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위하여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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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한국 교회에 신앙의 전통 중에 성도는 술 담배를 멀리 해야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초기 한국교회가 자리 잡을 때 성도의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이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세워질 당시 처음부터 금연과 금주를 금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 선교사들 중에 언더우드는 한 때 흡연을 했다고 합니다. 부산 경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 중에도 흡연을 한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초기 한국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흡연과 음주는 어느 정도 허용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1890년대를 거치면서 선교사들은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흡연과 음주의 패악을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평소에는 착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술만 마시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 가족을 구타하고 패가 망신하는 모습을 계속 목격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활의 자제를 촉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음주, 흡연 여기에 도박은 신앙 생활에 무익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한국 교회 좋은 신앙의 전통으로 남아서 아직까지 내려 오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금주 금연 운동을 추진 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상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둘째로는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를 들었다.
셋째는 개화 혹은 국민의식 계몽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솔직히 담배 피우고 술 마신다고 구원 받지 못하는 거 아닙니다. 만약 권의 걸림돌이 담배이고 술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고작 술, 담배보다 못한 것인가요?
우리의 신앙 성숙에 유익하지 않은 것입니다.
건강에 좋지않고 보기도 안 좋으니 끊으세요.
제가 청소년, 청년 시절을 보냈던 홈처치가 서울 구로동에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이 술, 담배 문제를 정말 매 주일 강조하시면서 설교 하셨습니다.
당시 제 선배들, 동기들 담배 대부분 피웠구요. 술도 잘 마셨습니다. 그리고 담배 연기 자욱한 당구장이 선배와 동기의 아지트였습니다.
어느 주일 그 날도 여지 없이 목사님께서 술담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형이 설교를 듣다 나갔습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예배당을 나갔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일찍 나간 형이 교회 입구에서 담배를 보란듯이 피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 그 형은 한동안 사단 마귀로 낙인이 찍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 형이 지금 그 교회 안수집사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는 본문을 보면서 사도 베드로의 말에 혼동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 권력에 순종하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지금 너희 삶의 환경이 어떠한지 그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이었습니다. 거룩함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너희 환경을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지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본문부터 5장 중반부까지는 성도들이 실제적인 삻의 현장에서 어떻게 거룩함을 실행해야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1-2:10절까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부분이 2:11-5:11절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3-14절을 보겠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에 순종하라 말합니다. 총독에게 복종하고 총독이 보낸 그 사람에게도 복종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과연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듯 이해되고 수긍할 수 있는 말이었을까요?
로마서 13장을 보면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5-7절까지 읽겠습니다.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걷어 들이는 세금을 내라 말합니다.
지금 베드로서의 수신자들, 나그네되고 거류민이 된 이들이 받는 고난. 그 고난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바로 로마 통치자들 그 권력을 힘입어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이고 관리들, 세리들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야기 시킨 사람들이며 고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현실의 삶이 고달파 졌는데 어떻게 그들의 권력을 인정하고 복종하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이 어떤 사람들이 입니까?
자신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선택 받은 족속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선민의식으로 가득차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과는 분명한 차별과 특권과 은혜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고는 있지만 이 의식은 그들 안에 분명하게 각인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방인의 제도와 통치, 사회, 법에 순종하라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모아니면 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분법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세상은 악하고 영적인 것은 선하다.
세상에 있는 것은 나쁘고 악하다. 반면 종교적인 것, 영적인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생각을 합니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세상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관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관심 밖의 일이고 해결책도 없이 세상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의 일은 나와도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왜요 악한 것이니까, 나쁜 것이니까요. 나는 말씀의 법만 잘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지금 내게 일어나는 문제들이 해결 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 로마의 속국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억압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인가?
왜 우리는 저들에게 피 땀흘려 번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가?
왜 세상의 권력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가?
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을 초월하여 살지 못하고 굴복을 당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신앙과 너무도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초월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자연을 만드신 그리고 이 온 세계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내세의 통치자인 동시에 현세의 통치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역사의 주관자 이십니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통치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역사가 악으로 물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악의 정점이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역사의 흐름이 너무도 이해 되지 않는 악이 난무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쉼없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계획 대로 보내셨고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악한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은 창조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새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안에 계속해서 흘러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세상적인과 종교적인 것, 혹은 영적인 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입니다.
예를들면 직장을 다니는 일, 친구를 만나는 일, 여행을 가는 일, 퇴근하고 회식하는 일은 어디에 속한 것인가요?
가정에서 하는 일, 나라에 헌신하는 일, 전쟁에 참여하는 일은 어디에 속하는 것인가요?
싸우는 행위, 조롱하는 행위, 비판하는 행위는 또 어느 부분에 속한 것이며 악한 권력이 우리에게 터무니 없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디에 속한 것입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 찬양하는 것, 교제하는 것, 성경 공부 하는 것은 어디에 속한 것이며 선교하고 구제하고 기도하는 것은 또 어디에 속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분법으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 사라져버립니다.
세상적인 것이니 세상 방식대로 풀고 해결하고 대하는 것이 맞다고 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거부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위에 언급했던 것들 중에 무엇이 세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친구 만나는 거, 아니면 회식하는 거라고 한다면 일단 친구 만나서는 욕도 할 수 있고 다른 친구 비난도 좀하고 흉도 보고 조금 과정되게 말도 그럴싸하게 하고 그렇지요.
왜요 세상적인 것은 나쁘고 악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도 괜찮아 다 용납해 주니까.
반면 종교적인 것, 영적인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 나오는 것, 친교하는 것,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니 상냥한 얼굴, 웃는 모습, 말도 품위있게 등등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을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것이나 세상적이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나누에서 생각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별의미가 없습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면 지금 나의 삶의 영역의 모든 것과 하나님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다. 즉, 세상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잠시 끊겨 있다가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오면 연결되어지는 그런 스위치 같은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을 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먼저 나그네의 삶을 사는 지금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요?
빛이고 소금이라 말합니다.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우리가 세상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과 같습니까?
빛들이 빛들끼리 모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이 소금 자루에 그대로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빛이 빛들끼리 모여 있으면 어둠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빛이 없는 곳, 사람들 앞에, 세상속에 하나씩 떨어뜨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우리끼리 모이면 너무 좋아요. 각자에게서 다른 빛이 나오거든요. 마치 성탄절을 밝히는 빛처럼 아름답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 교회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위말하는 세상에서 빛춰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세상의 권력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정의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순종한다는 것, 복종한다는 것이 지금의 정치나 문화 사회 전반에 만들어지는 불법을 인정하거나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분별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종하되 무엇에 복종하는냐입니다.
죄를 짓도록 명령하는 것 이외에는 복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요?
세상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국 그릇 안에 들어가서 소금의 맛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것으로 우리를 비방하고 모함해도 우리가 대응하지 않는 이유가 몰라서가 아니고 그럴 힘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대응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응해서 얻는 유익보다 대응하지 않고 인내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이나 오늘 본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선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우리의 착한 행실로 세상은 변화되어 갑니다.
기도하겠습니다.
