나무인형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거지, 나는 네가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깐 펀치넬로가 물어봐요, 아저씨 제가 뭐가 특별해요, 저는 좋은 모습도 아니고요, 특별한 재주도 없어요. 저는 특별하지 않아요. 그러자 아저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너는 특별해, 왜냐하면 내가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너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해 펀치넬로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따뜻한 음성과, 자신을 이해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저씨가 그랬어요, 네가 그렇게 생각이 들때마다 나를 찾아와, 그러면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점점 더 알게 될거야, 기억하렴, 내가 너를 만들었고, 너는 아주 특별해, 나는 결코 좋지 못한 나무인형을 만든 적이 없어, 그리고 펀치넬로가 문밖을 나갈 때에,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저씨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그 순간, 펀치넬로 몸에 붙어있던 점표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라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저는 이 동화를 지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확신합니다. 아저씨의 이름이 엘리인 것도 그렇고요,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나를 창조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나라는 사람을요, 세상은 늘 표딱지를 붙여놓고 판단합니다.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저 사람은 성공한 인생, 실패한 인생, 유능한 인생, 무능한 인생,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합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세상이 나를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는거에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요, 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요,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나이가 많든, 적든, 세상에서의 형편이 좋든 나쁘든, 내 몸 상태가 좋든 안좋든, 여러분들은 다 의미 있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자신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지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르신들이 꼭 그래요 나같은 것 빨리 가버려야지, 혹여나, 지나가는 말로라도, 그런 말 하지마세요. 여러분 한명 한명요, 주님께서 이 땅에 지금껏 살게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거에요.
여러분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나를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시고, 지금도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유와 목적에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볼 부분은요, 9문을 보시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로부터 만들었는데, 무엇으로 만드셨어요? 제가 빨간색으로 쳐놨는데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거에요. 창세기 1장에 보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지요. 1:3절에 보면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 창조의 기사에서 반복되는 것이 뭐냐면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이르시되가 반복되고요, 그대로 되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무로부터 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어디에 있냐면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까 말했듯요, 이 무로부터의 창조는, 인간이 이 땅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능력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요, 창세기 1장의 창조의 기사와 굉장히 유사하게 적혀져 있는데요, 몇 구절만 함께 살펴봅시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에 보면요, 태초라는 말이 등장하고요, 말씀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만물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다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여기서 말씀은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요, 예수님이 누구시냐면, 태초로부터 있었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즉 예수님이 곧 말씀이라고 요한복음 1장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뭐라고 말하냐면, 복음이라고 말해요.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이 뭘로 세상을 창조하세요? 말씀으로 창조하세요. 이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거에요. 이 말을 요한복음의 말로 바꾸어 보면, 말씀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고요, 그 복음이 우리의 능력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게 뭐냐,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듯, 오늘 날도,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하신다는거에요. 고린도후서 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뭐에요?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이 피조물이라는 말 역시 창조의 용어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능력이 있냐,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이 있어요.
오늘날도 일어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뭔지 아세요? 죄인되었던 자를, 죄에 종노릇하며, 매여있던 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인이 되게 하는 새로운 창조가 여전히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이 창조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아무리 보아도, 복음 안에 진짜 기적이 뭔지 아세요? 병 낫는거요? 뭐 물 위를 걷는거요? 오병이어의 기적이요? 아니요. 예수 안에서 변화되는 인생이 있다는게 진짜 기적입니다. 바울 아시죠? 예수님 핍박하던 제일 앞장서던자, 그런 사람이, 예수 안에서,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는게 진짜 기적이에요.
여러분 복음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어요.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님을요. 아니 수십년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인생, 삶의 작은 부분들, 변화하기가 고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복음 안에서 변화됩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이 바뀌어요. 그걸 제일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옆에 있는 사람 보지 마시고, 나를 보세요. 내가 이만큼 변화한거, 내가 이만큼 말씀에 붙들려 사는거, 믿음으로 살고 있는거,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요.
바라기는 이번 한주 간의 삶이, 정말로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인생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기적들을 경험하는 복된 한 주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